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그리고 친구들을 볼 수 없었지…”

“‘펑.펑’ 소리와 함께 바로 옆에 불기둥이 만들어졌어..함께 입대한 친구들이 피를 흘리며 하나, 둘 쓰러지고 다시는 볼 수 없었다오”.

경남 하동군 화개면사무소 뒤편 야산에서 24일 펼쳐진 한국전쟁 학도병 유해발굴작업 현장에 선 4명의 참전 학도병들이 57년만에 찾아와 친구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발굴현장에 국화꽃을 던지며 아까운 나이에 먼저 간 친구들의 넋을 위로한 뒤 발굴을 위해 삽과 큰 붓 등 도구로 땅을 파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속 장병들의 손길에 아예 눈을 붙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당시 국군이 사용하던 대검과 10여개의 유골, 실탄이 가득찬 탄창, 신발, 십자가, 혁띠, 시계 등이 하나씩 드러났다.

감식단 관계자는 “시신들이 포개져 있는 것으로 봐 한국전쟁때 죽은 시신들을 함께 모아 흙으로 덮은 것 같다”며 “발굴된 유골의 치아 상태로 봐 15~20세이며 혁띠와 시계 등을 고교생이 자주 사용했던 것으로 미뤄 학도병들의 시신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당시 학도병 신분으로 화개면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가했던 정효명(75.전남 여수시.여수고 1년때 참전)씨로 부터 “주민들이 시신을 모아 합장했다”는 제보를 받고 이곳을 학도병들의 첫 발굴장소로 선택했다.

정씨는 “목숨을 잃은 전우 대부분이 여수와 순천지역에 살던 10대 후반의 학도병이었고 입대한 지 불과 10여일만에 전장에 투입됐다”며 “180여명의 학도병 가운데 70여명이 여기서 전사했다”고 말했다.

참전 학도병인 박순배(77.전남 여수시.여수수산고 1년때 참전)씨는 “친구들과 ‘조국수호’ 등 혈서를 쓰고 입대한 뒤 2년만에 학도병들을 학교에 복귀시키라는 대통령령으로 귀가했다가 이 같은 사실을 모르는 국군에 의해 다시 입대해 5년만에 제대했다”고 특별한 군 이력을 소개했다.

이날 발굴작업에는 당시 학도병들의 모교인 여수고, 여수공고, 순천고, 순천 매산고 재학생 대표 8명과 참전 학도병 4명이 참석했으며 감식단은 개토제를 시작으로 발굴작업을 벌였다.

순천 매산고 3년 신대호(18)군은 “우리와 비슷한 나이에 전장에 나와 목숨을 잃은 선배들의 유골 발굴현장을 보니 더 이상 어리다는 얘기를 할 수 없고 이제는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곳은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하하던 1950년 7월13일 전남 여수, 순천 일대의 고교 1∼2년생 180여명이 국군 5사단 15연대에 자원입대해 전투를 벌였고 현재 수 십명의 학도병 시신이 가매장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감식단은 오는 26일까지 발굴작업을 계속할 방침이다.

감식단은 이번 발굴작업에서 출토된 유골들을 모두 공개한 뒤 유족들과의 DNA 일치여부에 대한 판독 작업을 거쳐 신분이 확인되면 국립묘지에, 확인되지 않은 유골은 무명용사 묘역에 각각 안장할 계획이다.

감식단장 박신한(50) 대령은 “이번 발굴작업은 한국전쟁때 숨진 학도병들의 시신을 찾는 기초가 될 것”이라며 “육군은 이름모를 전장에서 나라에 목숨을 바친 학도병을 유족들에게 찾아주는 작업을 계속 벌여 나갈 방침이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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