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만은 일본에 두고올 걸” …여성 귀국자 하소연

▲ 북한 평양 룡성구역 순평지구 완구공장 내부 ⓒ데일리NK

필자가 미국에서 청바지 공장을 5년째 하고 있을 때다.

젊은이들에게 고급 브랜드로 알려진 ‘게스. GUESS’ 브랜드 오리지날 청바지와 백바지를 생산하고, 한 벌에 200 달러가 넘는 남자 고급 남방을 만들고 있었다. 청바지를 북한에서 생산해보고 싶어 마땅한 봉제공장을 찾던 중 ‘락원 제 3무역상사’ 이문섭 사장의 소개로 K사장을 만났다.

둥그런 달덩이 같은 인상에 약간 혀 짧은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일본에서 영구 귀국한 사람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문섭 사장은 K사장이 직접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일본에서 봉제를 배웠기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말해줬다. 그래서 바로 공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평양시 평천구역에 있는 공장에는 직공 30여 명이 단정한 복장으로 여성용 블라우스를 만들고 있었다. 제품이 비교적 고급스러운 디자인이라 판매처를 물으니 중앙당 여성들이 행사 때 입을 거라고 했다. K사장은 일본 사람처럼 조금 수선스럽다.

그런데 얼마나 친절한지 이산가족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필자 또한 K사장이 살기 좋은 일본에서 왔다는데 지금의 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조국이라고 찾아와서 그나마 기술이 인정되어 공장이라도 운영해 다소 위로는 되겠지만, 그래도 일본생활을 생각하면 얼마나 괴로울까 해서 동정이 많이 갔다.

상담을 해 보니 현재 일본의 조총련계 봉제공장과 합영으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지만, 앞으로는 일본으로 수출할 수 있는 옷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청바지를 만들려면 우선 재봉틀을 별도로 준비해야 하는데, 재봉기계는 일본에서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우선 다음 방문 때 청바지 견본을 만들 수 있는 원, 부자재를 가져와 직접 생산해 평가를 해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아들만은 일본에 두고 올 것을 후회하는 K 사장

그 자리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는데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고 안내원이 시간약속까지 했단다.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상담을 하고 헤어질 때 그 자리에서 저녁식사 약속을 해도 되는데 꼭 별도로 안내원과 먼저 합의를 하는 절차를 밟았다.

평양 방문기간 동안 안내원이 비서이자 신변보호 책임자다. 또 일정관리를 도맡아 할 의무를 지고 있기 때문에 일단 안내원의 허가 없이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없게 돼있다.

저녁식사는 고려호텔 별실. K사장은 나를 보니 일본에 있는 오빠 생각이 난다면서 손을 약간 떨면서 잡고 놓질 않는다. 평양 와서 술을 배웠다고 하면서 맥주를 제법 마신다. 미국 교포들의 생활에 대한 관심도 많아 질문이 많았다. 살았던 일본이 그리워 질문도 많아 보였다.

그녀의 눈에서 뭔가 하소연 하고픈 심정이 읽혔다. 일본에서 이혼하고 아들 하나만 데리고 홀홀 단신으로 조국에 왔다고 한다. 후회하는 눈치가 보인다.

아들을 일본 친정엄마에게 두고 올 걸 잘못했다고 술김에 이야기를 한다. 옆에서 무릎을 건드렸다. 안내원이 듣고 있는데 무슨 문제가 생길까 걱정이 돼 발로 슬쩍 건드리기도 했다. 그동안 쌓인 불만과 슬픔이 곧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그녀는 “위대하신 우리 어버이 수령님과 친애하는 김정일 장군님의 뜨거운 배려로 일년에 한번씩 일본을 다녀오니까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한번씩 강조해 말하기도 한다. 안내원 눈치 봐 가면서 적당히 잘 털어 놓는다.

이내 인종 차별이 심한 일본놈들에게 압박받고 살 때보다는 훨씬 행복하다고 큰 소리로 강조했다. 필자의 눈에는 불만을 감추기 위한 의도적인 푸념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 마음을 천천히 헤아려 보니 내 마음도 함께 서러웠다. 얼마나 후회를 하는지 마음속이 들여다 보이는 것 같았다.

몇 일간 밤새 양복 손수 만들어 줘

다음 번에 오실 때는 오빠라고 부르겠단다. 화끈한 성격이다. 안내원에게도 “안내원 동지! 나보고 누나라고 불러, 내가 누나 노릇 할게 알았어?” 한다.

주변에 친척들이 없어 무척 외롭다고 한다. 일본 오빠가 보내준 자가용도 있고 나름대로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마음으로 모시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제법 수다를 떨었다. 이런 감격스러운 표현을 해야만 피해를 받지 않는다는 습관이 배여 있는 듯했다.

저녁식사 후 안내원과 함께 온 자기 직원과 내 방으로 갔다. 기념으로 양복을 한 벌 해 드리고 싶다고 몸을 재자는 거다. 싫다 해도 막무가내다. 안내원에게도 권했다. 오빠에게 양복 한 벌 손수 만들어 선물하겠다는데 왜 거절 하느냐고 줄자를 들이댄다. 안내원 보기에 미안해서 그럼 안내원도 한 벌 해달라고 하니 쾌히 응한다.

“그럼 안내원부터 몸을 재기요.”
안내원 치수가 나와 비슷하다. 가끔 바꿔 입어도 되겠다고 하여 한바탕 웃었다.

몇 종류의 양복천도 미리 가지고 왔다. 나는 연한 회색에 바탕무늬가 있는 것으로 정했다. 이틀 후면 출국할 날이다. 그런데 하루 밤 사이에 만들어 가봉을 하러 왔다. 깜짝 놀랐다. 밤새 만들었다는 거다. 입어보니 조금 크다.

다시 가지고 가서 출국 하는 날 아침 새벽같이 가지고 왔다. 보통 성의가 아니다. 입어보니 그래도 조금 크고 마음에 차지 않았다. 옷이 힘이 없고 바지도 펄렁하다.

만들어 준 사람이 오히려 고맙다고 열 번 스무 번 절을 한다. 출국할 때 꼭 입고 나가란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성의가 고마워 입고 공항에 나갔다. 남의 옷 빌려 입은 것처럼 몸에 붙지를 않는다. 그래도 안내원이 만져보면서 “성의가 대단하다. 참 멋있다. 딱 맞습니다. 다음 조국에 오실 때 이 옷을 꼭 입고 오십시오” 하며 연신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두 달 후 평양 방문 때 청바지 견본과 천, 재봉바늘, 실, 일체를 준비하여 K사장에게 화장품 선물과 함께 전했다. (계속)

김찬구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필자약력> -경남 진주사범학교 졸업 -국립 부산수산대학교 졸업, -LA 동국로얄 한의과대학졸업, 미국침구한의사, 중국 국제침구의사. 원양어선 선장 -1976년 미국 이민, 재미교포 선장 1호 -(주) 엘칸토 북한담당 고문 -평양 순평완구회사 회장-평양 광명성 농산물식품회사 회장 -(사) 민간남북경협교류협의회 정책분과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남대 북한대학원 졸업-북한학 석사. -세계화랑검도 총연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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