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근대화론 아닌 한국 현대 문명론이다”

‘일제 강점, 식민지 수탈, 친일파, 6·25, 분단, 군사독재’


청·장년층 세대가 인식하고 있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주요 코드이다. 우리의 뇌리에 대한민국 현대사는 성취의 역사가 아닌 좌절의 역사라는 인식이 강하게 잡리잡고 있다. 20세기 초 일제의 잔혹한 통치를 견녀냈지만 외세의 개입으로 분단의 비극을 겪었으며, 이후에도 군사독재 아래서 고통 받았다는 비탄의 역사관이 관통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한국 역사학계 내 주류를 형성해 왔던 ‘민족주의적 역사관’이 정규 교육 과정에 그대로 투영돼 세대를 거쳐 대물림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폐기하고 ‘한국 현대 문명론’으로 개명할 것을 주장했다./ 김봉섭 기자


실증 사료와 통계를 바탕으로 ‘민족’이 아닌 문명의 개념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사가들에게 대한민국 역사계의 지적 풍토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민족의 담론에서 벗어나 실재했던 역사를 조명하려는 노력은 불행히도 학계에서, 문화예술계에서, 때론 대중들에게 강한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친북좌파들은 이들에게 ‘친일파’라는 딱지를 붙여 대중과 분리시키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다.   


이영훈 교수는 우리에게 익숙한 ‘민족’이 아닌 문명의 시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해왔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용어는 이 교수가 사용한 명칭이 아니다. 그의 주장을 ‘친일행위’로 귀결시키기 위해 반대파 세력들이 붙인 이름이다.   


이 교수는 “당시 각계 각층으로부터 많은 오해를 샀다. 좌파와 대중들은 나를 친일파라고 공격했고, 우파에서도 나와 거리를 뒀다. 하지만 대중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정당한 학문적 근거 위에 세운 내 학문을 숨기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식민지 근대화론’ 주창자로 몰린 것에 대해서는 “틀린 말도 아니고, 대체할 이름도 없어서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 현대 문명론’이라고 바꿔 불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최근 대학생 시사교양지 ‘바이트(bait)’의 주선으로 대학생들과 한국의 근현대사를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 그는 “강단이나 세미나, 내가 교수로서 진행하는 형태가 아닌 대학생들과의 대담은 처음이었다. 평등하게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는 기회라 유익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나는 그들이 중고등학교 때 어떤 교과서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생들과의 대담에서 그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면서 “다만,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내 생각을 대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생들과의 대담 주제는 ‘식민지 시대의 평가’ ‘친일파 문제’ ‘6·25 전쟁 후 독재정권의 평가’ 등 아직까지도 논란이 분분한 사안들이었다.


이 교수는 우리 역사에서 대중의 오해가 가장 큰 부분이 무엇인자를 묻자, 조선왕조가 매국노 때문에 멸망했다고 판단하고 있는 점, 식민지 시기가 삶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점, 건국의 주역인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파로만 비난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나라의 멸망은 단 몇 사람의 정치가들이 나라를 사고 팔면서 이뤄질 정도로 쉽게 좌우되지 않는다. 구조적인 모순, 강력한 외부의 충격, 내부의 도전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멸망한 것”이라며 “조선 내부에 어떠한 구조적 문제가 있어 멸망에 이르게 했는가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의 불행했던 기간에 대해 말하는 것인데 누가 기분 좋아하겠는가”라며 “일제의 지배를 정당화 한다는 느낌을 받으니까 불쾌한 것이 당연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딛고 대한민국을 건국해 발전시킨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의 일부는 일본 식민지 시대에 녹아있다”면서, 이는 우리가 식민지 시기 ‘일본 문물’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서구 근대 문명’을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관련 “건국의 주역이지만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런 이유로 그의 공적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역사적 과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려면서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한국, 그리고 우리들의 존재론적 근거가 어디있느냐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대 교정을 나서면서 드는 생각. 우리 사회가 일제시대와 해방 직후, 이승만·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를 두고 이 교수와 열린 토론을 할 수 있을 때 역사를 민족의 올가미에서 해방시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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