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통일장관이 가야할 길, 가지말아야 할 길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개각에서 류우익 전 주중대사를 통일부 장관으로 지명했다. 류 전 대사는 내정자 신분이지만 기자들을 만나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이를 위해 필요한 부분에서 유연성을 낼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고 했다. 


2009년 12월부터 1년 반 동안 주중 대사로 일했던 것을 제외하면, 류 내정자는 북한 및 외교안보 분야에 특별한 경험이 없다. 게다가 류 내정자가 주중 대사로 있던 시절 ‘중량감 있는 인사를 대사로 파견함으로써 중국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겠다’는 당초 청와대의 계획도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지적도 있었다.


북한이 천안함을 침몰시키고 연평도에 포격을 가하며 대남 위협수위를 높이는 와중에도 중국은 일방적으로 북한 편만 들었고, 김정일의 중국 방문 때마다 우리 정부가 중국으로부터 사전 통보를 제대로 받았는지에 대한 구설수가 불거졌다.


따라서 남북관계 분야 수장으로서 류 내정자가 장점으로 내세울 만한 것은 ‘이 대통령의 오른팔’이라는 상징성뿐이다. 어쨌거나 ‘원칙있는 남북관계’ 기조가 이 정부 말까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부족한 전문성과 관련해선 류 내정자 스스로 신중하게 정책을 결정하고 처신하는 방법으로 약점 노출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북한을 연구하고 다뤄본 전문가들과 유관부처 실무자들의 조언을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채워가야 할 필요가 있다.


류 내정자가 주중 대사 1년 반의 경력으로 “나도 북한에 대해 좀 안다. 현 상황을 바꿔 임기말에 새로운 업적을 남겨보겠다”라며 성급하게 덤빌 경우 자기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임기 말 이 대통령의 업적 만들기에 눈이 어두워질 경우 과거 정부가 남긴 실수를 답습할 개연성이 높아진다. 


김대중 정부가 정상회담 성사 자체에 몰두하는 바람에 4조 6천억 원이나 되는 돈을 퍼주면서도 두고두고 6·15합의에 발목이 잡혔던 것이나, 노무현 정부가 임기 말에 책임도 지지 못할 백두산 관광 개발에 합의하는 바람에 북한에게 불필요한 명문을 안겨줬던 것을 상기해야 한다.


혹시나 남북정상회담 등을 추진하더라도 북한이 우리가 제시하는 원칙과 기준을 수용할 때까지  전략적 인내가 필요하다. 20~30년간 북한을 연구하고 북한과 협상실무를 담당했던 전문가들조차 이구동성으로 북한은 정말 까다로운 상대라고 규정한다. 북한을 상대로 절대로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 남북 간 힘겨루기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김정일이 핵개발 및 대남도발을 중단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기 전까지 주관적인 기대심리로 남북관계에 접근하는 것은 금물이다. 특히나 류 내정자가 상대해야 인물은 지난 40년간 도발과 협상을 통해 대한민국을 주물러온 김정일이 아닌가.   


김정일은 1990년대 중반 북한 주민의 10%가 굶어 죽고 온 사회가 마비되는 조건에서도 핵개발을 통한 체제유지에 성공해 왔고, 한국의 최고 정치가로 꼽히는 김대중 대통령을 상대로 엄청난 원조와 차관을 이끌었으며, ‘정상회담을 위한 정상회담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노무현 대통령을 평양까지 불러냈다.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서도 중국으로부터 3대 부자세습에 대한 암묵적 지지와 경제원조를 끌어냈고, 20년간 미국과의 핵게임에서도 믿지는 장사는 하지 않았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이후 우리 정부는 사실상 한 번도 전략적 게임에서 김정일을 이겨본적이 없음을 류 내정자는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현인택 장관이 임기중에 별로 한 게 없다고 하지만, 김정일에게 끌려 다니지 않고 처음으로 원칙을 묵묵히 지켜낸 것 자체가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다. 개성공단 폐쇄 협박, 개성공단 남측 직원에 대한 장기 억류와 금강산 관광객 피격,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겪으면서 김정일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정부가 김정일에게 퍼주지 않음으로써 비록 중국과 러시아 정도이긴 하더라도 북한이 대외 개방 제스처를 취하도록 만들고, 화폐개혁 등 내부 변화를 선택토록 강제했다. 김정일의 군사도발에 대해 국방부만 제대로 자기소임을 다했다면 북한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류 내정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의견과 주장에 대해서도 원칙을 유지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대북정책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쟁(政爭)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앞으로 서울시장 보궐선거, 내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격량의 파도에 휩쓸릴 것이다.


뚜렷한 대안도 없이 종북세력과 야당들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시비를 걸고 물고 늘어지며 ‘남남갈등’을 증폭시킬 것이다. 여당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이런 선거정국에서 남북관계의 주무부처인 통일부 장관이 무게 중심을 잘 잡고 다음 정부까지 안정적으로 대북정책 기조가 연결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창업 공신으로써 류 내정자가 개인적으로 되돌아 봐야 할 일도 있다. 지난 4년간 기본적인 대북사업은 대부분 민간이 주도했다는 점이다. 북한주민들에게 약품과 식량을 지원하고, 단파라디오 방송과 전단을 통해 ‘정보 자유화’를 촉진하고, 북한 내부소식을 시시각각 외부사회에 알리며 올바른 대북관 형성을 주도했던 역할은 모두 민간이 수행했다.


국가의 녹(祿)을 먹는 관군(官軍)이 ‘남북관계 경색’ 핑계만 대며 손을 놓고 있을 때, 오로지 의병(義兵)들만이 쉬지 않고 움직였던 셈이다.


류 내정자는 국회청문회가 끝나는 대로 각 의병군의 수장들을 예방하고 고언을 청취하는 것이 옳다. 10년 만에 돌아왔다는 보수정권 시대에 왜 이런 의병들이 배를 곯고 추위에 떨어야 했는지를 똑똑히 들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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