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협상팀에 실권줘야” 제언한 비건…김정은, 받아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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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10일 오후 서울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미국과 한반도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하노이 회담의 문제점은 북한의 카운터파트(대화 상대자)가 비핵화 협상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양측 대표들이 권한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만나 실무 협상을 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도자들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고, 세부사항을 이해하지 못하면 합의가 어렵다. 이것이 지난 2년 반 동안의 교훈이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그동안 북한과의 협상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다음달 들어설 새로운 행정부에 비핵화 협상과 관련한 조언을 전했다. 

10일 서울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미국과 한반도의 미래’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비건 부장관은 강연에서 북한과의 비핵화 합의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끝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여러차례 내비쳤다. 

비건 부장관은 “정상회담 1주일 전 협상팀이 하노이에 도착했을 때 그들(북측 실무팀 협상자들)은 그런 논의를 할 권한이 없었다”며 실무협상의 실패가 비핵화 합의의 실패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즉, 모든 결정권이 최고집권자에게 집중돼 있는 북한 특유의 통치 시스템이 협상을 결렬시킨 주된 원인이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No deal)로 끝난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평양으로 돌아오자마자 실무진을 문책하고 엄한 처벌을 내리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8년 제1차 북미 싱가포르 회담에서부터 대미(對美)협상을 총괄했던 김영철 당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혁명화(강제 노역 및 사상교육)를 다녀왔고, 실무 협상을 이끌었던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책략실장과 신혜영 통역관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이 대북제재를 해제해 줄 것이라 기대하며 영변 핵시설을 폐기 카드를 제시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이외의 핵시설을 제시하며 북한의 요구를 거절했다. 

결국 최고지도자가 미국과의 회담에서 엉뚱한 협상 카드를 제시하고 이로 인해 국제적 망신을 당한 것은 실무진의 미진한 사전 조율 때문이라 판단한 것이다.   

10일 저녁 최종건 외교부 1차관(왼쪽)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오른쪽)이 서울 시내 닭한마리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있다. /사진=외교부 제공

그러나 비건 부장관은 톱다운(하향)식의 정상회담만이 북한과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 협상 방식은 아니라고 제언했다. 오히려 실무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속적인 실무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한 실제 결정권자인 지도자들의 충분한 이해와 합의를 도출하기 어렵다”며 “양측 모두 지속적으로 신뢰를 구축하고 새로운 경계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비건 부장관은 북한측 실무 협상팀이 “대화와 합의의 기회를 잡기보다는 협상의 장애물을 찾는데 주력했다”며 실무진이 실질적 진전을 이루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은 비건 부장관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던 2019년 10월 스웨덴 스톡홀름 실무협상 때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북한 측 대표였던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협상이 끝나자마자 미리 준비된 성명을 꺼내 읽으며 “미국이 옳은 계산법을 가지고 나옴으로써 조미(북미) 관계의 긍정적 발전이 가속되리라는 기대감으로 협상에 나왔으나 협상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결렬됐고, 나는 이에 대해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북측은 하노이에서 당한 망신을 되갚아주겠다는 결심으로 협상장에 나와 처음부터 결렬을 준비한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한편, 비건 부장관은 “상가포르 합의의 잠재력은 여전히 살아있다”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싱가포르 합의의 정신이 지속돼야 함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외교가 북한의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믿는다”며 “내년 1월 제8차 당대회 같은 중요한 행사가 있는 만큼 북한이 서둘러 외교를 재개하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당대회에서 대화 복귀를 선언하고 북미 대화가 재개되길 희망하는 메시지로 분석된다. 

이런 가운데, 북한 당국은 최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혁명화 조치하고 리선권 외무상과의 알력 관계를 이용하는 등 여전히 대미 실무진 길들이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김정은 대미 라인 복심 최선희, 3개월간 ‘혁명화’ 갔다왔다

비건 부장관이 이번 ‘고별 방한’에서 발신한 대북 메시지에 대해 북한 당국이 어떤 입장을 보일지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