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형님과 55년만의 감격의 상봉

“형님들이 먹여주고 학교도 보내주고 해서 제가 지금 이렇게 잘 삽니다.”

6.25 전쟁통에 헤어진 북측의 쌍둥이 형님 김행진.봉진(78)씨를 만난 남측 창진(72)씨는 9일 오전 서울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본사에 마련된 상봉실에서 화상을 통해서나마 감사의 큰절을 올렸다.

창진씨가 북측의 쌍둥이 형님과 헤어진 것은 1950년 6월25일 전쟁이 터졌던 당일이었다. 당시 서울에서도 몇 개 되지 않던 택시 회사에서 운전기사와 기술자로 일했던 형님들이 새벽 일찍 일하러 집을 나선 뒤로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당시 서울 흑석동에 있는 산공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창진씨는 이제나저제나 형님들이 집으로 돌아올 날만을 기다렸지만 결국 한달 뒤 혈혈단신으로 아버지가 계시는 고향 전북 김제까지 내려갔다.

창진씨는 “형님들이 택시회사에서 유능한 기술자로 인정을 받았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 덕분에 나도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유학을 올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북측의 형님들 역시 전쟁통에 나이 어린 동생이 혼자서 어떻게 살아 남았는지 못내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형님들은 창진씨가 “형님들 덕분에 지금 제가 잘 살고 있다”고 고마움을 표시하자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84년에 사망한 아버지를 대신해 참석한 조카 광휴(65)씨는 북쪽의 작은 아버지들이 어릴 적 자신을 업고 초등학교에까지 데려다 주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기만 했다.

광휴씨는 “작은 아버지(창진씨)가 형님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서울로 올라가 지금까지 살았다”고 대신 전하자 시종 미소를 머금고 있던 형님들의 얼굴에 촉촉하게 물기가 어렸다.

창진씨는 북측의 조카 명근(39)씨에게 “형님하고 형수를 잘 모셔달라. 그래야 너희들도 우리 아들 딸하고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부탁했고, 또 형님들에게도 “건강하셔야지 우리 아들 딸도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신신 당부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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