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우상화만 제거하면 北은 우수민족”

▲ 북한방문기가 실린 中 인터넷 사이트

올해 남북간에 많은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켰다는 ‘아리랑’ 공연을 보게 됐다.

5.1일 경기장의 실내조명이 환하게 비쳤다. ‘아리랑’ 공연 출연자들도 아주 방대했다. 출연자는 약 10만 여명, 배경대 1만 3천명까지 합하면 모두 11만 3천명이 동원된 초유의 대형 집단체조다.

관람료는 북한주민들은 북한돈 10원, 우리는 인민폐 450(한국돈 5만8천원)이다. 배경대는 수시로 바뀐다. 우리 좌석은 주석단의 좌측이다. 출연자들과 가까워 좋았지만, 사진 찍기에는 좀 가까운 거리다. 경기장에서는 마음대로 일어설 수 없으며 돌아다닐 수도 없다.

▲ 우리가 앉은 왼쪽에 북한군인들이 앉아있었는데, 키가 아주 작아 보인다

우리측 가이드는 “북한군 장병 표준키는 원래 165cm에서 155cm로 줄었다”고 귀뜸해주었다. 이 사진은 못 찍게 단속하는 것을 피해 몰래 찍었다.

‘아리랑’ 공연을 만약 중국에서 한다면 틀림없이 하나의 관광상품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 대형체조를 명절날에 공연한다. 김정일 생일, 국경절, 당창건과 같은 명절에 진행하는데, 마침 우리가 갔을 때는 북한노동당 창건 60돌이었다. 출연자들도 부단히 바뀌는데, 젊은 출연자들이 새로 보충된다.

▲배경대를 맡은 학생들이 입장했고, 학교 이름이 표시된 구역이 그들의 위치다.

1만 3천명 학생들이 앉은 배경대, 각 구역에 자기들의 학교이름을 표시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한국에 관광을 개방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관광객보다 경계를 엄격하게 했다. 한국사람들은 가슴에 자기의 명함을 걸고 있었다. 명함마다 본인의 사진이 붙어있다. 어느 한국관광단이 경기장에 입장했는데, 모두 손에 흰기를 들고 있었다. 윗면에 무슨 그림 같은 게 있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 경기장에 입장한 남한관광객들이 한반도기를 흔들고 있다. 장내의 시선이 모두 거기에 집중된다

그들이 들어서자, 온 경기장에 박수소리와 환호소리가 울려퍼진다. 한국사람들도 흰기를 흔들며 호응했다. 아래의 북한주민들이 모두 일어서 위에 있는 한국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배경대의 그림도 그들을 위해 수시로 바뀌고, 배경대에서 울리는 소리가 아주 절도 있게 들려온다.

박수소리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었다. 同根同族(동근동족)의 피는 물보다 진하고 骨肉(골육)의 정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나는 남북한 인민들이 이렇듯 통일을 원하고, 남북한 정부도 통일을 외치는데 왜 통일이 안 되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일어서 어렵사리 찍은 것인데, 허상이 생겼다. 한편 우리 가이드와 북한의 한 일꾼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내가 사진 찍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요원들은 경기장을 돌며 출연자를 향해 사진찍는 것은 허용하지만, 관중을 향해 찍으면 통제한다.

▲ 이 여자도 우리가 사진 찍는 것을 감독하기 위해 동원된 ‘특무’다

내가 막 찍으려고 하는데 그는 못 찍게 했다. 長白山(장백산)처럼 생긴 이 여자는 ‘안내원’이라고 하지만 행동은 특무 같다.

‘아리랑’공연 수령우상화로 변신

많은 사람들이 ‘아리랑’이 도대체 무슨 내용이냐고 물어본다. ‘아리랑’을 중국어로 번역하면 ‘나의 낭군’이 된다고 한다. ‘아리랑’은 고려 시기부터 전해오는 애정 이야기인데, 아마 중국의 ‘梁山伯与祝英台'(양산백과 축영대)와 비슷하다.

내용은 대체로 이러하다. 두 젊은 부부는 생활이 아주 가난했다. 남편은 아내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돈을 벌러 외지로 떠나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내는 돈이 없어도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더 행복하다며 남편을 못 가게 한다. 그러나 남편은 어느 날 몰래 떠나간다. 아내는 아주 예뻐 근간에 소문이 자자했다. 남편이 떠나간 후, 마을의 한 난봉꾼이 그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아내더러 재가를 하라고 했지만, 아내는 거절했다.

▲ 북한의 ‘아리랑’은 중국의 ‘梁山伯与祝英台'(양산백과 축영대)와 비슷하다

일년이 지난 후 남편은 돈을 벌어가지고 돌아왔다. 남편과 아내는 아주 반가와 했다. 이때 그 난봉꾼이 아내와 자기 사이에 있었던 ‘불륜’을 온 마을에 퍼뜨리기 시작한다. 남편은 아내가 불결하다고 인정하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남편이 또 떠나려고 하자, 아내는 무슨 말로 그를 말려야 할지 몰랐다. 떠나는 남편을 쫓아 가며 아내는 애원했지만, 남편을 따라 나서지 못한다.

망연자실한 아내가 슬픔에 잠겨 부르는 노래가 바로 이 ‘아리랑’이다. 그토록 남편을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정하게 떠나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애정을 노래하고 있다. 아내가 부른 노래는 훗날 이야기와 노래로 각색되어 한민족의 애정을 대표하는 고전음악으로 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구석을 가보아도 한민족만이 ‘아리랑’을 부르고 있으며,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면 한민족이라는 것을 대뜸 알 수 있다.

일본 통치시기, 조선사람들은 ‘아리랑’을 시위의 기본 수단으로 썼다고 한다. 일본군대는 ‘아리랑’을 부르는 사람만 있으면 목을 잘랐다. 그러나 한 사람을 죽이면 열 사람이 아리랑을 부르고, 열 사람의 목을 치면 백 사람, 천 사람이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마지막에는 일본이 포기하고 말았다고 한다.

▲ 군인들이 등장하는 장면

아리랑은 지금까지 많은 장르로 공연되었는데, 북한이 하는 대형 집단체조도 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아리랑’ 공연의 기본 내용은 지난날 북한인민이 겪은 고통과 역사를 딛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영도를 받아 행복한 삶을 펼치고 있다는 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장면은 아리랑의 고전적인 절정을 반영하고 있다. 이 대목은 남북한이 공통으로 향수해도 될 대목이다. 다른 사람이 남북간에 가장 전통적인 작품이라고 했다.

내 기억에 하나의 의문이 계속 남아있었는데, 바로 이번 기회에 다 풀렸다. 어릴 적에 보았던 북한영화 ‘보이지 않는 전선’이다. 북한간첩들끼리 접선할 때 한 말인데, 한 사람이 “당신은 무슨 책을 보고 계십니까” 하고 묻자, 상대방이 “가곡집입니다”라고 대응한다. 그러자 “무슨 가곡집인가요?”라고 묻자, “阿丽拉(아리라)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오늘 아리랑을 보니 갑자기 그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때 영화에서 말하는 것이 ‘아리랑’이다.

▲ 가장 볼만한 것은 북한군인들의 창격전(총 창을 꽂고 싸우는 전투)이다

창격전은 동작이 아주 획일적이고 절도가 있었다. 내 옆에서 보던 북한군인들은 흥분되어 박수를 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북한사람들은 아마 외부세계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이 미국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이라크가 어떻게 얻어맞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고, 기고만장하고 천진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공연의 흐름을 보면 미국을 상대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하무적이거나, 백전백승이라는 구호를 부르는 것 같은데, 뭐라고 하는지 잊어버렸다.

▲이것은 두 번째 날 찍은 고려호텔의 전경이다

우리는 북한에서 최고라는 고려호텔에 투숙했다. 고려호텔은 아주 재미있는 곳이다. 북한은 호텔을 星級(성급)으로 나누지 않는다. 고려호텔 안에도 몇 급이라는 표시가 없다. 시설과 규모, 서비스의 상황을 봐서 중국의 4성급 호텔과 맞먹을 것 같다. .

▲고려호텔 로비 전경, 평양에서 마지막 밤이다

방은 특별하다고 볼 수 없는데 호텔에 있는 물건들은 묘향산호텔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위생실 변기는 한번 쓰자마자 막혔다. 전화를 하자 한 중년부인이 급히 달려와 수리했다.

뜻밖에 TV에서 북한채널이 두 개 나왔다. 북한에는 명절날 두 개 채널이 나오고, 평일에는 한 개밖에 나오지 않는다. 외국채널은 우리나라의 CCTV(중국중앙방송) 4 채널, 봉황위성채널, 하나는 일본채널, 한 개는 영어채널, 한 개는 러시아 채널, 하나 더 있었는데, 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 아침에 일어나 평양시 전경을 담아보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평양을 찍었는데, 안개가 있다. 멀리 보이는 금자탑 형의 건축물은 ‘류경호텔’이라고 부르는데, 제일 꼭대기에 보이는 ‘+자’표시의 물건은 옥상 기중기이다. 공사가 멎은 지 15년이지만 아직 다 짓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듣기로는 돈이 없다고 한다.

▲ 고려호텔앞 지하도로 입구

지하도로 입구에서 렌즈를 들자, 여자 경찰이 보인다. 평양에 머물던 이틀 동안 나는 몰래 나갈 기회가 한번 있었다.

▲ 여자 교통경찰이 길 가운데서 교통지휘한다

사진을 찍으려니 여경찰은 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흔들었다. 아마 찍지 말라는 동작이었다. 나는 못 본 척하며 그가 차를 지휘하는 틈을 타서 여러 장 찍었다. 그는 몸을 돌려 나를 향해 “호르륵”하고 호루라기를 불었다. 나는 급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다시 몸을 돌려 함께 갔던 세 사람과 함께 그를 찍었다. 마치 폭풍과 같이 순간에 벌어진 일들이다. 그 여자 경찰이 나를 어떻게 그렇게 빨리 발견했는지 알 수 없다.

▲ 우리는 감시가 허슬한 틈을 타 밤구경을 나갈 수 있었다

호텔에 대해 할말은 많지만 딱 두 가지만 이야기 하자, 평양에 도착해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북한의 불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 토론을 했었다. 그러나 기회는 없었다. 고려호텔에 투숙한 첫날, 누가 감시하지 않는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거리를 돌아보기 위해 밖을 나섰다.

큰 거리를 걸어가는데 우리를 돌아오라고 찾는 사람도, 특무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를 그대로 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그들이 우리를 데리고 다니는 동안 야박하게 놀지 않았다. ‘아리랑’을 본 후 ‘이런 대형집단체조는 북한만이 할 수 있다’고 추켜올렸더니 그들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다.

두 번째는 고려호텔 앞에 있는 음식거리는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해도 되는 구역인 것 같았다. 게다가 호텔 앞에는 유로화로 계산되는 곳이다. 밤에 거리로 나왔는데, 우리는 멀리 벗어나지는 못했다. 호텔 앞만 밝기 때문에 더이상 돌아다니려 해도 갈 데가 없다.

▲ 우리가 불고기를 먹은 식당

우리 세 사람은 가로등이 있는 거리를 한바퀴 돌아오다가 불고기집을 하나 발견했다. 사실 불고기집은 이 거리에 한집밖에 없었다. 군고구마점, 군밤점, 그리고 칼제비국(면발이 굵은 칼국수) 집이 차례로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자 종업원은 썩 반가워 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얼굴에는 마마자국이 가득했다. 평양사람치고는 잘 생기지 못한 편이었다.

식당은 그리 크지 않았는데, 좌석은 15~16개 가량 되었다. 두 손님이 한 테이블에 있고 나머지는 모두 비었다. 복무원 한 명이 가라오케에서 노래를 불렀다. 다른 복무원이 다가와 우리에게 자리를 바꾸어 앉을 것을 권했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의 화로가 고장 났다고 한다.

우리는 소고기 한 접시와 돌버섯 한 접시, 북한산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이미 식사는 했지만 북한 불고기가 어떤 맛인지 궁금했다. 처음에 맥주를 마시려고 했는데 북한산 맥주가 없었다. 모두 외국에서 들여온 캔맥주인데, 놀랍게도 한 개에 인민폐 17~18원이다. 그래서 북한소주를 시켰다.

주문한 불고기를 보니 접시에 한벌만 깔려 있어,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실소했다. 화로는 액화가스를 쓰는 것 같은데, 연통이 없어 고기를 굽기 시작하자 연기가 온 방안에 꽉 찼다.

나는 중국에서 조선족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밥을 많이 먹어보았다. 둥근 원형접시마다 요리들이 듬뿍하고 요란하게 차린다. 그런데 평양은 요리를 담은 두 개의 접시가 너무 깨끗한(?) 게 탈이다. 소주 냄새를 맡으니 병원소독약 냄새가 난다.

식사가 끝나고 계산할 때 유로와 인민폐의 비율이 1:10으로 계산하면 불고기 값이 인민폐 45원(한국돈 5천8백원)이다. 우리가 들어갈 때 분명 복무원에게서 그렇게 들었는데, 계산할 때 보니 인민폐 60원을 내라고 한다. 1유로를 인민폐 8원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와 함께 갔던 조선족 친구가 그들과 이야기를 해서야 그 내용도 알게 되었다. “60원이면 60원 주고 가자”며 우리는 식당을 나섰다. 그래도 우린 북한에 가서 불고기를 맛보았다.

▲ 간이매점. 여기는 옥수수 뻥튀기 전문점이다

다음날 저녁식사 시간에 우리는 특무가 경계하지 않는 틈을 타 밖에 있는 식당으로 달려갔다. 사실은 우리 일행 여자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해 나갔다. 차를 타고 다닐 때 작은 가게를 보며 뭘 팔고 있을까 궁금중도 생겼다. 이런 가게는 약 100 미터에 한 개씩 있었다.

듣자니 중요한 명절날만 가게를 이렇게 차리도록 허가해준다고 한다. 신의주에는 이런 가게가 항상 있는데 평양은 수도라서 통제한다. 아이스크림을 팔 거라고 생각하고 가는데, 여러 명의 북한 여자들이 북적이고 노인들도 무슨 일인가 하여 호기심이 생겨 기웃거린다다. 나는 그들이 또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할까봐 멀리서 찍었지만, 역시 잘못 찍었다. 오른쪽에 있는 이 사람들이 우리 단체의 여행객들이다.

가게는 작은 간이매점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옥수수 뻥튀기만 있고 옆에 있는 큰 플라스틱 그릇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다. 그 옆에 작은 냉장고가 있었는데, 그 안에 아이스크림이 있을 것 같다.

▲ 이 간이매점은 인민폐를 취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좀 있더니 달려갔던 여자들이 빈 손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冰棍(얼음과자)만 있다”고 말했다. 나는 “얼음과자라도 사오지” 했더니, “인민폐를 안받는다”고 했다. 이처럼 외국인들이 먹고 싶은 것을 구입하려면 외화를 쓸 수 있는 곳까지 이동해야 했다.

▲ 1인당 식비는 한끼에 20 유로, 인민폐 200원(한국돈 3만원 정도)이다

20유로 표준으로 된 아침식사는 빵 한 조각, 소고기 한 접시, 무우채 한 접시, 두부볶음 한 접시, 그리고 죽 한 그릇이다. 보기에는 좋았지만, 양이 적어 배는 고팠다.

▲ 평양역전. 여기에서 신의주를 거쳐 중국 단둥으로 들어간다

식사를 끝내고 역전으로 나갔다. 평양 역에 도착하여 몇 장 더 찍으려고 하는데, 김 가이드가 바짝 경계해서 찍지 못했다. 이것은 플랫폼이다.

평양에서 丹東(단둥)까지는 단둥에서 沈阳(선양)까지 거리와 맞먹는다. 중국 같으면 세 시간이면 갈 거리를 우리는 기차 안에서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있어야 했다. 우리를 태운 열차가 드디어 신의주에 도착했다. 나는 평양을 향해 맘속으로 중얼거렸다. 안녕히, 북한이여!

필자의 맺는 말

북한은 아주 아름답기도 하고, 아주 가난하기도 하다. 조선민족은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창조한 나라다. 부지런하고 용감한 민족이다. 그런데 내가 가본 북한은 한 사람에 대한 극단적인 숭배와 철저한 봉쇄, 마술, 허영에 묶여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짐을 지고 장사다니는 북한주민들(新安州역)

북한의 자연지리는 아주 좋았고 자연부원도 풍부하다. 인민들의 교육수준도 상당히 높다. 그런데 사람들은 빈곤하기 그지없다. 오면서 보니 북한은 하나의 농촌 같았다. 유동 인구도 없고, 달리는 차도 없고, 물류이동도 없고, 한편의 죽은 땅, 희망이 없는 땅처럼 보였다.

나는 작년에 베트남에 가본 적이 있다. 베트남 역시 가난하고 어지러운 국가다. 그러나 베트남에는 도처에 건설이 진행되고, 도처에 바쁘게 이동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발전하려는 욕망이 엿보였고, 사람들의 얼굴에 생기가 넘쳐 보였다. 그런데 북한은 10년 전에도 그 모양, 지금도 그 모양 그 꼴이다. 한 국가, 한 민족이 정말 발전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나는 정말 북한주민들이 걱정스럽다.

물론 북한이 말처럼 완전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여전히 빛을 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주민들의 평균 문화 수준도 높고 특히 예술 영역에서 높다. 북한이 아리랑 공연과 같은 대형집단체조를 예술로 형상화하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최고봉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북한주민들은 확실히 규율이 강하고 단결력이 강하며 민족의 자존심과 의지가 강하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민족을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장점이 한 사람에 대한 우상화와 숭배심에 이용된다는 것은 아주 무서운 현실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계기였다. (끝)

번역/정리: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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