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서 ‘거만한 자책’ 연출 김정은, 의도대로 될까?

혹시나 했던 기대는 역시나 하는 실망감으로 돌아왔다. 1월 1일 북한 김정은의 육성 신년사에는 올 한 해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획기적인 제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 성과를 자화자찬하고 핵위협을 새롭게 선보이는 등 김정은은 자신의 존재감만을 부각시키는 데 30여 분을 할애했다. 이 글에서는 2017년 김정은의 신년사 가운데 모순적인 부분을 지적하고, 그의 정세분석에서 나타나는 문제점과 올해 남북관계에 관한 전망을 짚어보도록 하겠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자력자강’을 강조했다. 김정은은 새해의 구호로 ‘자력자강의 위대한 동력으로 사회주의의 승리적 전진을 다그치자!’ 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김정은이 자력자강을 역설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 신년사에선 경제발전의 구체적 과제 가운데 하나로 ‘선진기술 도입을 통한 철 생산원가 절감’을 강조하면서 자기논리의 모순을 스스로 인정하고 말았다. ‘자력자강’하자면서 선진기술을 도입하자는 건 좋은 말만 잔뜩 늘어놓은 미사여구로 주민들을 기만하는 선전용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좀 더 넓게 해석하자면 김정은은 ‘우리식 사회주의’의 실패를 고백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김정은의 정세분석은 예년과 별반 차이가 없다. 미국과 그를 추종하는 한국이 한미연합군사연습을 통해 북한을 압살하려는 전쟁책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지난 4년의 신년사에서는 볼 수 없던 핵위협에 관한 언급이 새롭게 등장한 부분은 주목된다. 이 점은 올해에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김정은은 지난해 북한이 핵탄두 폭발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고 대륙간 탄도로켓 시험발사 준비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핵탄두나 대륙간 탄도로켓(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이라는 단어를 쓴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특히 과거에는 인공위성이라고 강변하던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존재를 인정한 것은 개발 단계를 지나 실제로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음을 암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런 무기들을 통해 북한이 이제는 동방의 핵강국으로 자리매김했음도 강조했다. 핵, 미사일 능력뿐 아니라 김정은은 조선인민군 창건 85돌이 되는 올해에 군력강화의 불바람을 세차게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해 경제상황 전반에 심각한 타격이 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적어도 군사강국 하나는 실현하자고 선동하는 것으로 들린다.
 
한국과 미국에 대한 언급 부분에서는 고도의 통일전선전술의 구사가 예견된다. 김정은은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말하면서 그것을 바라는 사람과는 누구와도 기꺼이 협력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언급은 지난해 신년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났었다. 2016년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우리는 북남대화와 관계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 것이며 진실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도 마주앉아 민족문제, 통일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론의할 것입니다”고 언급했지만, 5일 후 4차 핵실험을 강행한 바 있다. 김정은의 이 같은 발언은 결국 북한이 불리한 정세 속에서 동조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통일전선 형성의 의도였다고 판단된다. 진정성이 없는 위장평화공세였다는 것이다.
 
한편, 김정은은 미국을 ‘민족의 주적’으로 규정하며 여전한 적대감을 표출했다. 미국이 남북한을 이간하여 한국을 동족대결과 전쟁으로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 새 정부가 출범하면 북한은 ‘통미봉남(通美封南)’하던 자세를 버리고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먼저 추구하는 ‘선남후미(先南後美)’ 정책을 견지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김정은은 미국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그를 타도하기 위해 한국에 일시적으로 손을 내밀고 일단 한미 관계를 이간시키려 전형적인 통일전선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한국 국민들에게 미국이 남북한의 관계개선을 방해하고 있다고 선전선동하면서 반미의식을 고취시키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국민들과 갈등을 유발하려는 남남갈등의 포석도 숨어있다고 본다.

김정은의 신년사에서 이례적으로 등장한 부분은 ‘자책’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대목이다. 김정은은 “한 해를 시작하는 이 자리에 서니 어떻게 하면 우리 인민들을 신성히 더 높이 떠높일 수 있을까 마음이 무거워진다”며 “마음뿐이고 능력이 따라주지 못하는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는데 올해는 분발하고 전심전력에 인민을 위해 일을 찾아 할 결심을 가다듬게 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두고도 해석이 분분했다. 지도자의 위상이 이전만 못 하게 추락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등장했고, 한국에서의 탄핵 정국을 의식해서 인민들의 불평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계산이라는 해석도 제기됐으며 김정은이 인민들 앞에서 몸을 낮추는 진솔함을 보여주고 애민(愛民) 면모를 보여 민심을 얻기 위한 ‘새로운 리더십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볼 때 김정은의 자책 발언은 자신감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얘기였다. 그만큼 권력기반도 이제는 튼튼히 다져놨고, 자책을 조금 했다고 해서 자신의 무소불위의 권력에 도전할 세력도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거만한 자책’을 연출했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의도와 달리 이번 신년사는 자칫 망국사(亡國辭)가 될 수도 있다. 실현 불가능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수행을 다그치며 만리마 속도전을 또 다시 강제했다간 인민들의 인내의 한계를 시험할 수 있고, 핵·미사일 능력을 과시하며 미국을 위협한다면 오바마와는 정책 성향이 한참 다른 트럼프 내각의 강경한 대북정책에 직면하여 존립이 위태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의 격변하는 상황을 악용하여 해묵은 통일전선전술의 구축을 통해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사회혼란을 조성하려 한다면 한국의 차기 정부에서도 유연한 대북정책을 기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김정은이 정상적인 지도자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것 역시 너무 비현실적인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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