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주 아주마이 ‘김장 준비’에 허리가 휜다

어제(16일) 북한에 있는 지인과 전화통화를 했는데 며칠 전 눈이 많이 내려 벌써 한겨울에 접어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김장은 했냐고 물었더니 지난 10일 경에 김치 비슷하게 그럭 저럭 대충 마무리 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지방에 따라 김장 시기가 약간의 차이가 난다. 함북도와 양강도, 자강도 사람들은 10월 중순이면 무를 먼저 캔다. 10월 20일부터 25일까지 배추를 캔다. 김장은 11월 초까지, 늦게는 11월 10일이면 끝난다.


그러나 평안도나 황해도는 함경도보다 날씨가 따뜻한 관계로 무나 배추를 10월 말경이나 11월초까지 밭에서 거둬들이며 김장은 11월 중순부터 시작해 11월 말까지 끝낸다. 또 부부가 모두 맞벌이로 바삐 사는 집들은 12월 5일경에야 김장을 끝내기도 한다.


90년대 중반까지는 그래도 공장, 기업소들에서 농촌에 나가 무나 배추, 파, 마늘 등 김장에 필요한 것들을 받아 공급해줬다. 김장에 필요한 것들을 시골에 사는 친척이나 아는 연줄을 통해 얻어오기도 해서 괜찮았다. 그러나 지금은 개별적으로 돈을 주고 배추나 양념을 사지 않으면 김장을 할 수 없다.


어제 필자와 통화한 북한의 지인은 올해에도 작년과 다름 없이 김장 배추나 양념이 비싸다며 1㎏당 배추는 200원, 무 100∼150원, 고춧가루 7천원, 미원 2500∼3000원, 설탕 2천원, 마늘은 큰 쪽 한 개에 100원(1㎏당 3천원 정도)이다. 여전히 반 철 농량(채소나 먹거리)인 김장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의 가족은 4명인데 내년 봄까지 먹을 김치를 담그려면 못해도 배추 400㎏, 무 200㎏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한다. 배추 400㎏이면 북한 돈 8만원, 무 200㎏은 2만 또는 3만원은 들어야 한다.


또 마늘은 아무리 적게 넣어도 반 톱(50쪽)정도 있어야 하니 오천원은 들어야 한다. 결국 제대로는 아니어도 김치 비슷하게라도 먹으려면 4인 가구의 한 해 겨울 김장준비에만도 10만원 더 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김장 준비에 10만원이 들어갈 정도면 하루 두끼도 먹기 힘든 영세민은 물론 밥술이나 먹는다는 중간층들도 김장 준비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근래 들어 집단농장에서 심어 가꾸는 무나 배추는 비료도 충분히 주지 못하고 개인 집에서처럼 정성으로 가꾸지 않아 쭉정이 같은 것들이 태반이다.


그런 것들을 그래도 우선공급 한다고 당기관이나 군부대, 보위부, 보안서 같은 상급기관들과 권력기관들에 주고 나면 중소 공장, 기업소 노동자들이나 일반 주민들에게는 일인당 30㎏ 정도만 차려져도 다행이다.


무 역시 다를 바 없다. 무는 특수공급대상들에 주고 나머지가 있으면 차례지고 없으면 전혀 공급받지 못한다.


그렇게라도 차례진 배추나 무로  써레기 김치(속이 없는 배추와 무를 썰어 양념을 버무려 넣고 통김치가 익을 때까지 먹기 위한 김치)나 겨우 담그고 온전한 김치를 해먹으려면 장마당에서 배추나 무를 사지 않으면 안된다.


김치는 북한 주민들속에서도 ‘반철농량’이라고 부를만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나 ‘고난의 행군’이후부터는 해먹으면 좋고 못해먹어도 할 수 없다는 개념으로 바뀐 것이 북한의 일반 주민들의 김치문화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1996년과 1997년에는 전국의 모든 가정들이, 심지어 중앙당 간부들이나 한다 하는 권력가 가정들에서도 제대로 된 김치를 해먹기 힘들어 전에는 입에 올려 본적도 없었던 백김치란 말이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기서는 백김치가 겨울철 별미이지만 북한에서는 양념이 된 김치가 빠진 채 하얀 백김치를 먹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당시는 백김치라도 먹는 집이 가장 행복하고 잘 사는 집이라고 다들 부러워했었다. 그 후 어느 정도 호전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김치를 마음대로 담그어 먹기 힘들어 한다.


평안북도 신의주시에 살다 최근 국내 입국한 김모(여·40세) 씨는 “96년도부터 김치를 제대로 해먹어 본적이 없다. 아이가 셋이나 되어 밥도 먹고 살기 힘든데 온전한 김치는 구경조차 할 수 없다”며 “아이들에게 하루 세끼 밥만 먹여도 나는 행복할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 씨는 해마다 남편이 출근하는 공장(신의주화학섬유공장)에서 시래기 같은 것을 김장용 배추로, 무는 꽁다리 연필 같은 것들로 일인당 30㎏, 무 20㎏씩 공급하는데 식구 5명에 배추 150㎏, 무 100㎏을 공급받는다고  한다.


이렇게 공급받은 무나 배추를 손질해 배추 대가리와 무 대가리, 꽁다리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두 집 지붕에 널어 말리었다가 겨울에 국을 끓어먹든가 반찬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손질한 배추, 무는 절였다가 깨끗이 씻은 다음 소금을 뿌려 가며 독안에 차곡차곡 넣는다. 그리고 꺼내 먹을 때마다 형편에 따라 고춧가루와 파, 마늘, 미원을 조금씩 섞기도 하고 그나마도 없으면 그냥 독에서 꺼내어 썰어먹는다.


이렇게 먹는 백김치도 1월 중순경이면 다 떨어져 버리고 이때부터는 여건에 따라 김치를 사먹는다. 하루 세끼 먹고 살기도 힘든 그들 가정에서는 김치 한통 사먹는 것도 어려워 어쩌다 친척들이나 친구들이 김치가 가득 든 통을 들고 찾아가면 애들까지 모두 너무 좋아 명절분위기다.


엎친데 덮치는 격이라고 하루 세끼 밥 먹기도 힘든 일반 주민들에게는 김치가 아무리 중하다 해도 해먹을 여건이 되지 않으니 ‘고난의 행군’ 이전에 집집마다 먹음직한 김치를 담그며 온 동네가 서로 어울려 즐기던 ‘김장 문화’도 아득한 옛말로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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