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反체제 출판물 ‘사미즈다트’ 있었다

▲ 舊소련 체제전환 당시 모습

1960-80년대 소련에서는 ‘사미즈다트’(Samizdat)라는 게 있었다. 러시아어로 ‘자가(自家) 출판’이라는 뜻이다. 국가의 승인 없이 비밀리에 하는 비합법 출판이다.

북한의 체제전환 문제와 관련해서 북한에서도 사미즈다트가 생기면 북한의 민주화를 촉진하는 수단이 되지 않겠느냐는 소리가 들린다. 유감스럽지만 소련의 경험에 비춰보면 그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소련 당국자와 사미즈다트 간의 대립은 1960년대 초부터 1980년대 말까지 거의 30년을 걸쳐 계속되었다. 누가 이 싸움에서 이겼을까? 결과는 무승부였다. 소련의 경험에 비춰보면 권위주의 정부가 비합법 출판 활동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지만 이를 통제하면서 제한할 수는 있다.

구소련, 타자기도 당국에 등록

사미즈다트의 취약점은 출판물 복사에 따른 가격이 비싸고 과정이 복잡하다는 것이다. 집에서 빠르고 손쉽게 복사할 수 있는 비디오 테이프와 비교하면 출판물 복사는 힘들고, 숨어서 몰래 하기도 어렵다.

소련 사미즈다트의 역사는 1960년을 전후하여 시작됐다. 그 이전에 스탈린 체제에서는 금지된 책이나 자료를 복사하는 것뿐 아니라, 이러한 출판물을 읽거나 소지하는 것도 심각한 정치범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비합법 출판, 즉 사미즈다트는 너무 위험해서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스탈린 사망 후 비합법 출판물을 읽는 행위는 대부분 범죄로 취급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금지 출판물을 복사하는 사람이 생겼다. 소련 당국은 비합법 출판물의 복사와 확산을 막으려고 총력을 다했다. 당시 소련에는 복사실이 많지 않았으니, 사미즈다트를 제일 많이 재생하는 기술은 타자기였다. 일일이 타자로 치는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구소련에서는 1970년까지 의무적으로 타자기를 등록해야 했고 타자의 견본은 경찰에 제출했다. 사람마다 필체가 다르듯이 타자기마다 자형(字形)이 약간씩 다르기 때문에 어떤 반체제 선전물이 등장하면 경찰서에 보관된 타자 견본과 비교하여 타자한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소설과 같은 정치성이 낮은 출판물까지 검열하지 않았지만, 반정부 선전물의 경우 경찰은 이런 수단을 사용했다.

4부 복사, 100시간 걸려

그래도 타자기로 복사하는 것은 골치 아픈 일이었다. 검정색 카본지를 뒤에 대고 치면 동시에 4장의 복사물을 만들 수 있었는데, A4 용지 한 장 분량을 타자하려면 10-15분 정도 걸렸다. 보통 책 한 권이 A4 4백-5백 장 정도니까, 4부를 복사하려면 평균 100시간이 걸렸다(현대식 복사기로 하면 40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1970년을 전후하여 타자기 등록제가 중단됐지만 타자기보다 기능이 다양한 기계들은 구소련이 체제전환 될 때까지 엄격하게 감시했다. 1990년 당시 소련에는 컴퓨터가 있었지만 필자는 돈이 있어도 컴퓨터를 사지 못했다. 다행히 가까운 독일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외국인이라 자기 이름으로 컴퓨터를 살 수 있었다. 이것도 소련 체제가 무너지던 해인 1990년에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당국이 제일 위험하게 본 것은 복사기였다. 현대적 복사시설이 1960년대부터 소련 대도시에 점차 확대되고 있었지만 복사기가 있는 기관이 많지 않았고 KGB(구소련 비밀경찰)의 엄격한 통제 밑에 있었다.

복사기마다 계산 요원이 있었는데 몇 부를 복사했는지, 매수가 얼마인지를 KGB 요원들이 다 검열했다. 복사실도 통제구역이어서 담당기사가 아니면 못 들어갔다. 자료를 복사할 사람은 미리 신청서를 제출하고 자기 상사한테 승인을 받아야 했다. 결과적으로 사미즈다트는 해외에 많이 알려졌지만 소련 국내에서는 널리 읽혀지지 못했다.

현 북한에는 테이프, 단파방송 유리

사미즈다트 출판물을 읽는 사람들은 거의 전적으로 일부 엘리트 지식층이었다. 사미즈다트의 역사를 연구하는 수에드노프(Suetnov) 박사에 의하면 1970년대 사미즈다트 출판물을 읽은 사람은 20만 명 정도였다. 전체 소련 인구의 0.1%에 불과한 극소수다. 물론 엘리트 지식층의 정치, 사회적 영향력은 그 수에 비하면 매우 컸지만, 사미즈다트가 대중화 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1960-70년대에 북한보다 국가통제가 약했던 소련에서도 대중화하지 못한 비합법 출판활동이 지금 북한에서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이 같은 사실이 지금 북한에서 금지된 정보가 유포되지 못한다는 것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금지된 정보도 지금 북한에서 유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금지된 정보를 유포시키는 방법은 출판물을 통해서 하는 것보다 복사하기 쉬운 매체, 즉 테이프나 단파 방송으로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 객원칼럼니스트(국민대 교수, 역사학 박사)

<필자 약력> -구소련 레닌그라드 출생(1963) -레닌그라드 국립대 입학 -김일성종합대 유학(조선어문학과 1986년 졸업) -레닌그라드대 박사(한국사) -호주국립대학교 한국사 교수(1996- ) -주요 저서 <북한현대정치사>(1995)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From Stalin to Kim Il Sung 2002) <북한의 위기>(Crisis in North Korea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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