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타결> 숨가빴던 베이징의 일주일

“격심한 진통을 동반한 산고 끝의 출산이다”.

드디어 끝났다. 그 것도 모든 대표단의 기립박수 속에서다.

2단계 제4차 6자회담이 시작된 지 꼭 일주일만이며, 2002년 10월 한반도에 먹구름을 드리운 제2차 북핵위기가 터진 지 35개월만이다.

역사에 길이 남게될 이번 2단계 회담은 반전을 거듭하며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번 회담은 지난 달 7일 휴회한 1단계 회담의 끝자락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래서인지 분명하고도 좁혀진 쟁점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집중적인 협의를 할 수 있었다.

2단계 회담의 화두이자 전부는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 부여와 관련된 6자틀내 경수로 제공 문제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 문제를 놓고 핵심 당사국인 북한과 미국은 등 뒤에서 치밀하게 주판을 퉁기며 치열한 두뇌 싸움을 펼쳐나갔다.

핵심 당사국인 북한과 미국은 회담장인 중국 베이징(北京)에 도착하기 전부터 `유연성’을 화두로 날세운 신경전을 벌이며 본격적인 `북핵게임’에 불을 지폈다.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13일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하면서 “북한은 경수로를 가져야 한다. 미국이 조건을 다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며 “원칙을 견지하면서 필요시기에 유연함을 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측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이날 베이징행 비행기안에서 “이번 딜은 북한 이익에 부합된다. 우리는 유연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서로 자기들이 유연성을 갖고 있다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너희들이 유연성을 보이면 회담이 잘 될 것’이라는 경고성 의미가 더 강했다.

이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듯 의장국인 중국은 회담 재개 첫 날부터 나머니 5개국을 돌아가며 접촉, 이번만은 잘해보자며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회담은 첫 날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북한이 신포 경수로가 아닌 6자틀내 경수로를 요구했고, 극점에 있던 미국이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최악의 시나리오가 연출된 것이다.

초점이었던 북미간 첫 접촉은 회담 이틀 째인 14일 한미접촉 직후에 이뤄졌다.

“한반도 비핵화는 무조건 이뤄져야 하며 그 이후 다른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던 힐 차관보는 북한과 만난 뒤 “누가 경수로에 펀딩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회담 사흘째인 15일 북미는 2차 접촉을 가졌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두 번의 접촉에서도 북미가 극을 달리자 분위기는 험악해져 갔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15∼16일 연이어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들의 핵무기를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며 “흑연감속로 포기 대신 경수로를 달라”며 요구사항을 전격적으로 공개, 장외공방을 본격화했다.

힐 차관보는 즉각 “경수로 문제는 논의조차 돼서는 안된다”며 정색하고 나섰다. 평소 얼굴을 붉히지 않았던 그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고 떨림도 감지됐다.

이런 가운데 우리측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부 차관보는 북한이 “경수로를 가질 `기회의 창’은 열려있다”고 말해 한미간 불협화음으로 비치기도 했다.

이 때부터 회담장인 댜오위타이는 더욱 긴박하게 돌아갔다.

우선 회담 나흘 째인 16일 중국이 다른 모든 참가국들과 협의를 잇따라 가지면서 조율작업에 나섰고, 한미일 3국은 첫 3자회의를 열어 공조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미 국무부 고위당국자가 “무한정 (베이징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회담이 결렬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회담이 결렬이나 타결이냐, 휴회냐의 기로에 서자 중국측은 전체회의를 소집해 4차초안 수정안을 배포, 24시간 내에 가부간의 결정을 내리라고 주문하면서 회담장 주변은 피말리는 긴장감으로 가득찼다.

그러나 17일 오후 일부 국가가 입장 표명을 유보하면서 다시 하루의 시간을 더 주어졌다. 그러나 당초 전체회의를 열어 회담을 끝내려 했던 18일이 되자 각국은 전체회의가 아닌 수석대표 회의를 열었고, 그것도 정회와 속개를 반복하다 전체회의를 또다시 하루 더 연기하기에 이르렀다.

조금의 시간만 더 있으면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일말의 미련 때문이었다.

이 시점부터 미국의 태도에 변화가 감지됐다. 18일 오전 4차초안 수정안에 대해 “모호성을 줄여야 한다”며 불만을 표출했던 힐 차관보는 그날 저녁 “좋은 안(good draft)이다. 갈등 봉합이 어렵지만 극복 못할 것은 없다”며 의지를 보였다.

바로 이 시점이 미국에 머물던 반기문 외교장관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에게 수정안을 받아들이라며 강하게 설득하던 때였다.

이후 힐 차관보를 비롯해, 송 차관보, 일측 수석대표인 사사에 겐이치로 외무성 아주국장은 18일 저녁 “내일은 무조건 결판난다”며 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약속의 날’인 19일 오전 8시30분이 다가왔지만 전체회의는 열리지 않고, 중국 언론을 통해 회담이 지연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결국 파국으로 가는 것이냐”는 허탈감이 회담장 주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미국측의 요청으로 전체회의가 지연되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사실 전날 밤 회담장에 있던 6자 모두가 수정안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워싱턴이 정치적 결단을 머뭇머뭇 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자 회담장 내에서는 “휴회로 가자”, “여기서 합의못하면 이런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혼재되면서 회담장인 댜오위타이에서는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반전이 거듭됐고, 결국 워싱턴을 설득한 힐 차관보의 설득이 주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각 대표단도 회담장 복도를 뛰어다니며 분주한 막판협상을 지속하는 모습이 포착됐고, 결국 오후 1시가 넘어서자 “6개국 대표단의 기립박수 속에 타결됐다”는 낭보가 전해졌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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