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생산량 으뜸이던 황해도 연백벌이 이젠 배고픈 동네”

올해 5월 국내로 입국한 탈북자 김모(남·38세) 씨는 탈북 직전 황해남도 연안군 시골 마을에서 주민들의 어려운 생활을 목격하고 “정말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그가 거주해온 곳은 함경북도 무산이지만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2007년 여름부터 2008년 초까지 연안군 주변 농촌에서 지냈다고 한다.

연안군은 황해남도 남동부에 소재하고 있다. 동쪽은 배천군, 북쪽은 봉천군, 서쪽은 청단군, 남부는 강화만에 접해 있다. 이 곳은 곡창지대여서 쌀 생산이 잘되기로 소문난 곳이다.

김씨 는 곡창지대에 사는 시골 사람들이 하루 두 끼를 간신히 잇는 모습에 가슴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들어 힘들었다고 말했다.

한해 농사 군량미로 징수해 11월에도 쌀이 부족해

2007년 11월 초 김 씨는 일을 볼 겸해서 연안군 장곡리에 사는 친구를 찾아갔다. 그런데 저녁식사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식사준비를 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이를 의아해온 김 씨는 친구에게 “왜 밥을 해먹지 않냐”고 묻자 그는 “식량이 충분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깜짝 놀란 김씨는 “지금 11월인데 식량이 부족하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탈곡한 알곡을 군량미로 다 실어가니 우리 같은 농사꾼들은 1년 먹고 살기도 벅차다”며 “분배도 제대로 주지 않아 내년 살아갈 일이 막막하다”고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김 씨가 여름에 이 지역 대안리와 오윤리 일대 등 농촌에 가보니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하루 한두 끼를 먹고 있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식량 사정이 어찌나 바쁜지 하루 한두 끼 국수와 죽으로 때우는 집들이 많았다. 이런 사정은 대안리 뿐이 아니었다. 라진포리나 오윤리 등 군소재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리 주민들의 생활형편도 별로 다를바 없었다.

알고 보니 논에서 실어 들여 탈곡한 벼는 군량미로 다 바치고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벼를 탈곡해야 농장원들 분배를 준다는 것이다.

농장원들에게 식량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는 원인은 군량미 징수뿐 아니라 도내 간부들의 거짓보고와도 관련이 있다. 간부들은 한해 수확된 농작물에 대해 상급에 보고할 때 자신들의 ‘충성심’을 과시하려 거짓 보고를 하는 것과도 관련된다.

간부들의 거짓 보고로 통계가 집계되면 상부에서는 생산량에서 군량미를 빼도 농장원 들에많아 그게 게 차례질 식량이 어느 정도는 될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간부들의 거짓 보고 덕분으로 실지 이들에게 차례지는 식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

여름 한철은 감자로 끼니를 때우는 군인들

이곳에서는 농장원뿐 아니라 군대도 배급사정이 좋지 않다고 한다. 국가에서 농장의 알곡들을 군량미로 실어간다고 하지만 군인들 역시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날 경비대 초소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갔던 김씨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금방 저녁식사를 마친 군인들이 식당 옆 공지에 빙 둘러 앉아 뭔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가까이 가보니 군인들이 하는 일은 다름 아닌 감자 깎기였다.

덩치 큰 군인들이 저마다 숟가락을 하나씩 쥐고 가운데 놓인 큰 양동이에 가득 담긴 감자를 건져다가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김씨가 “감자를 저리 많이 벗겨서 뭐하냐”고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가 말하기를 “낼 아침 삶아먹을 감자다”고 답변했다.

김 씨는 군인들도 감자로 끼를 때우나”고 묻자, 친구는 “여름 한 달 정도는 감자로 끼니를 잇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 씨는 “우리 나라도 다 됐다. 나라를 지킨다는 군대까지 감자로 사는 정도니 감자만 먹는 군대가 뭔 싸움을 바로 하겠냐”고 한탄했다고 한다.

황해도 연안군 일대는 예전부터 농사 벌이가 제일 좋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특히 연백(연안군과 배천군)벌은 땅이 기름져 농사가 잘 되고 덕분에 이곳 사람들은 먹을 걱정을 모르고 살았다고 소문이 날 정도다.

1990년대 북한의 대아사 기간에도 황해도 농촌 사람들은 쌀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 당시에 함경도나 자강도, 양강도 사람들이 떼로 굶어 죽을 때도 이 곳은 무더기 아사는 피했다는 것이다.

또 평북도 신의주 사람들은 국경을 통해 무역 또는 밀수로 들어온 중국제 물건들을 가지고 황해도에 가 그 곳에서 백미로 교환해 가지고 오곤 했다.

벼농사보다 옥수수를 비롯한 잡곡을 많이 심는 함경도 사람들도 그릇이나 옷가지를 비롯한 공업품들과 옥수수나 콩 같은 잡곡들을 가져가서 백미와 바꿔오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새로운 경제 체제 도입과 강화되는 군량미 징수,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황해도 지역 농장원들의 생활도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열심히 일해도 배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자 농장원들은 일마저 대충하거나 장사에 나서면서 생산량은 더욱 감소했다.

결국 지금은 이 지역도 생활 형편이 가장 열악한 지역 중 하나로 꼽히게 됐다. .

김씨는 “오죽하면 이 지역 쌀 값이 함경도보다 200원(백미) 더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됐겠냐”며 혀를 차기도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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