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황진이’ 150번 고쳐 썼다”

“도입 부분을 쓰는 데만 150번을 고쳐 썼던 것 같아….”

소설가 황석영이 ‘우리 문학의 승리’로까지 극찬했던 북한 소설 ‘황진이’의 작가 홍석중(65)이 작품 탄생까지의 비화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조국’ 3월호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전 소설의 첫머리를 뗄 때가 제일 힘이 듭니다. 공포감이 든다고 해야 할지…, 황진이를 쓸 때는 150번은 고쳐 썼던 것 같다”고 창작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탁월한 문장가답게 소설의 첫머리를 떼기까지의 심경을 “모내기 때 논에 들어서는 심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으쓱한 날씨에 찬물에 발을 담그는 게 끔찍해서 논두렁만 왔다갔다하는 심경 그대로지요”라고 묘사했다.

그는 왜 북한에서는 봉건제도의 산물로 여기던 기생을 소재로 한 소설을 구상하게 됐을까.

이에 대해 홍석중은 “저는 작품에서 기생과 종, 천민들의 사랑 문제를 놓고 비인간적인 지배와 불평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진정한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이전까지 황진이를 주인공을 내세웠던 소설들이 화담 서경덕(1489-1546)과 관계나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 파계한 지족선사와 관계에 초점을 맞췄던 것과는 다른 접근 방법이었다.

그는 “독자들이 역사적 사실을 통해 오늘을 보게 하고 인간 자체의 운명을 놓고 돌이켜 보게 하는 것이 역사소설의 임무”라고 설명했다. 이런 그의 문학관이 소설에서 ‘인간적인 지배와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드러난 셈이다.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1888-1968) 선생의 손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문학 입문 배경을 할아버지와 연계시키는 시각에 대해 에둘러 반감을 나타냈다.

“우리 할아버지한테 아들은 둘이었지만 삼촌이나 우리 아버지가 각 7남매들 두었으니 손자만도 얼마였는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그 중에서 저는 별로 할아버지의 안중에도 들지 못하는 손자였지요”

오히려 그는 25년 창립된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 멤버로 활동했고 월북 후 김일성대 교수, 사회과학원장,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등을 역임한 아버지 홍기문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자신이 역사소설 창작을 시작한 계기는 박태원 선생이 지은 ‘갑오농민전쟁’을 읽은 김일성 주석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소설을 쓰는 사람이 적냐”는 탄식을 전해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권고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준비 중인 작품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 민족의 정통성 문제를 다룬 작품을 하나 생각하고 있는 데 눈이 올 때쯤 해서 시작해볼까 합니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가 이뤄진 시점이 작년 10월21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는 ‘으쓱한 날씨에 논에 발을 담그는 끔찍한 고통’을 지나 지금쯤 한창 새 작품 창작에 몰두해 있지 않을까?/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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