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49호 병원’…두 母子의 비극적 결말은…

[북한 비화] 정신병원 해체 시 무연고자들 비밀리에 '83호관리소' 이송…생체실험 대상자로

김정일 집권 시기 (2009년 9월) 건재한 함경북도 ’49호 병원’ /사진=구굴 어스 캡처

북한 내에는 이른바 ‘49호 병원’이라고 명명되는 정신병원이 전역에 설립돼 있다.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이상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은 모두 이곳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지 4년째가 되던 지난 2016년, 함경북도 무산군 육동골 안의 49호 병원이 하루아침에 감쪽같이 사라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이 발생했다. 과연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때는 2016년 8월 말. 보안기관의 책임일꾼들로부터 올려진 비준제의서를 살펴보던 김 위원장은 한 서류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그 서류에는 ’최근 전국에 설치된 49호 병원에서 ‘공급미‘가 부족해 아사자가 발생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이런 문제는 인민보안성과 보건성이 알아서 당적 원칙에 맞게 잘 처리하라, 이런 문제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한다면 ‘국록’(國祿)을 타는 전문 일꾼들이 왜 필요하겠는가”라고 질책했다.

집권 초기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불철주야하던 김 위원장은 곧 있을 5차 핵실험(2016년 9월 9일) 준비로 살펴볼 문서들과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상태였다.

2015년에도 건재 했던 함경북도 무산군 ’49호 병원’ 모습 / 사진=구굴 어스 캡처

국가 사업을 돌보기에 바쁜 김 위원장으로부터 꾸중을 들은 인민보안성과 보건성에서는 머리를 짜내 최고지도자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뒷말이 나오지 않을 대안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함경북도의 무산군의 49호 병원을 즉각 폐쇄하고 환자들을 다른 지역의 49호 병원에 나누어 이송시키는 것이었다. 정신질환자들을 위해 전략물자인 군량미를 풀어달라고 제기할 수 없었을 뿐더러 그렇다고 이들을 가만히 굶어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없었던 보안성과 보건성으로서는 나름 최선의 방책을 세운 것이다.

이후 함경북도 보건부문과 보안국 관계부서 담당자들은 중앙 부처의 지시 하에 그해 11월 중순 사흘에 걸쳐 한밤 중에 보안국 죄인호송 트럭을 동원해 환자들을 각기 정해진 타지방 49호 병원으로 실어보냈다.

보안서에서는 앞서 환자 가족들에게 이송 계획과 지역을 알려주었는데, 멀리 타지방으로 보내지 않고 싶어하던 일부 가족들은 자가치료를 하겠다면서 환자를 퇴원시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이송 후 행방이 묘연해진 3명의 환자로 인해 조용히 지나가지 않았다. 문제의 발단은 병원에서 일러준 이송 지역으로 아들을 면회하러 갔던 한 어머니로부터 시작됐다.

2016년 해체 후 함경북도 무산군 ’49호 병원’ 모습 / 사진=구굴 어스 캡처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 전역에 든 극심한 기근으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오누이를 키워온 이 여성은 하루아침에 중국으로 딸이 팔려가면서 오로지 아들 하나만을 의지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하나밖에 남지 않은 아들마저 군에 입대했다 영양실조에 의한 급성시신경염 진단으로 감정제대(의가사제대)돼 복무 기간을 2년도 채 못채우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여성은 제대한 아들의 병 치료를 위해 약값을 마련하려 집을 팔고는 친척집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아갔지만, 불행하게도 아들의 건강이 갑자기 악화하면서 집안 내력으로 얻은 정신병까지 닥쳐와 별 수 없이 49호 병원에 아들을 입원시켰다.

아픈 외아들을 정신병원에 맡긴 이 여성은 이후에도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근근히 동냥으로 생활을 이어갔다. 어려운 형편에 아들 면회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7년의 세월을 보내던 중 어느날 갑자기 친척을 통해 중국에 간 딸이 700위안을 보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딸이 보낸 돈을 받자마자 이 여성이 달려간 곳은 바로 아들이 입원해있던 함경북도 무산군의 49호 병원이었다. 이곳은 이미 해체된 지 오래였지만, 이 여성은 그제야 이 사실을 알아차렸고, 그길로 군에 연줄을 놓아 아들이 평안남도 양덕군의 49호 병원에 이송된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막상 찾아가보니 그곳에서도 아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7년 사이 이 여성의 아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함경북도 무산군 49호 병원 해체 당시 환자들의 병력서를 정리해 호송인계를 준비 중이던 병원 측에서는 도(道) 보안국 일꾼으로부터 ‘무연고자 중 되도록 젊은 사람으로 3명을 준비시켜 놓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후에 밝혀진 일이지만, 이렇게 별도로 분리된 이들은 비밀리에 도 보안국 예심과 구류장에 3일간 구금됐다가 족쇄가 채워져 어디론가 실려갔다.

해체 후 2020년 2월 현재 함경북도 무산군 ’49호 병원’ 모습 ./ 사진=구굴 어스 캡처

그곳은 바로 공민권이 즉시에 박탈돼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고 각종 생체실험에 처해지는 83호관리소였다고 한다.

무연고자로 치부돼 83호관리소로 끌려간 아들 김 군은 제정신으로 잠깐 돌아왔을 때 이상함을 느끼고 이곳을 탈출해 평양시 사동구역을 돌아다니다 주민 신고로 즉시 구역 보안서 구류장에 감금됐다. 그러면서 83호관리소에서 탈출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보안서 내 근무자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알려졌고, 이 사실은 주민사회 내부에도 소문으로 퍼졌다.

이후 김 군은 83호관리소에 재수용됐는데, 이때껏 그의 행방을 찾지 못한 김 군의 어머니는 사라진 아들을 찾아 산으로 바다로 발길이 닿는 곳이면 모두 돌아다니다 결국 실종되고 말았다.

김 위원장이 정신병원 환자들의 사정을 외면하면서 국력 강화를 명목으로 5차 핵실험 준비에 골몰하고 있을 때, 북한의 어느 한 가정에서는 이와 같은 비극이 벌어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