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딸이 말하는 아버지 스탈린은…

구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유일한 생존 자녀였던 스베틀라나 스탈리나가 이달 22일 85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냉전의 한 축이던 구 소련 최고권력자인 아버지 스탈린의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이후 스베틀라나의 삶은 굴곡으로 점철됐다. 어머니의 자살과 수용소로 끌려간 유대인 첫사랑, 이로 인해 빚어진 아버지와의 갈등, 세 번의 결혼 실패는 스탈린의 딸이 조국을 등지는 희대의 사건으로 비화됐다. 


1967년 그가 미국으로 망명한 사건은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이후 또 한 번의 결혼 실패와 소련 재입국,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유럽의 복지시설과 수녀원 등을 떠돌다가 미국의 위스콘신 주에 있는 사설 요양원에서 쓸쓸이 생을 마감했다.


스베틀라나는 스탈린 사후 그에 대해 ‘매우 단순하고 무례하며 잔인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삶이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도 아버지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해 위스콘신주의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아버지가 내 인생을 부숴버렸다”면서 ” 스위스, 인도, 미국 등 전 세계 어느 곳에서 있든 나는 늘 스탈린이란 아버지 이름의 정치적 죄수였다”고 말했다. 스베틀라나(미국명 라나 피터스)의 죽음도 결국 스탈린 딸의 사망으로 세상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 역사도 스탈린을 비켜갈 수는 없다. 우리 현대사에 스탈린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 지도자도 없을 것이다. 스탈린은 김일성의 집권 과정뿐만 아니라 집권 후에도 철저하게 관리했다. 미군이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판 속에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최종승인하고 단기 속결전이라는 군사전략까지 지시했다. 북한군이 압록강까지 밀리자 중공군의 참전을 이끌어 현재의 분단을 고착화 시켰다.


그가 설계하고 후원한 김일성 정권은 아들에 이어 손자까지 권력을 세습하며 굶주림과 인권유린을 일상화 시켰다. 복잡한 원인이 작동하는 역사를 한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기는 어렵겠지만 스베틀라나의 말을 빌리자면 스탈린은 북한 주민의 삶을 3대에 걸쳐 망가뜨렸고, 김씨 일가의 정치적 죄수로 전락시킨 원죄를 가진다.   


대한민국에는 한국전쟁과 분단이 우리의 자주권을 강탈하고 예속화 시킨 미국 때문이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오늘날 우리의 건국 과정에 대한 친북좌파 세력의 비난과 폄훼는 사실상 우리 체제가 스탈린의 영향력에 들어가지 못한 점을 아쉬워 하는 것이나 매한가지가 아닐까. FTA로 반미운동이 일어나는 시기에 스탈린의 딸의 유고 소식을 접하면서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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