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자, 수감원에게 ‘윤이상에 속아 왔다’ 밝혀

“혜원·규원은 허리까지 눈이 온 상황에서 나무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와 다른 동료가 교대로 혜원·규원 집에 나무를 해다줬다.” 김기철(가명, 1991년 요덕수용소 수감)



“수용소 내에서 마주친 신숙자 모녀는 절대 하늘을 올려보지 않았다. 땅만 바라보고 걸었다.” 김수철(가명, 1992년 요덕수용소 수감)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북한인권시민연합, 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 국가인권위원회가 5일 공동 주최한 ‘신숙자모녀 구출을 위한 우리의 책임과 역할’ 세미나에서 신숙자 모녀를 기억하는 요덕수용소 생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신숙자 모녀 목격담을 말한 김기철 씨는 “나는 94년도 요덕정치범 수용소를 나왔다.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보위지도원과 친분이 생겼다”면서 “정치범수용소를 나온 후 그 보위지도원을 통해 신숙자 모녀의 생존을 확인했다. 2003년 9월까지 신숙자 모녀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증언했다.



김 씨는 “내가 본 혜원·규원은 9~10세 정도였으며 신숙자 씨는 상태가 매우 안 좋았다.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면서 “‘독일집’이라고 불리는 신숙자 모녀 집에 동료와 교대로 땔감을 전해주면서 친해졌다. 신숙자 씨는 나에게 ‘우리들은 윤이상에게 속아 들어왔다’고 말해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언자인 김수철 씨는 “내가 만났던 사람이 신숙자 씨라는 것은 한국에 들어와서 알았다”면서 “그 ‘독일집’에는 전축이 있어서 특이했다. 수용소 내에 전축이 있던 집은 그 곳 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나와 친하던 여자가 신숙자 씨와 친해 그를 접할 수 있었고 식사할 기회도 있었다”면서 “그들은 대인기피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혜원이가 좀 말을 했는데, 그 아이는 ‘아버지 때문에 여기 있다. 아버지가 들어오면 여기를 나갈 수 있다’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들의 증언을 들은 신숙자 씨 남편 오길남 박사는 증언 시간 내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오 박사는 “나는 사실 뭐라고 말한 자격도 없고 길게 말할 수도 없다. 죄송하다”며 “미물 같은 나지만 매일 밤 죽음의 골짜기로 떨어지는 아내 신숙자와 혜원·규원의 비명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관심을 가져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 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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