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 간 누나 생각에 온몸 던진다”

“수용소에 끌려간 누나를 생각하며 북한 인권의 현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북한의 가족이 ‘시범게임’(본보기)으로 처벌을 받을까봐 탈북 후 남한에서 학업에만 열중하며 살던 탈북 대학생 서영석(99년 입국, 30)씨는 2002년 어느날 북한에 남은 누나 소식을 듣게 된다. 가족이 탈북했다는 이유로 누나는 강제 이혼당하고 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한다.

누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눈시울이 불거진 서씨의 음성은 떨렸다. 떨리는 음성으로 그는 “북한의 인권 실현과 민주화를 위해 평생 살겠다”며 굳은 결의를 보였다.

나름대로 적응하며 대학생활을 하던 서씨에게 수용소로 끌려갔다는 누나의 소식은 그를 북한 인권운동가로 바꾸어 놓았다. 현재 그는 탈북대학생들의 모임<통일교두보>, 국군포로 명예회복 및 송환을 추진하는 <6,25 참전국군포로가족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

오는 12월 9,10일 양일 열리는 <북한인권대학생국제회의>의 준비위에서도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북한인권이라는 주제로 열릴 국제대회에 북한의 현실을 직접 경험한 탈북자가 주도적으로 참가하고 있어 의미가 남다르다. 또한 탈북대학생으로서 미래의 주역이 될 젊은 대학생들에게 북한의 현실을 알리고 있어 의미가 더욱 크다.

서씨가 다니는 고려대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현재 고려대 컴퓨터교육과 3학년에 재학중이다. 인터뷰 내내 그의 열정이 느껴졌다. 평생 인권운동가로 살아가겠다는 그는 북한 민주화에 온몸을 던지겠다고 했다.

북한에서도 마음껏 축구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적은 나이가 아닌데 어린 대학생들하고 학교 다니기 힘들지 않나요?

나이가 많아서 힘든 점은 별로 없습니다. 대학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2001년도에 입학했는데 대학생들이 공부는 안하고 술만 먹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친해지기 위해 술을 많이 먹었죠. 그래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습니다.

그런데 자유는 소중하지만 결과는 냉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당시 저는 F학점을 받았습니다. 대학생들이 공부를 안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다 공부를 하더라구요. 그것을 파악하는 데 반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때 사귄 친구들을 지금도 만나고 있고 첫 대학생활에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북한에서 축구 선수였다고 하던데요

선수는 아니었고 축구를 좋아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93년 김책체육대에 입학했고 97년에 졸업했습니다. 김책체육대 다닐 때는 축구밖에 한 기억이 없습니다.

북한에서 최고로 인기 있는 종목이 축구입니다. 그렇게 통제된 사회에서 그래도 저를 즐겁게 해줬던 것이 축구였습니다. 졸업후 함북 룡천 인민학교 축구교사로 한 2년 재직했습니다.

축구교사 시절, 학생들이 먹지 못해 축구도 못하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남한에 와서 마음껏 뛰어 노는 초등학생들을 보면 제가 가르치던 인민학교 학생들이 생각납니다.

아버지 유언 따라 탈북

97년 식량난이 극심했는데 당시 생활은 어땠습니까?

90년대 중반부터 배급량이 점점 줄어들어 거의 배급을 받지 못하게 됐죠. 더욱이 우리는 국군포로 가족이었기 때문에 배급이 가장 먼저 끊겼습니다.

북한에는 연좌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출신성분에 따라 차별하고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가족과 친척까지 연좌제로 처벌받습니다. 우리 아버님이 국군포로였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보통 북한 가정보다 배급이나 대우가 안 좋았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저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운 것밖에 없는데 차별을 당하고 가족들까지 힘들게 한다며 눈물을 흘리시곤 했습니다. 그런 차별이 너무나 싫었지만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았습니다.

차별 받으면서 체제에 대한 불만으로 탈북하게 되셨나요?

결정적으로 아버님의 유언으로 탈북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이라는 사회는 연좌제라는 불합리한 것이 존재해도 비판을 못합니다. 이야기 했다간 본인은 물론 가족, 친지까지 수용소로 끌려가기 때문에 감히 이야기를 못하죠.

그러나 아버님은 돌아가실 때 “북한을 떠나 자유롭게 살아라”고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북한을 떠나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바로 탈북하려고 했지만 먹고 살기 바빠 엄두를 못 냈습니다. 그러나 중국을 자주 왕래하는 누나의 친구를 통해 탈북을 결심했고 중국의 한국 대사관을 통해 99년에 입국했습니다.

수용소에 끌려간 누나 소식 듣고 북한민주화 결심

현재 대학생활 외에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죠?

<통일교두보>와 <6,25 참전국군포로가족모임>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통일교두보>는 남한 내 400여 명의 탈북대학생이 있는데 이들의 대학생활을 돕는 ‘멘토’(조언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100명 이상의 회원이 등록되어 있고 정기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6,25 참전국군포로가족모임>은 국군포로 명예회복과 송환을 촉구하는 활동을 합니다. 저희 아버지도 국군포로입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바쳐 싸우고 북한에 잡혀가 온갖 차별을 받다 돌아가셨습니다. 아직도 아버님의 눈물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버님 같은 분들의 명예회복은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북한인권 활동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저는 누나가 세 명이 있습니다. 저와 함께 남한으로 탈북한 누나는 두 명입니다. 큰누나는 가정이 있어 데리고 같이 올 수 없었습니다. 99년 한국에 입국한 후 큰누나가 우리 때문에 불이익 당하지 않을까 가슴 졸이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탈북자 행사나 북한인권 단체들의 활동을 지켜만 볼 뿐 적극적으로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2년에 큰누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탈북한 후 누나는 강제이혼 당하고 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지금도 누나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옵니다. 그후 저는 누나를 위해, 북한의 인권실현과 민주화를 위해 평생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저는 계속 북한민주화 운동을 할 것입니다. 북한이 민주화 되고 통일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활동할 것입니다.

북한인권 알리는 데 탈북자 앞장서야

12월에 열릴 예정인 <북한인권대학생국제회의>에서 맡은 일은 무엇입니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현재 탈북 대학생들 대상으로 참가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탈북 대학생들은 남한 대학생보다 공부하기 힘들어 공부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탈북자들보다 행사 참여가 저조합니다. 하지만 제가 맡고 있는 <통일교두보> 회원을 중심으로 우리가 연대하고 있는 탈북대학생 축구 동호회, 친목모임, 지인들 중심으로 조직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본 행사에서 진행될 심포지엄에서 북한의 현실을 알리는 강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의 현실을 생생하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열심히 강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국제회의에 탈북대학생 단체가 참가하게 된 배경과 목표는 무엇입니까?

북한인권 실상을 직접 경험한 탈북자들이 이야기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젊은 탈북 대학생들이 북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말하게 되면 많은 호응을 불어올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회에 참가하게 됐고 현재 여러명의 탈북 대학생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통일교두보>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모든 탈북자들이 북한인권 개선 활동에 적극적이지만은 않습니다. 탈북자들에게도 개인주의가 팽배합니다. 자신과 관련 없는 일은 꺼려합니다. 심지어 미국이 배후에 있다고 북한인권 개선 활동을 비판하는 탈북 대학생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탈북 대학생들의 올바른 시각을 심어주고 탈북 대학생들 내에도 북한인권문제에 하나의 흐름을 형성할 것입니다.

또한 북한인권 대학생국제회의는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행사입니다. 외국의 대학생들도 참여합니다. 따라서 이 행사는 남한 대학생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입니다. 과거 남한 대학생들이 민주화의 주축이 되었던 것처럼 이번 대회를 통해 북한인권 문제 해결에 탈북대학생들 뿐 아니라 남한 대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남한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솔직히 대학공부하면서 북한인권 개선활동을 하는 것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듭니다. 저는 그때마다 수용소에 끌려간 누나를 생각합니다. 처참하게 살아가고 있을 누나를 생각하면 저의 마음속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힘이 솟구쳐 나옵니다.

누나를 살리기 위해 그리고 온갖 인권유린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을 북한의 인민들을 위해 저는 한평생 살아 갈 것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북한의 현실을 경험한 탈북 대학생들이 저와 함께 활동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이번 대학생국제회의를 기점으로 대학생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이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