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미북회담은 김계관의 ‘독무대'”

북핵 검증의정서 채택을 위한 마지막 담판의 자리로 여겨졌던 4∼5일 싱가포르 북미 회동이 끝나자 회담 주변 소식통들은 이구동성으로 “김계관의 행보에 춤을 춘 회담”이라고 말했다.

북미 회동이 열리기 이틀 전인 2일 싱가포르에 일찌감치 도착한 김 부상은 회담이 끝날 때까지 특유의 화려한 협상전술을 구사했다.

첫날인 4일 오전과 오후에 걸쳐 5시간 가까이 협상 파트너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 검증의정서와 관련한 현안 및 핵시설 불능화와 에너지 제공 일정 재조정 등에 대해 협의했으나 그는 말을 아꼈다.

그러더니 5일 오전에는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초 이날 오전 10시(이하 현지시간)께 미국 대사관에서 2차 북미회동이 열릴 것으로 예상하고 오전 이른 시간부터 북한 대사관저에 모여든 기자들은 김 부상을 학수고대했으나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힐 차관보를 비롯한 미국 대표단은 이미 오전 10시 회담장소인 싱가포르 주재 미국대사관에 도착, 대기하던 중이었다.

그러자 김 부상의 움직임을 놓고 분석과 전망이 쏟아졌다.
임기 말에 몰린 부시 행정부를 외면하기 위해 시료채취 명문화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결국 이번 회동이 결렬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에서부터 ’시간끌기’로 기싸움을 하는 것이고 곧 절충이 이뤄질 것이라는 비교적 낙관적 해석이 교차했다.

회담장 주변의 시선이 모두 북한대사관저에 쏠린 오후 2시5분께 그는 모습을 드러냈다. 곧바로 협상장인 미국대사관으로 갔고, 오후 2시40분부터 2차 북미회동이 시작됐다. 김계관 부상이 어떤 카드를 가져왔는 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그리고 오후 5시40분께 그는 다시 북한 대사관저로 돌아갔다. 리 근 외무성 미국국장과 함께 차를 타고 들어가던 김 부상은 차에서 내리려하다 기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혼잡해지자 일단 영내로 들어간 뒤 다시 서서히 기자들에게 다가와 몇마디를 던졌다..

그는 “수고가 많다”고 운을 뗀 뒤 “이틀에 걸쳐 10.3합의 마무리를 위한 구체적 문제를 논의했다”면서 “(핵시설) 무력화와 경제보상이 그것인데 우리가 무력화를 진행하는데 따라 상응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부상은 이어 “(지난 10월초의) 평양합의에 따라 검증관련 문제도 논의했다”면서 “쌍방의 관심사항과 우려사항을 알게됐고 앞으로 계속 논의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검증대상과 방법 등의 문제는 평양합의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른바 ’평양합의’를 놓고 미국은 시료채취에 양측이 합의했다고 밝혔고 북한은 이를 공개적으로 부인했었다.

따라서 그의 언급은 애매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기자들이 ’시료채취’ 문제를 묻자 그는 “시료채취는 검증방법의 문제이며, 앞으로 좀 더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증문제는 비핵화 2단계가 아니라 3단계 논의사항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처럼 읽히기도 했다.

어쨌든 ’좀 더 논의해야 한다’는 말은 매우 젊잖은 표현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미국의 요구를 우회적으로 거부 또는 무시한 뉘앙스 묻어난 표현이다.

김 부상은 그러면서 “이번에 크게 합의 보기 위해 모인 게 아니고 쌍방의 목적을 조율하는게 목표”라고 했고 “6자회담이 8일 개최되는데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종합해보면 ’시료채취 명문화’에 대해 직설적으로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교묘하게 답변하지 않았고 6자회담 개최에 동의하는 것을 통해 협상의 다음 수순을 기대하도록 만드는 전술을 구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 기자가 ’부시 행정부가 끝나가는데 한마디 해달라’고 요구하자 “(부시행정부가) 처음에는 시간을 많이 잃어버렸지요”라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를 상대로 그동안 힘든 협상을 해온 감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