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파트 사망 1주년…살얼음 위의 중동 평화

(동아일보 2005-11-11)
팔레스타인 독립투쟁의 상징인 야세르 아라파트 전 수반이 사망한 지 1년이 지났다. 마무드 아바스 수반이 그의 뒤를 이었으며, 가자지구에 건설된 유대인 정착촌이 철거되고 이스라엘군도 철수했다. 아라파트 생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변화다.

하지만 양측의 죽고 죽이는 유혈충돌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가난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삶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 중동 평화 시대 오나 = 아라파트가 사망했을 때 드디어 중동 평화의 길이 열릴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스라엘이 무장투쟁을 고수하는 그를 평화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1993년 오슬로 협정을 주도한 아바스 수반이 1월 9일 선거를 통해 공식 후계자가 되자 기대감은 더 커졌다. 실제 아바스 수반은 2월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와 이집트 샤름알셰이흐에서 정상회담을 열어 평화 선언을 채택하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을 설득해 휴전 약속을 이끌어 내 9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철수를 성사시켰다.

정치뿐만 아니다. 모셰 카차브 이스라엘 대통령이 라마단이 끝난 것을 축하하는 저녁 만찬을 연 자리에 나세르 유세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내무장관이 참석하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재건을 위한 경제적 지원 움직임도 활발하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4월 제임스 울펀슨 전 세계은행 총재를 팔레스타인 재건을 위한 특사로 임명했으며 국제사회가 앞으로 3년 동안 30억 달러(약 3조 원)를 팔레스타인에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속빈 강정’이 될 수도 =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는 철수했지만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국제사법재판소가 “불법”이라고 판결했음에도 2002년부터 시작한 8m 높이의 ‘보안장벽’을 계속 쌓고 있다. 이스라엘 내부와 가자지구 점령지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연결시키는 790km에 이르는 관통도로도 건설했다.

이에 팔레스타인인들은 아바스 수반에게 1990년대 초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통해 설치된 검문소를 없애고 도로 통제권도 찾아오라고 요구하고 있다.

휴전을 선언한 하마스 등 무장단체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이들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철수한 것은 시작에 불과하며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완전히 물러날 때까지 무력투쟁을 계속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특히 이슬람 지하드 등 다른 무장단체들의 이스라엘을 향한 공격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중동연구소 홍미정 교수는 “이스라엘이 계속 팔레스타인의 땅을 빼앗고 민간인들에게 총을 쏘는 점령정책이 계속되는 한 협상을 통해 평화를 이룩하겠다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