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답게 힘차게 살았습니다”

“어머님 큰 절 받으세요. 통일될 날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건강하십시오”

“그래 내 아들 착하다. 장하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8일 이뤄진 3차 남북이산가족 화상상봉에서 일본에서 만경봉호를 타고 북한에 간 큰 아들 한규삼(69)씨와 작은 아들 건진(62)씨를 만난 남측의 김순생(91.여.부산 영도구)씨는 50여년만에 아들들의 모습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화면에 나타난 아들들이 울먹이며 큰 절부터 하자 “내 아들. 내 아들…”하며 말을 잇지 못하다 “착하다. 건장한 모습을 보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지나간 세월을 한탄했다.

부산에 사는 건진씨의 누나 순지(67)씨는 “내동생 건진아. 건진아”를 외치다 목이 잠겼고 건진씨는 “누님. 누님”을 반복하다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들이 헤어진 것은 광복 후인 1948년께 일본에서 였다.

김씨와 딸 순지씨는 곧 귀국했으나 헤어져 일본에 있던 건진씨는 30대초반 만경봉호에 몸을 실었고 이어 6개월 뒤 형인 규삼씨도 이 배를 탔다.

건진씨가 “북한에 온 뒤 김책 공업대를 졸업하고 큰 기업의 실장으로 근무하면서 발명권(특허권)을 3개나 땄고 제일 큰 훈장까지 받았다”고 자랑하자 어머니 김씨는 “착하다. 장하다”라며 아들을 대견스러워 했다.

이어 큰 아들 규삼씨가 사진속 가족들을 가리키며 사위를 비롯, 손자까지 모두 명문대를 나왔거나 입학했다고 하면서 “어머님의 아들답게 힘차게 살아왔다”고 하자 김씨는 “그래 고맙다”를 반복하며 흘러 내리는 눈물을 계속 훔쳤다.

규삼씨는 북에 있는 가족들을 일일이 이름과 나이, 직장 등을 소개한 뒤 “여기 있는 어머님의 식솔들이 모두 22명이나 된다”고 큰 소리로 말하자 남측 가족들은 “만날 날을 위해 건강하게 잘 살자”며 화답하고 짧게만 느껴진 1시간 동안의 화상상봉을 아쉬워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