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북한은 임금 및 물가 현실화, 환율 인상 및 배급제의 단계적 축소, 사회보장 축소, 기업의 자율권 확대, 인센티브제 도입 등 시장경제 요소의 부분적 도입을 골자로 하는 ‘7·1경제관리개선조치(이하 7·1조치)’를 도입했다.
7·1조치 이후 6년, 북한 당국은 금강산관광특구, 개성공단 지정과 외국인투자은행법 제정(2002), 농민시장을 종합시장으로 확대(2003), 공장·기업소 지배인의 권한 강화(2004), 수입물자 교류 시장 운영(2005), 상업은행법 제정(2006) 등 다양한 후속 조치들을 내놓고 있다.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은 “이제 북한에서 ‘장마당(시장)’을 중심으로 한 변화의 흐름은 되돌릴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며 “결과적으로 7·1조치는 주민들의 의식과 생존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 장마당 통한 상인계급 등장, 본격적인 시장화 촉진 =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이영훈 박사는 “7·1조치는 1990년대 후반 국가배급 중단 및 경제난과 관련된 대안들을 제도화 하면서 북한의 시장화를 촉진시켰다는 의미가 있다”고 해석했다.
이 박사는 “7·1조치 이후 핵문제로 북한의 대외관계가 경색국면에 접어들면서 농지개혁이나 개혁·개방 등 실질적인 후속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서 “북한의 경제난 개선을 위해서는 대외관계 개선을 통한 외부 투자 유입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경남대 극동문제 연구소 임을출 교수는 “7·1조치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상인계층’의 등장”이라며 “향후 북한의 상인계층들은 북한 경제의 재건이나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촉진할 세력으로 부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의 7·1조치에 대한 평가로 “북한내 생산력과 공급이 충분히 뒷받침 해주지 못하면서 시장왜곡이나 심각한 빈부격차가 초래된 측면이 있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북한의 개방화, 시장화 과정에서 이런 경험이 일종의 ‘학습효과’로 축적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임 교수는 “북한이 7·1조치 이후 ‘자유경쟁’, ‘공정성’ 등 시장경제의 유익한 측면을 배우기보다는 ‘부정부패’나 ‘탈법’ 등 부정적인 요소가 증가한 것도 사실”이라며 “향후 이런 부정적인 요소의 수정과 시장 안정화를 위해 한국 기업들이 북한 시장에 직접 진출하는 방법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 7·1조치 6년, 北 시장경제 맹아(萌芽) 형성 = 임수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발행한 저서 ‘계획과 시장의 공존’을 통해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에서는 ‘시장’이 ‘계획’을 급속히 대체해왔으며, 현재는 시장과 계획이 공존하는 이중경제의 상황에 처해있다”고 주장했다.
임 연구원은 “(현재 북한은) 전 인민의 상인계층화라고 일컬어도 좋을 만큼 소수 상층 간부를 제외한 전체 주민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시장경제 행위에 가담하고 있다”며 “거래품목 역시 이미 식량과 소비재를 넘어 일부 생산재로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생산부문에서는 임금노동자를 고용해 소비품을 생산·판매하는 소규모 지하공장이 등장했으며, 계획경제 내부로 개인자본이 투자되는 현상도 발생했다”며 “이는 자본주의 맹아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북한 중앙기업소 간부(계명빈)는 북한 내부소식지 ‘림진강’을 통해 7·1조치에 대한 평가를 내리면서 “선군정부는 장마당 지각생들인 중·하층 간부들과 핵심계급 진지를 버리고, 장마당 최우등생들을 선택했다”며 “이로 인해 ‘계급 성분주의’로부터 ‘황금만능주의’로 가치관이 변하며 새로운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싹텄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 北, 진정한 후속조치는 ‘개혁·개방’뿐 = 한편, 7·1조치 이후 6년간 북한의 변화를 지나치게 경제적 관점 위주로만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 ‘장마당’으로 대표되는 긍정적 변화에 주목하되 그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윤태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사무총장은 “사실 2002년의 7·1조치는 밑으로부터 강제된 어쩔 수 없는 조치로 봐야한다”며 “북한 당국이 개혁개방을 포함한 적극적 조치를 취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한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금은 새로운 7·1조치가 필요할 때다”고 주장했다.
김 사무총장은 “무엇보다도 주민들에게 ‘먹고 살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임시방편적 조치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고, 진정한 의미의 개혁개방을 선택했을 때만이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는 “7·1조치 이후 가장 핵심적 변화는 장마당 활성화를 통한 국내 이동 인구의 확대, 외부 정보 유통의 확산으로 사람들의 가치관이 당과 수령 중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라며 “이제는 당과 수령보다도 돈이 더 중요한 사회가 됐다”고 말했다.
하 대표는 “당과 수령의 권위가 붕괴된 만큼 어느 날 갑자기 북한에서도 자본주의 초기 발전 단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근대화 정치혁명 과정이 나타날 수 있다”며 “주변 국가들이 북한의 근대화 정치 혁명이 평화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갖는 것이 향후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