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도 부모님도 모시지 않아도 된다”는 北젊은이들

진행 : 북한 시장화에 따라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서 부모를 공경하던 전통문화가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노인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져 사회약자로 내몰리고 있지만,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서 허황된 ‘원수님(김정은)의 노년층 배려’만 선전하고 있는데요. 노인 복지 개념조차 없는 북한사회 현실, 설송아 기자와 알아보겠습니다. 설 기자, 일단 최근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기자 : 북한 시장이 활성화될수록 도덕윤리가 파괴되는 등 부작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부모를 공경하던 전통문화는 옛말로 사라지고 ‘노인들도 밥벌이는 본인이 해야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데요.

이로 인해 부자 간 싸움도 빈번하게 발생해서 노인들이 길거리로 내쫓기는 등 사회가 병들고 있습니다. 이런 노인들이 병마와 싸우다 외로이 양로원에서 운명을 맞이하고 있는데요. 오늘 이 시간에는 북한노인들의 삶을 통해 사회부조리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진행 : 노인들은 자녀들을 양육하고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국가에서는 노인복지법을 통해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북한은 그렇지 못한 거군요?

기자 : 남한에 입국해 느꼈던 감동 중의 하나가 바로 노인복지였습니다. 노인복지관들이 지역마다 있었고, 어르신들의 편한 여가생활이 참 행복해보였는데요. 반면 북한에서 노인복지관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김정은이 시찰한 평양양로원이 10월 1일 세계노인의 날이면 선전에 이용되곤 하는데요. 지방에는 복지관조차 존재하지 않는 게 현실이죠.

암튼 60세부터 노인에 해당되는데요. 배급제 시기에는 그래도 국영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아들의 부양자 자격으로 쌀을 공급받았습니다. 아들·며느리와 한집에서 살면서 텃밭을 가꾸고 손주를 보는 등 뒷바라지로 여생의 행복을 느낀 겁니다. 자손들도 명절이나 생일 때면 기념품과 맛있는 음식으로 부모님 챙기는 것을 도덕윤리로 간주했었죠.

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 경제난 후 장마당이 나오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노인들도 자기 밥벌이에 몰린 건데요. 공장에서 간부로 퇴직한 노인들은 장마당 관리원이나 자전거경비 등 시장 직업을 가질 수 있었지만, 일반 노인들은 돈벌이를 못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였습니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가족분열이 시작된 겁니다.

진행 : 결국 경제난으로 어르신들이 가장 피해를 입은 것 같네요. 젊은이들도 굶어 죽어가던 시기가 아닌가요?

기자 : 네. 그렇습니다. 전쟁 난에 약자는 노인과 어린이거든요. 마찬가지입니다. 경제난에 아이들은 그래도 장마당, 역전에서 음식을 동냥하거나 훔치는 등 방랑아(꽃제비)로 목숨을 유지했지만 노인들은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죽기 살기로 돈벌이에 나서고 있는데요.

남성 노인들은 주로 자전거나 신발을 수리하거나 혹은 미약한 손재주로 물건을 만들어 장마당에 판매해서 돈을 법니다. 여성 노인들은 음식, 종자(배추씨, 무씨, 옥수수 등), 알사탕 장사 등으로 돈벌이를 하는데요. 시장규모가 커질수록 여성노인들의 직업이 많아졌습니다. 애기보모, 가사도우미 등도 할 수 있는 거죠.

이 때문에 아들이 모시고 있는 부모님 중 출가한 딸이 어머니만 데리고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며느리와 시누이 간 싸움이 벌어지는데요. ‘시아버님은 외상에 줘도 안 모시겠다’는  ‘북한판 고려장’이 이렇게 나온 겁니다. 결국 시장이 활성화될수록 노인 부부들은 각각 아들과 딸집에서 갈라져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행 : 그래도 돈주(신흥부유층)의 경우는 좀 다르지 않을까요? 소득수준이 높아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자 : 돈주든 평범한 백성이든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돈주가 더 부모님을 모시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죠. 따로 집을 사서 분가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분노한 부모님들이 간혹 아들에게 “30년 동안 키워놓은 값을 내라”고 어성을 높이는 사례가 종종 있습니다. 이에 답변하는 자녀의 말이 더 가관인데요. “부모님 시대는 국정가격이지만 지금은 시장가격이 통한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진행 : 이건 무슨 말인가요?

기자 : 장마당이 없던 시대에 부모들은 공장에서 일만 하면 배급도 주고 무상으로 교복도 주었기 때문에 7, 8명이라도 자녀를 양육하기 쉬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뼈심으로 벌어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시장가격으론 도저히 부모를 모실 수 없다는 젊은이들의 망발입니다. 나아가 “수령도 모시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행 : 이런 유행어에서 북한의 최근 문화 변화를 엿볼 수 있겠는데요. 또 다른 변화는 없습니까?

기자 : 또한 한집안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아도 남남처럼 따로 밥을 하고 먹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시장이 진전될수록 기이한 현상들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 더 문제인데요.

이와 관련, 지난 5월 탈북한 평안남도 출신 한 탈북민은 “올해 평양시 보통강구역 친척집에 가보니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한집안에서 따로 밥해먹으며 살고 있었다”며 “시어머니도 시장에서 돈을 벌기 때문에 고기나 찔개(반찬)재료를 구매한 후 (자기 방에서) 요리해 따로 식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식 믿고 맹탕(맹목적으로) 집에서 놀면 굶어 죽기 때문에 도시 노인들은 모두 장삿길에 들어섰다”는 겁니다.  

진행 : 따뜻한 가족애가 사라지는 것도 문제지만, 부모님을 공경하는 ‘효’ 문화가 파괴된 게 더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기자 : 한지붕 안에서 따로 식사하는 노인들을 자립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여기서 병이라도 들면 어떻게 될까요? 그야말로 참혹합니다. 뇌출혈로 반신마비가 왔거나 치매라도 걸리면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하는 불행아로 전락하고 맙니다. 

양강도 혜산 출신 한 탈북민(2015년 탈북)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상품을 팔아야 하기 때문에 별수 없이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집에 두고 열쇠 걸고 나갔다”며 “저녁에 시장에서 들어오니 방안 벽에는 온통 용변이 칠해져 있었는데,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고 소회했습니다. 

그러면서 “돈벌이 못하는 노인들이 버려져 길거리를 헤매고 있지만, 어느 누구든 외면하곤 한다”면서 “길거리에 방랑하는 노인들과 무의탁 노인들은 해당 지역 양로원에 보내진다”고 전했습니다.

진행 : 양로원이라면 노인보호시설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곳으로 들어간 노인분들은 그나마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기자: 북한의 양로원은 남한의 요양원과 차원이 다릅니다. 지난해 경기도 요양원에서 복지실습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어르신 한 명에 요양보호사, 물리치료사, 영양사, 사회복지사가 매일 건강을 점검하더군요. 저는 방금 전에 말씀드렸던 양강도 탈북여성과 함께 실습했는데요. 남한의 치매노인들을 보면서 어머니가 눈에 떠올라 눈물을 흘리더군요.

여기서 평안남도 은산군 제현리 군부대목장 옆에 있는 양로원의 실태를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노인들은 밭일을 해야 하고요. 병든 노인들은 자리에 누워 약한 첩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외선교나 구호단체에서 밀가루가 들어오면 식단이 좀 낫겠지만요. 그것마저 끊어지면 병들어 죽어가도 뒤 산에 묻으면 그만입니다. 

수억 달러의 핵 개발 비용에서 몇 푼이라도 절감해 투자한다면 보다 건강한 북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설송아 기자
북한 경제 IT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