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주인공 성혜림의 오빠 성일기

“패잔도 역사잖아요. 패잔의 역사를 남기라는 게 나를 살린 사령관의 부탁이었습니다. 반세기만에 지킨 약속인데 담담합니다. 상처가 너무 깊어서 그런가봅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전처 성혜림(2002년 사망)씨의 오빠 성일기(74)씨는 1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빨치산 활동을 바탕으로 한 소설 ‘북위 38도선(전 2권, 교학사)’의 출간을 맞아 가슴 속의 회한을 풀어냈다. 소설을 쓴 정원석씨는 대학시절부터 성일기씨와 알고 지내던 친구였다.

성씨는 만석꾼을 자랑하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좌익 성향이던 부모님을 따라 평양에 간 뒤 학도병으로 징집됐다. 6ㆍ25전쟁이 벌어지기 하루 전인 1950년 6월24일 강원도 양양을 출발해 경북 울진에 도착, 빨치산 활동을 시작한다.

성씨는 남도부 사령관의 부대에서 활동하며 참모장까지 승진했다. 그가 속한 부대는 고립된 상황에서 가장 오래 버틴 부대였다. 그러나 총알 하나 보급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300명에 이르던 부대원은 10여명까지 줄었다.

“남도부 사령관과 남한 당국 사이에 교섭이 오갔습니다. 저 하나는 살려달라고요. 당시 김창룡 특무대장이 제 목숨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뛰었습니다. 옛 전우들에게는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성혜림씨와 언니 성혜랑씨, 북한 당국에 의해 피살된 조카 이한영씨의 이야기를 할 때도 담담한 태도를 보이던 성씨지만 빨치산 시절을 떠올리자 손수건으로 계속 눈물을 닦아냈다.

53년 12월 체포된 뒤 김창룡 특무대장의 배려로 풀려난 성씨는 부모가 남긴 재산을 밑천으로 사업을 꾸려나갔다. 성씨는 82년 귀순해 서울에서 살던 성혜랑씨의 아들 이한영씨를 통해 동생들의 소식을 전해들었다.

성혜랑과의 상봉은 9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이뤄졌다. 성씨는 “반세기만의 만남이었다. 너무 기가막혀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얼굴은 혜림이가 더 예뻤지만 재주는 혜랑이가 더 뛰어났습니다. 명석하기도 혜랑이가 더 나았지요. 한 석달 전에는 혜랑이가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줬는데 그게 또 소문이 나면서 요즘은 연락이 뚝 끊겼습니다.”

성씨는 지금의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난 싫다”고 잘라 말했다. “지금 북한은 자유가 없습니다. 너무 사람의 생명을 경시합니다. 사람이 살려고 일하지 어디 죽으려고 일합니까?”

그는 “남도부 사령관은 처형당하면서 끝까지 인민공화국 만세라고 외쳤다”고 말하고 “그가 외친 인민공화국은 지금의 북한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자신이 “원래 죽었어야될 사람인데 운이 좋아서 살았다”라며 “독자가 책을 읽고 어떻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바랄 자격이 없다. 그저 묻혀진 패잔의 역사를 전할 뿐”이라고 말을 맺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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