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딸’ 신숙자씨 문제를 둘러싼 ‘진실게임’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북한이 유엔에 통보한 신 씨의 사망경위가 구체적이 않아 추가 확인이 필요하고 이후 유해 및 혜원·규원 씨의 송환 등의 논의가 차례로 전개될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이 이에 호응할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이 유엔에 보낸 답신에서 ‘최고의 배려를 담은 확답’이라며 추가 조사나 답변은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여기에 현 대결국면의 남북관계, 납북자 문제 등에 대한 그동안의 비협조적 태도 등을 고려할 때 단기간에 해결될 가능성은 낮다.
현재 정부는 신씨 문제를 ‘인도적 사안’으로 규정, 사망과 관련한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한 혜원․규원 두 딸의 북한 내 거주의사에 대해서도 ‘자유의사를 표명할 만한 환경이었냐’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9일 “남북 적십자 채널과 국제사회와의 협조 등을 통해 신 씨의 생사확인과 송환 촉구노력을 보다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2월 이산가족상봉을 북측에 제안했는데 논의가 시작되면 신씨 문제도 협상테이블에 올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대화 채널이 복원되지 않는 한 정부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통일부 당국자가 “정부는 유엔에서 이 문제가 잘 논의될 수 있도록 민간단체를 옆에서 거들어주는 역할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상황이 반영돼 있다.
유엔을 통한 다자외교 차원에서도 정부의 개입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남편 오길남씨 개인 차원에서 유엔에 진정한 것이기 때문에 공식 개입할 사안이 아닌 이유에서다.
신씨 모녀의 구출운동에 앞장서온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ICNK)는 유엔 실무그룹을 통해 구체적 사망 경위를 확인하고 유해송환을 요구할 계획이다. ICNK는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을 통해 현장답사를 제안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현장답사를 북측이 허용할 가능성은 낮다.
또한 오 씨와 두 딸의 만남, 이후 송환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일단 혜원·규원 씨가 독일 체류당시 ‘무기한 체류 가능한 정치 망명자’ 신분이었다는 점에서 독일이나 유엔 주재아래 제3국에서의 상봉을 고려하고 있다.
이같은 정부와 인권단체 등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다는 것이 관련자들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데일리NK와 통화에서 “신숙자씨 사망과 관련한 구체적 정보 확인을 두고 당분간 밀고 당기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북한은 이미 ‘요코다 메구미’ 사건의 학습효과에 따른 대응 매뉴얼을 갖췄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유엔에 보낸 답신에서 진정서를 낸 오 씨를 ‘전남편’으로 명기했다는 것도 논의 확대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라는 지적도 있다.
북한은 국제여론의 압박이 거세다 싶으면 ‘일방적 통보→경고→추가 사실 공개’ 등의 패턴을 보여 왔다. 대표적 사례가 ‘김영남-메구미’ 가족 사건이다. 당시 북한은 일본의 압박에 납치 인정→유해송환→김영남과 딸 공개→납치설 부인, 메구미 병사(病死)를 주장했다.
특이나 북한이 국제사회서 이슈화된 신숙자씨 모녀 구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이번과 같은 답변서를 보내왔지만 유엔 가입국 의무인 답변서 제출을 근거로 ‘국제적 의무를 다했다’며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이후 국제사회의 여론과 남북관계의 변화 추이를 보고 추가 행동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 북한 전문가는 “대선을 앞두고 신씨 문제로 인해 반북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해 추가로 생사 확인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유엔 ‘임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은 앞으로 2, 3주 내에 신씨 모녀의 북한 체류가 임의적 구금인지 여부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릴 전망이다. 실무그룹의 결정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다만 북한의 반인권적 행위를 인정할 경우 국제여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