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보다 더 기구한’ 김은경양 삶

“남한에서 간 공작원 아버지. 납북된 뒤 공작원들에게 일어를 가르치다 자살한 일본인 어머니.”

금강산에서 생면부지의 친할머니 최계월씨를 만난 은경양의 삶은 아버지인 김영남씨의 언급으로 살펴봐도 그 어떤 비극적인 소설보다 더 슬픈 이야기여서 보는 이의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1987년 남한 출신의 아버지와 일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은경양은 화목한 가정의 윤활유로 친척 한명 없는 부모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 했다.

김영남씨의 증언에 따르면 은경양의 비극이 시작된 것은 3살 때부터.

고향인 일본땅에서 납치돼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북한에서 생활해온 어머니 요코다 메구미씨가 결혼전 부터 보여온 정신병 증세에 산후우울증까지 겹치면서 급속도로 병세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결국 메구미씨는 딸을 집에 두고 병원에 몸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고 어머니의 보살핌이 절실했을 나이에 은경양은 혼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김영남씨는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가정생활을 진행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서 병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전문병원에 보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병원으로 보내진 어머니 메구미씨는 정신병 증세의 호전과 악화를 거듭하다 결국 은경양이 7살 때인 1994년 11월 타향에서 자살이라는 극한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한창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학교생활을 해야 했을 7살의 은경양은 어머니 없는 불우한 유년생활을 보내야 했다.

설상가상 아버지는 메구미씨가 죽고 3년상을 마치자 14살 연하의 박춘화씨를 새엄마로 맞아들였고 남동생까지 낳았다.

여기에다 15살이 될 때까지 어머니가 간직해온 비밀을 알지 못하던 은경양은 2002년 8일 북·일정상회담에서 그 존재가 공개되면서 ’일본인 납치피해자’라는 어머니의 존재를 비로소 알게 됐다.

김영남씨는 “메구미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는 어머니 이야기를 안했다”며 “이 문제가 불거지고 대학도 다니고 사춘기 충격이 클 것 같고 개인생활이 사회에 공개되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혜경이라고 이름을 고쳐 말했다”고 소개했다.

은경양은 북·일 정상회담이 끝나고 납북 생존자 5명을 태우기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일본 정부 관계자 앞에 나타나 “혹시 할아버지와 할머니(메구미의 부모)가 같이 오셨나 해서 공항에 나와봤다”고 말해 어머니를 잃은 은경양이 간직했던 육친에 대한 외로움이 얼마나 컸는지 엿볼 수 있다.

이제는 북한 최고 명문이라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제일 잘 나가는 ’컴퓨터학과’를 다니고 있는 은경양이지만 출생에 얽힌 사연은 가슴을 한 구석에 크게 남아있다.

금강산에서 아버지와 할머니의 상봉 장면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은경양의 모습에서는 가족애를 그리워하는 애틋함이 느껴진다.

김영남씨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안 딸아이에 대해 “남측에 많이 알려진 것이 좋은 측면에서 좋은 기회에 알려졌으면 기쁠 것”이라며 “알려지게 된 동기나 취지가 저로서는 썩 달갑지 않다”고 안타까움을 피력하기도 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