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돌려달라’ 100만 서명운동 동참해주세요

지난 달 경기도 북부청사를 시작으로 김포시청에서 ‘KAL납북 미귀환 11인의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한 캠페인’을 전개하던 중인 10월 11일, 국제적십자위원회를 통해 ‘남한으로 돌아가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그들 자유의지로 북한에 남아있는 것이며, 이들의 생사(한명 제외)확인은 불가능하다’는 북한의 반인륜적인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 같은 답변은 금년 3월 30일 가족의 생사확인과 송환을 요청하는 편지를 조선적십자위원장과 통일전선부장 앞으로 판문점을 통하여 보내려고 시도했지만, 북측의 거절로 대한적십자사가 4월 20일 국제적십자위원회에 전문을 보내주게 된 조치로 답변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북한의 답변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2006년 6월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받은 ‘생사확인 불가능’이란 북측의 답변과 동일한 내용이었습니다.


지난 1969년 12월11일 강릉 발 김포 행 국내선 YS-11가  정오 12시 25분 이륙 후 10분 만에 대관령 상공에서 북한의 고정간첩에 의하여 피랍되었습니다.


국제사회의 비난여론에 의해 1970년 2월 3일 북한은 승무원과 승객 전원을 무조건 송환하겠다고 회답을 하였지만, 말을 바꾸어 2월 14일 승무원 4명과 승객 7명을 11명을 제외한 39명만을 송환 하였습니다.


이들 돌아온 39명은 ‘KAL납북 미귀환 11인’에 관하여 북한의 강제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북한의 갖은 협박, 고문과 권유도 마다하고 오로지 가족을 그리워했다고 한결 같이 증언을 하였습니다.


또한 이들 돌아온 39명은 특히 저의 아버지(황원 당시 MBC PD)에 관하여, 북한 교관들이 세뇌 교육시간에 아버지의 이론적인 답변을 못마땅하게 여겨, 온갖 협박과 공포분위기로 “이 새끼 남산의 백골로 만들어 주겠어”라고 협박하였고, 이런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아버지는 “내가 남산의 백골이 된다고 하여도 너의 말은 도저히 못 받아들겠다”라고 사상논쟁을 벌였다고 말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급기야 2주 동안 행방을 알 수가 없었고 그 후 2주 뒤인 1월 1일 북한 군인이 자리를 뜨고 없을 때 아버지가 ‘가고파’ 노래를 불러 모두가 합창을 하였고 이때 끌려간 뒤 판문점으로 돌아 올 때 까지 영영 볼 수 없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또한 사건 당시 ‘KAL납북 미귀환 11인’들은 북한 당국의 반인륜적, 반인도적인 행위로 귀환의사조차 밝히지 못했을 뿐인데 당시 조선적십자사는 ‘KAL납북 미귀환 11인’들의 자유의사에 의한 체류라는 억지주장만 하였습니다. 더욱이 당시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제안한 공정한 제3자를 통한 ‘KAL납북 미귀환 11인’의 자유의사만이라도 확인하자는 제의마저도 조선적십자사는 답신으로 거부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지난해 UN인권이사회 산하 강제적 비자발 실종 실무반(WGEID)에 황원 씨(MBC PD)를 시작으로 이동기(강릉합종인쇄소 대표), 최정웅씨(한국스레트 강릉지점장)가 순차적으로 접수하였고, 서류 검토를 마친 유엔 실무반이 올 8월말 제네바 주재 북한 대표부에 정식으로 해명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내년 2월 말까지 세 사람의 생사 여부와 소재지를 명확히 밝혀주어야 합니다.


우리 가족들은 처음부터 100만인 서명운동을  내년 2월 말 유엔인권이사회 산하 강제적·비자발적 실종 실무그룹의 답변을 받고 진행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생사를 확인해줄 수 없다는 북한의 답변은 우리 가족들에게 가족의 생사확인을 위한 적극적인 방법을 강구하게 만들었고 이에 북한을 더욱 압박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조기에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국제사회는 ‘KAL기 납치사건’에 관하여 ‘특정 목적 하에 자행되는 외국인에 대한 납치문제’로  ‘특히 악랄한 인권유린행위(particularly heinous violation of human rights)’이자 중대한 ‘조직적 국제범죄(internationally organized crime)’로 간주하며, 시효를 전혀 적용하지 않습니다.


‘KAL기 납북사건’은 단순 40년전의 사건이 아닙니다.


‘KAL기 납북사건’은 40년 전에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금 우리시대에 반드시 풀어야하는 중차하고 중대한 인도주의적 사안입니다.


또한 KAL납북 문제는 오리무중인 납북자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해결의 열쇠입니다.


근 6년간 일본정부는 자국의 납치피해자문제 해결을 위하여 국제사회에 끊임없이 납북자 문제를 제기하여 왔습니다. 유엔인권이사회가 개회가 될 때마다 또한 유엔총회에서 일본정부는 자국의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하여 끊임없이 북한에 요구하지만, 북한은 고이즈미 총리가 납북자 5명을 데려감으로써 납치문제는 이미 해결이 되었고, 더 이상의 납북자는 없다는 주장을 반복하며 논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KAL납북자 문제가 대두가 되면서 상황은 바뀌게 되었습니다. KAL납북자 문제는 너와 나 우리 모두와 전 세계가 아는 역사의 한 팩트(Fact)로 북한의 납치행위를 전 세계인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논쟁으로 끝이 날 사안이 아닙니다. 이에 따라 내년 2월 말에 유엔 메카니즘에 따라 북한은 명확한 답변을 주어야 합니다.


만약 북한이 일본 납북자 문제를 대하듯이 우리 가족들에게 답변을 준다면, 북한이 지금까지 유엔에서 주장한 모든 것은 거짓으로 판명날 것이며, 유엔은 북한을 국제범죄국가로 낙인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진행이 되기 때문에 시간을 요 합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KAL납북 미귀환 11인의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동참으로 국제사회 안에서 북한의 만행을 적극적으로 폭로하고 국제사회의 공론화를 앞당겨 반인도적이며 반인륜적인 북한을 실질적으로 압박할 수 있게 하고, 살아 생전에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참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지난 8월 말 비공식 루트를 통하여 아버지께서 평양 근교에 살아 계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지금은 75세 된 아버지이시기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족들에겐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 가족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죽을힘을 다하여 노력하지만, 만나 보려는 순간 ‘어젯밤 운명 하였다’이라는 말도 안 되는 비운의 소식을 접할까 하는 기우와 두려움입니다.


우리 가족들은 어느 누구하나 유골로 된 아버지를 뵙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오직 소망은 살아계신 아버지를 만나 가족임을 확인하고 싶을 뿐입니다.


인류의 가장 중요한 인도주의적 정신과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인권의식으로, 또한 기초적인 가족을 구성하고 있는 같은 구성원으로서 한 가정의 아버지요, 아들인 여러분들에게 호소합니다. 저의 아버지를 포함하여 ‘KAL납북 미귀환 11인’인 가족의 전원이 가족의 생사확인과 중국을 제외한 제3국에서 반드시 꼭, 상봉할 수 있도록 100만인 서명운동과 후원에 함께 동참하여 주시길 감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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