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존댓말 쓰는 아버지

28일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에서 열린 남북이산 가족 화상상봉장에서는 구십 세가 넘은 고령의 아버지가 고향에 두고 온 맏아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심지어는 존댓말까지 사용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함경도 출신의 김승학(94.대구시 동구 율하동)씨는 이날 북측 아들의 요청으로 화상상봉장에 나와 한국 전쟁 당시 북에 두고 온 다섯 남매를 만났다.

한때 꿈에서도 잊지 못하던 아들딸들이었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 옛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김씨는 이것저것 물어오는 자식들에게 시종일관 “네” 또는 “고맙습니다”라며 짧게 응답할 뿐이었다.

또 제발 한번이라도 따뜻하게 이름을 불러달라는 5남매에게 “김하용, 김월봉…” 하고 마치 교사가 출석을 부르듯이 호명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그러나 김씨는 이따금 칠순의 아들에게 “귀가 닮았네”라거나 셋째 딸인 월천(61)씨에 대해 “셋째 딸이 참 예뻤는데…”라고 말해 서로 서먹해 하는 남북한 가족들 사이에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남측에 있는 김씨의 장남 하진(47)씨는 “아버지가 재혼하신 뒤에도 북쪽 가족을 잊지 못해 가장 먼저 정착한 곳이 휴전선과 가까운 경기도 포천이었고 큰어머니(전처)의 생신에 맞춰 제사도 모셔왔다”며 북측 가족들을 위로한 뒤 “아버지, 55년간 그리던 얼굴 아닌가요. 좀 보십시오”라며 김씨를 재촉하기도 했다.

짧은 만남 속에서도 자식들에 대한 기억과 망각을 수차례 반복한 늙은 아버지는 헤어질 시간이 되자 “죽기 전에 한번 더 봐야 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한 채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자식들을 향해 하염없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