아오지 탄광에 핀 희망…탈북소녀 ‘금희의 여행’

2007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에 입국한 탈북자들이 만 명을 넘어섰다. 고향을 버리고 더 나은 삶을 찾아 한국에 온 그들. 내 손으로 행복을 이룰 수 있다는 자유를 기대하며 이 땅에 왔지만 목숨을 건 여행에 대한 보상은 그리 크지 않다. 그들은 말한다. ‘남한에 와서 나아진 것은 배고프지 않은 것 뿐’이라고.

북한의 끔찍한 인권침해 실상에만 익숙한 우리는 흔히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겪은 삶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들로만 얼룩져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남한 땅에 와서 배고픔의 문제가 해결되고, 또 그 끔찍한 일상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그들이 행복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의 가슴 속에도 북한은 가슴 속이 아련해지는 고향으로 남아있다. 남한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바쁘게 지내지만 마음 속 품어놓은 고향 추억에 힘을 얻는다는 한 탈북 대학생의 수기가 출판됐다. 15살 어린 나이에 탈북한 최금희 양(한국외대 중문학과 재학)이 쓴 ‘금희의 여행’(민들레).

금희는 여진족 말로 ‘돌이 타는 마을’이란 뜻의 아오지 탄광 마을에서 태어났다. 남들에게는 산골짜기 유배지로 생각되는 아오지이지만 금희에게는 온 동네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어 놀던 놀이터였다.

식량난이 닥치기 전까지만 해도 그 곳은 살기 좋은 고향 마을이었다. 책은 북한 아이들이 늘 헐벗고 굶주리거나 세뇌교육만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나름대로의 소박한 행복을 찾으며 살고 있음을 보여 준다.

북한에도 남녀간의 애절한 사랑이 있음을 금희 부모님의 연애 이야기를 통해 들을 수 있다. 금희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로맨틱한 연애편지를 보내며 사랑을 고백했고, 이 편지에 감동한 어머니는 결국 신분 차이를 이유로 결혼을 만류하는 부모님을 뒤로 하고 결혼을 선택했다.

텔레비전에 관한 일화는 마치 남한의 1970년대를 떠오르게 한다. 금희의 집에 동네에서 몇 안 되는 텔레비전이 생겼을 때였다. 5시 반이면 온 동네의 아이들이 모여들어 ‘아동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그 주제가를 목청이 터져라 불렀다. 금희의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프로였다는 ‘동물의 왕국’은 동물원에 가지 않고도 동물들에 대해 알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하지만 북한의 현실은 금희의 어린 시절이 아름답게만 그려지게 허락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금희는 참혹한 공개 처형 장면을 여과없이 목격해야 했다. 당시에는 김정일의 지시로 모든 학생들이 공개처형 장면을 목격하는 것이 의무였다고 한다. 피와 뇌수가 뿌려지는 처형 장면을 목격한 어린 금희는 충격에 휩싸여 한동안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가 찾아오고 금희와 가족들은 극심한 배고픔과 맞닥뜨렸다. 가족들은 죽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해갔다. 금희는 배를 곯으며 하루 종일 어머니를 기다렸다. 한밤 중에 음식을 구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머니를 보며 원망할 때도 많았다.

어머니는 보통 때의 두 배나 되는 양의 피를 뽑아 받은 돈으로 밀가루를 사와야만 했다. 식량 사정은 나날이 힘들어졌고 언니들은 먹을 것을 구해 산으로 풀을 캐러 나가기 일쑤였다. 이웃들이 하나 둘 죽어 나가기 시작하자 가족은 중국으로의 탈북을 감행한다.

우여곡절 끝에 중국에 도착한 금희의 가족들은 작은 배를 구해 바다로 뛰어든다. 배가 침몰할 위기에 처하자 그녀는 기도했다. “살려 주세요! 하나님, 난 죽기 싫습니다. 아직 어립니다. 살게 해 주세요. 한국에 안 가도 좋으니 우리를 살려 주십시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천신만고 끝에 중국 배를 만나 가족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가족은 결국 미얀마를 통해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곳은 금희가 상상했던 한국이 아니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나를 한국 사람들에게 알리기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감히 북한에서 왔다는 소리도 못하고 강원도에서 왔다고 말한 적도 있었어요. 내가 태어난 곳을 부정함으로 저의 정체성이 사라져 갔고 누굴 만나도 나는 거짓투성이로 얼룩져야 했습니다.”

금희는 북한과 다른 한국이, 북한사람을 한국 사람과 다르게 보는 시선이 너무나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금희는 한국에서 사랑을 배웠다. 자신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쳐주고, 속마음을 털어놓도록 기다려준 셋넷 학교의 선생님들, 편견 없이 대해주며 깊은 고민까지 나눌 수 있게 해준 대학의 친구들이 금희를 바꾸어 놓았다.

“한국에 대한 편견이 내 속에 자리 잡고 있을 때 고마운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나를 찾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고 믿어 주는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평안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북한 사람이다”고 당당히 외치는 금희는 북한에서 어려운 시절을 겪었지만 여전히 고향을 사랑한다. 두만강을 건너기 전, 고향 땅을 향해 절을 하며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던 약속을 가슴에 품고 있는 소녀. 금희는 오늘도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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