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차관 북송…`북핵 고리’ 끊길까

정부가 26일 북한의 2.13합의 이행에 사실상 묶여 있던 대북 식량(쌀) 차관 북송을 발표하면서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엮여버린 북핵 문제와의 악연을 끊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아울러 북핵 정세가 급류를 타고 있는 가운데 남북이 쌀 차관을 바탕으로 자체 동력을 확보, 6자회담과 남북관계 사이의 선순환을 이뤄나갈 수 있을지도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 우여곡절 끝 북송 = 대북 식량 차관 북송은 2005년치 50만t 수송작업이 작년 1월7일 완료된 이후 작년에는 이뤄지지 못했다. 굳이 따지자면 18개월만의 북송이다.

정확히 보면 지난해 미사일 발사에 이어 북한 핵실험으로 북송할 출구를 찾지 못하고 1년간 헤매던 끝에 이뤄진 것이다. 올해 식량차관합의서를 기준으로 하면 애초 합의한 첫 북송 시기보다 한 달 늦게 이행된 것이다.

쌀 차관에 대한 남북합의와 북송 시기는 지난해 이후 사실상 북핵 상황에 연동되면서 희비를 같이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쌀 차관 논의가 묶인 것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문이다.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동향이 포착된 작년 6월을 전후해 3차례 이상 여러 경로를 통해 발사 움직임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고 그 과정에서 대북 지원이 중단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실제 통일부는 작년 6월21일 한나라당에 대한 현안보고에서 “미사일 발사가 이뤄지면 쌀이나 비료를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사일 발사 이후 6일 만에 열린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쌀을 달라는 북측 요구를 우리측이 거부하자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경색됐다.

사전에 지원중단 가능성을 경고한 상황에서 북한이 우리를 사정권에 둔 스커드미사일을 쏘면서 여론까지 악화돼 정부로서는 쌀을 줄 수 없었다.

정부는 관계 회복을 위해 7월 북한이 수해를 입자 10만t의 쌀을 무상지원하는 작업에 들어갔으나 10월 초 핵실험으로 모든 게 다 날아가버렸다.

핵실험의 여파는 애초 6자회담 `재개’로 예상됐던 쌀 차관 재개를 위한 출구도 6자회담 `진전’으로 밀어냈고 결국 같은 해 12월 베이징에서 회담이 재개됐는데도 불구하고 지원할 수 없었다.

결국 2.13합의로 호전된 흐름을 타고 2월말 열린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공감대를 이뤘지만 당시에도 북핵과의 악연을 떨쳐버리진 못했다. 쌀 차관을 논의할 제1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협위) 시기를 2.13합의 초기조치 이행시한(60일) 직후인 4월18일부터로 잡은 것이다.

제13차 경협위 때는 2.13합의와의 연계가 더욱 구체화됐다.

예상과는 달리 2.13합의가 이행되지 못한 채 경협위가 열리자 우리측은 쌀 차관 40만t에 합의하면서도 “북한의 2.13합의 이행 여부에 따라 시기와 속도를 조정할 수 있다”며 연계했다.

정부는 그 후 쌀 차관 합의서의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 등 내부 절차를 거쳐 5월22일 공포했고 남북은 같은 달 30일에는 한국수출입은행과 조선무역은행 사이의 차관계약서를 발효시켰다.

그러나 정부는 2.13합의 이행이 지체되면서 북측과 합의한 첫 북송시기인 `5월 하순’을 지키지 못했고 이에 따라 지난 1일 끝난 제21차 장관급회담은 사실상 쌀 공방 끝에 종결됐다.

◇ 북핵 `악연’ 끊고 남북관계 동력될까 =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2.13합의 이행의 걸림돌이던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돈 송금이 이뤄지자 쌀 차관과 북핵문제 간 연결고리를 끊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 21일 “식량은 조건을 걸어서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대북 식량지원 문제는 북한 핵문제 해결과 연계시켜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때를 놓쳤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지난 5월29~6월1일 서울에서 진행된 제21차 장관급회담은 북한이 우리의 합의 미이행을 문제 삼음으로써 사실상 결렬됐다.

더욱이 정세는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돌아갔다. 북한이 지난 16일 송금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을 확인하면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대표단을 초청하고 21일에는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전격 방북한 것이다.

정부가 쌀 차관 북송시기를 발표한 이날 IAEA대표단이 방북했다.

일단 2.13합의와 연결고리를 끊으려면 북핵 상황과 무관하게 지원이 이뤄져야 했지만 북핵 문제를 둘러싼 급박한 움직임으로 인해 정부가 이런 타이밍을 잡기 어려웠던 것으로 관측된다.

그렇다고 북한의 식량사정을 감안할 때 마냥 늦출 수도 없었고 2.13합의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도 마땅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재정 통일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송 결정 이유로 “2.13합의가 이행 국면으로 진입하면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 여건이 마련되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국내외 여론을 들었다.

이런 설명은 정부가 힐 차관보의 방북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북송 결정이 북핵 상황의 진전으로 여론이 호전되면서 이뤄진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는 또 `2.13합의 이행 여부에 따라 북송 시기와 속도를 조정할 수 있다’는 정부 입장의 변화 여부에 대해서도 “쌀 차관 제공이 차질 없이 이뤄질 수 있도록 북측과 여러나라의 공동노력이 성사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2.13합의 연계 입장에 큰 변화가 없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장관은 나아가 “쌀 차관 자체가 2.13합의(이행)에 지렛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국민들이 쌀 차관 제공에 대한 공감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향후 4~5개월 걸릴 북송작업 과정에서 6자회담이 불능화나 고농축우라늄(HEU)프로그램 등의 문제로 북핵 문제가 다시 흔들릴 경우 쌀 차관 북송은 속도조절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특히 북한이 IAEA 사찰관을 다시 추방하거나 핵실험을 하는 등 정세를 악화시키는 중대한 추가 조치를 할 경우 쌀차관의 속도가 조절될 수 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하지만 전반적인 흐름에 비춰 6자회담과 북.미 간 대화 기조가 이어지는 한 북송 속도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아직은 우세한 편이다.

이런 상황 탓에 남북관계도 유동적이다.

쌀 차관을 2.13합의 이행의 부산물로 북한이 받아들일 수도 있는 만큼 남북관계는 이렇다할 진전 없이 현재 상황을 유지하는 수준에서 머물 것으로 보는 관측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의 북.미 양자대화 분위기나 6자회담의 진전 상황 만큼이나 속도를 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북한이 최근 6자회담 상황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에서는 서해 해상경계선 문제를 놓고 대남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상황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남북관계를 복구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만큼 해상경계선 문제만 제대로 푼다면 군사적 뒷받침이 필요한 경협 분야의 발전도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아울러 7월말이나 8월초 6자외교장관회담이 열리고 한반도 평화체제 포럼이 출범할 경우 남북간 숙제에 해당하는 군사적 긴장완화 및 신뢰구축 논의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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