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케이스’ 평양 벗어나니 北진실에 가까워져

▲어랑 비행장을 떠나 칠보로 향하던 중 우리는 북한의 선전구호판을 지나게됐다. 김정일을 위해 목숨바쳐 싸우자고 강조하고 있지만 북한의 농민들은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마치 19세기 사람같은 모습으로 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데일리NK

우리는 평양을 떠나 비행기로 함경북도 어랑 비행장에 도착해 칠보산 지역 관광을 시작했다. 칠보산 지역에서의 첫날은 비행장에서 숙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시간을 다 보냈다.

우리를 담당했던 북한 안내원들은 어랑군과 칠보군 사이의 도로에 들어서자 평양에서보다 우리의 카메라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알만 했다. 자동차를 위한 도로 (사실 우리는 극도로 울퉁불퉁하고 먼지 가득한 도로만 달렸다)라고 해봐야 어디에도 차는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우리 여행객들은 그곳에서 수도 평양의 ‘쇼케이스(showcase)’보다 북한의 진실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기아로 인해 황폐화된 북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북한 주민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그들의 ‘부유함’에 대해서 끊임없이 지도자에게 감사하도록 강요당하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주의식 부유함’이란 넝마조각을 입고 이미 수십 년 전에 생산되었을 것 같은 고물 중국제 트랙터를 소유하고 있는 것을 의미했다.

칠보산 지역에서 우리는 숙소 근처 해변을 둘러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여행객 대부분이 수영하러 가거나 해변가를 거닐었다. 나는 좀 색다른 뭔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평양에서 북한 안내원들은 우리의 행동반경에 많은 제한이 있었다는 것을 계속 알려줬다. 하지만 이 지역에 도착했을 때는 우리의 여행에 대한 구체적인 규칙에 대해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지역에서는 ‘규칙’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기로 마음먹고, 마을 근처를 산책하기로 했다.

나는 북한 주민들이 사는 마을에 다가갔다. 물론 주민들은 나를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이상한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 사실 나는 마을 근처로 접근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접근을 시도해보았다. 내가 알고 있는 몇 마디의 한국말을 사용해서 나는 게임을 해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웃으며 대꾸를 해주었고, 또 어떤 이들은 나를 보자마자 뒤돌아 외면하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북한의 평범한 사람들과 대화는 해본 셈이다.

나는 그리 멀리 가지 못했다. 숙소에서 길을 나서고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자전거를 탄 북한 사람이 나를 멈춰 세웠다. 그는 분명 화가 나 있었지만, 웃는 얼굴로 내가 온 방향을 가리키며 나에게 뭐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 사람과 이야기하며 걷기 시작했다.

숙소로 되돌아 와서 나는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우리의 안내원 중 한 명에게 잠깐 좀 산책하자고 부탁했다. 왜냐하면 나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은 허용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허락했다. 하지만 산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해변으로 향한 지저분한 길에서 한 군인에게 우리는 제지당했다.

안내원은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순진한 표정으로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그는 세 가지 이유들을 말했다. 우선 이 길 근처에 공사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버스로 그 길을 왔을 때 공사장을 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우리가 한국말을 하지 못하니 밖에 돌아다니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그는 이 설명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러더니 그는 저 군인이 우리를 계속 가지 못하게 통제한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거기에서 더 이상 그 인민군과 토론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우리는 칠보산 주위를 돌아봤다. 우리가 본 곳은 정말 경치가 아름다웠다. 한 사찰에 들렸는데 그곳은 늙은 부인이 지키고 있었다. 사찰의 유물을 잘 보존하라고 김일성 지시했다고 하던데, 그 사찰에는 오랫동안 스님이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우리의 안내원은 우리의 여행기간 동안 안타깝게도 그 절의 ‘스님이 외출 중’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안내원은 솔직하게 ‘여기는 원래 스님이 없는 절’이라고 설명해 버렸다.

평양에서 우리는 칠보산에 도착하면 북한의 일반 가정집을 묵게 될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숙소에 도착해보니 그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우선, 북한 일반 주민들이 거처하기에는 그 숙소는 너무 컸다. 둘째로, 그 숙소에는 일반 주민들이 사용하기 힘든 호사스러운 냉장고와 일본제 텔레비전 등이 있었다.<4편에서 계속>

▲북한의 집단농장 모습. 북한의 농민들은 평양사람들보다 피부가 검고 야위어 보였다. ⓒ데일리NK

▲어랑 공항과 칠보 사이의 자동차 도로에서 배낭을 들고 가는 북한 소년들의 모습. ⓒ데일리NK

▲ 한무리의 사람들이 작은 시냇가에 모여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데일리NK

▲칠보산 관광지 입구에는 김정일을 선전하는 그림들이 설치돼 있었다. ⓒ데일리NK

▲ 우리가 묵었던 숙소. 아무리 봐도 이곳이 북한의 일반 주택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데일리NK

▲ 해안가의 현대식 건물. 북한 안내원은 이곳을 군부관계자를 위한 별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일행 중에는 이곳이 김정일의 별장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데일리NK

▲숙소 앞 자동차 도로의 야경. 야간 안전판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나무에 색을 칠해 도로를 표시하는 것 같았다. 북한 안내원은 이렇게 색을 칠해놓으면 나무가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데일리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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