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과 돈주 상호작용으로 北경제에 제재 영향 미미”

역설(逆說)과 역동성(力動性).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가 최근 출간한 저서 <김정은 시대의 북한 경제:사금융과 돈주>를 통해 북한 경제를 규정한 개념이다. 임 교수는 3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가 호전된 역설적인 상황을, 북한의 시장화·이를 토대로 성장한 돈주(신흥부유층)들이 육성한 사금융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역동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북한경제를 사실상 책임지고 있는 북중 무역을 제외하고도 북한 내부 신(新)동력의 출현과 성장이 북한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지적이다.

30년 가까이 북한 경제 연구에 천착해 온 임 교수는 책의 서문을 통해 북한 내 정보 취득이 극도로 제약된 상황에서 북한의 공식문헌·탈북민과의 인터뷰 및 내부 소식통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보도하는 대북매체의 기사 등 편린을 종합해 북한의 현실을 진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시장화·돈주·사금융의 작동 메커니즘을 고찰하는 것만으로도 북한 경제의 역설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물론 북한 주민들의 의식변화, 북한 사회의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이 가져온 변화…“평해튼(평양+맨해튼) 허상 아냐”

저자는 ‘평해튼(평양+맨해튼)’이라고 불리는 평양의 변화뿐 아니라 최근 북한 전역의 변화가 허상(虛像)이 아니라고 말한다. 북한이 ‘김정은 시대’들어 경제개선 조치들을 잇달아 시행함으로써 국제 사회의 핵실험 제재 국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경제상황이 호전됐다는 분석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평양의 변화는 김정은 집권 이후 활기가 돌고 있는 북한 경제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실제 북한 경제는 긴 침체 이후 2011년부터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한국은행이 매년 발표하는 추정 결과에 따르면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김정은 정권이 공식 출범한 첫해인 2012년 1.3%, 2013년 1.1%로 각각 증가하기도 했다.

물론 일각에선 추정치의 정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 대아시기 이래 선대(先代)인 김정일을 괴롭혀왔던 ‘먹는 문제’ 만큼은 김정은 체제 들어 다소 나아졌다는 분석은 여러 지표들을 봤을 때 타당해 보인다.

이에 임 교수는 김정은 체제가 적극적으로 도입한 제도들, 이를테면 농업에서의 포전담당제, 공장이나 기업소에서의 자율경영 체제가 북한의 경제 활력을 제고하는 데 일정부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설명한다.

북한에선 2012년부터 ‘우리식 경제관리방법(6·28방침)’에 따라 일부 공장·기업소·농장 등에서 부분적 자율경영 체제가 시범 운영됐는데, 점차 농업 부문과 비생산적 부문인 유통 부문에까지 확대 실시됐다. 취약한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민생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보일 필요가 있었던 김정은이 생산현장 개혁조치를 통해 생산성을 올리는 방안을 채택했고, 일정정도 성과를 냈다는 것이다.

북한경제 회생시킨 장마당…탈북민 “北 장마당 없이 돌아갈 수 없다”



▲북한 장마당 모습. /사진=데일리NK 자료사진

하지만 저자도 지적하는 것처럼 북한 경제가 호전된 이유를 북한 당국의 정책으로만 돌리기엔 한계가 있다. 내부에서 자생한 신 동력이 북한 경제를 활성화 시켰고, 무엇보다 ‘시장의 활성화’가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저자는 탈북민 인터뷰 결과와 대북매체의 보도를 인용해 더 이상 북한이 ‘시장’이 아니고서는 유지될 수 없는 체제임을 설명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이 아버지인 김정일과 달리 시장을 통제가 아닌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북한에선 장마당이라고 불리는 시장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위성자료 등을 토대로 분석한 북한의 장마당 숫자는 현재 380~400개에 이른다.

이와는 별도로 우리 정보 당국은 장마당을 이용하는 북한 주민의 수를 하루 100~180만 명 정도로 추산했다. 약 2500만 명인 전체 북한 주민의 4~7%가 매일 장마당을 이용하는 셈이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2015년도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실제 장마당을 이용하는 북한 주민이 이보다 훨씬 더 많다고 추정한다. 2014년 북한을 떠나 온 탈북자 146명을 대상으로 한 이 설문은 상당수 북한 주민이 생필품 구입을 장마당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장마당 이용은 이미 북한 주민의 삶에서 보편적인 현상이고 장마당은 주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붉은 자본가 돈주의 성장…간부들, 시장 경제에 적극 편승



▲ 저자는 북한 주민들의 정체성이 ‘수령’에서 ‘돈’으로 이동했다고 설명한다. /사진=데일리NK 자료사진

저자는 북한경제를 활성화시킨 또 다른 신 동력으로 붉은 자본가로 불리는 돈주를 꼽는다.  이들이 유통시장, 부동산, 금융, 임대 고용 시장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

사실 돈주의 개념과 범위를 학문적으로 정확하게 정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 돈주들이 막강한 현금 동원력을 토대로 북한의 사경제 활성화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또한 이들은 고리대업을 비롯해 전당포 운영, 나아가 아파트 건설 등 각종 이권사업에 투자하며 부를 축적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노동 당원이 나라의 중심 계층이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주민들 사이에선 장마당의 돈주들이 북한을 유지하는 기본 계층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대북매체의 보도가 타당해 보이는 이유다.

돈주들의 관심은 힘 있는 권력 기관, 즉 와크(무역 허가증)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기관을 통해 외화벌이를 하는 데 집중돼 있다. 아무리 돈주라고 해도 북한 체제의 속성을 무시한 채 자생적으로 성장·생존할 수 없다는 의미다. 중국의 대방(무역업자)등과 무역을 하려면 권력기관의 비호가 있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뇌물은 필수적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북한 국가기관 산하의 외봐벌이 회사들은 와크를 돈주들에게 고율의 임대료를 받고 양도해 막대한 돈을 벌이들이기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민무력부, 당 기관 소속의 힘 있는 무역회사들은 와크 임대만 가지고 수십 년째 앉아서 달러벌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북한 체제를 지탱해야 할 간부들이 시장 경제에 편승하고 있는 셈이다.

사금융(私金融)의 형성과 발전…지속가능 성장과 금융개혁 불가피의 상관성

책은 장마당과 돈주의 역할 증대는 사적 재산의 축적을 불러오고 자연스럽게 다양한 사금융(私金融) 거래의 활성화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시장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축적된 사적 자본이 재투자되어 부를 확대 재생산하는 구조가 정착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돈주와 결탁한 북한 권력기관의 비호가 있음은 자명하다. 권력기관 등의 입장에서 느슨한 관리·공생을 통해 자신들의 뒷주머니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많은 탈북민들과의 면담 결과를 토대로 북한에서 사금융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를 1990년대 중반, 좀 더 구체적으로 1995년 전후라고 말한다. 이 무렵 북한의 배급체계가 붕괴 혹은 이완되면서 사경제 부문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장사를 하거나 식량을 구입하기 위해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금전 거래를 하는 사례가 본격화됐다는 것이다.

이후 김정일 시대의 혁신적인 경제개혁 조치로 평가받고 있는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로 사금융이 활성화됐지만, 저자는 결정적으로 사금융이 활성화된 계기는 2012년의 새로운 경제관리 개선조치(‘우리식 경제관리방법’)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한다.

김정은 정권이 공식적으로 출범하자마자 취한 새로운 경제관리 개선조치가 북한 내 사금융의 진전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 당시 김정은은 주민들의 장롱 속 달러를 끌어내기 위해 “돈의 출처를 따지지 말고 투자하게 하고, 이윤도 보장해주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북한의 사금융은 중국 기업과의 합작 등이 늘어나면서 더욱 성장하고 있다. 저자의 지적처럼 돈주와 사금융은 체제 전환이나 경제 개발의 초기 단계에 있는 국가들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현상이다. 북한의 사금융 실태는 북한에서 확산되고 있는 시장경제 메커니즘이 소비 분야에서 시작해 점차 생산과 금융 분야로까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금융의 발생 원인이나, 시장의 확산 과정에서 자본이 투자되면서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은 구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나타났던 공통적 현상이다. 시장의 확산으로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공간과 기술, 기회가 점차 증가함으로써 자본을 확대 재생산하는 방식 또는 점차 다양해지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을 꾀하기 위해서는 구사회주의 국가들이 도입했던 금융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北 당국의 깊어가는 고민…김정은의 선택은?

사금융과 돈주가 주도하는 시장화의 진전에 따라 북한 당국의 고민이 커졌다. 돈주나 사금융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북한 당국은 이제 단순히 시장을 통제하는 수준으로는 이들의 성장을 막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더구나 핵실험 등 군사적 도발에 따른 국제 사회의 고강도 제재는 북한 당국으로 하여금 사금융 시장을 활용하고자 하는 유혹을 더욱 키울 것이다. 저자의 설명처럼 국제 사회의 제재가 김정은 정권이 어떤 경제 정책을 선택하게 만들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제재 조치에 따라 외화 유입이 축소된다면 오히려 북한 내부의 사금융 시장이 외화를 조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능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금융의 역할이다. 북한이 앞으로도 안정적인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경제의 혈액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이 기능해야 한다. 북한은 비록 체제 전환은 아닐지라도 사적 경제가 활발해지면서 금융 개혁의 요구를 거세게 받고 있고, 사금융을 공적 금융으로 전환하는 것, 안정적인 신용제도를 도입 정착시켜야 하는 등의 과제를 안게 됐다.

결국 저자의 설명처럼 향후 북한 당국은 사경제 영역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자 적정 수준의 제도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시장 경제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거시경제의 안정을 유지하면서 시장 규칙을 만들어 나가는 것임을 고려했을 때, 북한 당국이 금융 제도를 입안·집행해 나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 제도화가, 허울뿐이지만 어쨌든 사회주의를 내세워 온 김정은 체제를 어떻게 변화시킬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