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간 국내에서 암약해오다 최근 수사당국에 의해 그 실체가 드러난 지하당 왕재산과 관련한 조사 대상자가 40여 명이 넘어가고 있다고 한다. 왕재산은 북한 노동당의 지령을 받아왔고 총책 J씨와 핵심 연루자 4명은 북한 국기훈장을 수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 내에 자생간첩과 지하당조직이 얼마나 뿌리 깊게 터를 잡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남한 고정간첩이나 지하당 사업의 출발은 김일성이었다. 김일성은 북한 주도의 통일사업 일환으로 대남 지하당 구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고 지하당 출신들이 사회 곳곳에 진출해 활동하도록 지시했다.
김일성은 1973년 4월 대남공작 담당요원과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은 특별교시를 내렸다.
“유성근(1980년대 납북된 주서독 한국대사관 노무관)의 경우를 보면 남조선에서는 고등고시에 합격만 하면 행정부와 사법부에 얼마든지 들어갈 길이 열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부터는 학생운동에서 검열된 학생 중에서 머리가 좋고 견실한 사람은 데모에 동원하지 말고 고시준비를 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중략) 중앙정보부와 경찰조직에도 깊이 잠입할 길이 있다. 공채시험을 치러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일성이 사망한 지 20여 년이 돼가고 있지만 북한과 연계된 고정간첩과 지하당 구축 세력은 여전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계, 사법부, 행정부, 군, 종교계에 암약하며 세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대남 지하당 구축 전략은 아들 김정일에게 전수됐고 일심회와 왕재산은 이러한 대남전략이 여전함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북한과 연계된 고정간첩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실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그 위험성을 애써 축소하고 무시한다고 해서 그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대한민국 법 질서를 수호하는 사법기관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현실 감각을 갖고 엄정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 좌파정권 시절 임명된 이용훈 대법원장 재임기간에는 북한의 현실을 나이브하게 인식하는 진보좌파 성향의 판사들이 대거 포진해 공안사건에 대한 유화적 판결을 주도했다. 법관들이 공안사건 재판에서 ‘우리 사회에 구체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판결문을 작성한 경우도 적지 않아 보인다.
송두율 재판에서 볼 수 있듯이 간첩행위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있고 혐의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집행유예 판결을 내려 사실상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충분한 증거를 확보해 이적성 여부를 증명해도 일부 판사는 마이동풍식 집행유예 판결로 그 죄의 심각성을 간과해 버린다.
인터넷 상에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라는 카페를 만들어 북한을 찬양했다가 2008년 5월 인천지검에 불구속 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황모 피고인은 항소심 재판에서 1심 형량보다 6개월이 감형됐다.
당시 재판부는 “황씨가 이적(利敵)표현물을 제작·배포한 것은 맞지만, 대한민국의 존립안정을 위협할 수 있는 직접적 행동을 하지 않았고, 그가 미칠 사회적 위험성의 정도를 고려하면 원심 1년6개월의 형은 다소 무겁게 보인다”고 감형이유를 밝혔다. 황 씨는 이 재판 말미에 검사를 향해 “김정일 장군 만세”를 불러 사법부를 농락했다.
아무리 공안기관이 철저히 수사해 간첩을 색출해내도 판사가 간첩 사범의 퇴로를 열어준다면 헛수고에 불과할 것이다. 북한 지하당이나 친북좌파는 재판을 법정투쟁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죄에 대한 반성과 전향이 아닌 법정투쟁으로 여기는 자들에게 법원이 유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결국 대한민국 전체가 유약해 지는 꼴이 된다.
이번 왕재산 간첩단사건에서 연루자들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좌파세력들이 조작을 들고 나오는 것도 이러한 법정투쟁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는 9월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을 임명한다. 대법원장은 국민의 인권보호에 앞장섬과 동시에 국가 안보에도 빈틈이 없는 인물이 임명돼야 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질서 수호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공안사건에서 법질서 수호 방침을 확고하게 갖춘 인물이 필요하다.
법관은 독립된 판결권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법관 제멋대로의 판결이나 이념적으로 편향된 판결을 해서는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 법질서를 부정하고 전복하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 적용을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사법부의 엄정함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실상 대법원장의 인사권이 유일한 카드이다. 편향 판결을 일삼는 판사들은 법원에서 퇴출시킴이 마땅하다. 대한민국의 안보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오는 9월 대법원장 임명 과정을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