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방북, 김정일 첫 방중과 ‘닮은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의 방북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983년 6월 첫 방중 사이에서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돼 흥미를 자아내고 있다.

우선 1983년 6월2일부터 12일까지 10박11일에 걸쳐 진행된 김 위원장의 방중은 김일성 주석의 뒤를 이어 북한을 이끌어나갈 지도자의 방문이었고 시진핑 주석의 방북 역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후계자로 사실상 지명된 중국공산당의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하는 지도자의 방문이라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두 사람은 또 후계자 자격으로 인근에 있는 ‘혈맹국가’를 첫 해외 방문국가로 선택했다.

시진핑은 저장(浙江)성 서기 자격으로 2005년 7월 중국공산당 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그의 오는 17∼19일 북한 방문은 중국의 차기지도자 자격이라는 점에서 무게감이 크게 다르다는 평가다.

중국 관영 언론들이 이번 시 부주석의 방북을 비중있게 보도하고 있고 중국 외교부도 북중 관계발전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방문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처음 중국을 방문한 김 위원장에게 아버지 김일성에 버금가는 최상급 의전으로 예우를 갖췄다.

김 위원장은 첫 방중 때 후야오팡(胡耀邦) 중국공산당 총서기를 만나 수차례 회담을 가졌고 덩샤오핑(鄧小平)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리셴녠(李先念) 국가주석, 펑전(彭眞)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등 지도자들을 두루 접견했다.

또 북중관계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 평가받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의 부인 덩잉차오(鄧潁超)와도 만났다.

아무리 북한의 차기 지도자라고는 하지만 당시 41세에 불과했던 김 위원장이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 주석, 전인대 상무위원장 등 중국의 실세들을 모두 접견한 것은 상당한 파격으로 비쳐졌다.

이에 대해 최태복 북한 노동당 서기는 지난 10일 평양의 서재곡에서 열린 김 위원장 첫 방중 25주년 기념행사에서 “중국은 외교관례를 깨고 김정일 동지에 대한 진지한 우정과 성의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북한도 시 부주석에게 이같은 선례에 상응하는 최고의 예우를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김 위원장의 첫 방중은 김일성이 앞으로 자신을 대신해 북한을 이끌어나갈 아들을 혈맹국가의 지도자들에게 보내 인사를 시키려고 했던 성격이 다분했다.

덩샤오핑은 당시 김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이 1978년 단행한 개혁개방 조치에 대해 북한의 차기 지도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탐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측면에서 중국의 차기 지도자인 시진핑의 이번 방북은 최고 지도자에 오르기 전 상대국가를 방문했던 선례의 부활로 볼 수 있는 셈이다.

김 위원장의 첫 방중은 북중 양국이 미 7함대의 중국 기항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던 시점에서 이뤄졌다.

중국은 소련을 견제할 목적에서 미국과 군사협력을 추진했으며 1982년 무렵에는 미국 언론보도를 통해 뤼순(旅順)과 칭다오(靑島) 해군기지가 구체적인 미 함대의 기항지로 거론되는 등 미중 양국의 군사적 교류가 강화되는 분위기였다.

당연히 김일성은 양국의 군사협력 강화 움직임에 반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첫 방중에서 칭다오 해군기지를 방문한 것도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미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미 7함대의 칭다오 기항은 1986년 11월에야 이뤄질 수 있었다.

시진핑의 방북 역시 현재 북미관계가 급속도로 개선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갖고 있다.

중국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관계 개선이 한반도 평화구축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북중관계와 균형이 무너지는 경우를 상당히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그간 대북식량 원조에 미온적 태도를 보였던 미국이 50만t 식량원조를 결정하는 등 말을 넘어선 구체적 행동단계로 들어서자 시진핑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과 식량원조 문제를 협의키로 한 것으로 알려진 것도 미국을 견제하고 북미관계와 균형을 맞추려는 의도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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