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체제 전환의 내막…지식·정보 주는 남북교역 중요

최근 남북관계의 위기는 다시 한번 남남(南南)갈등을 증폭했다. 그러나 필자는 남남갈등을 보면 너무 이상한 느낌이 든다.

잘 알다시피 자신을 ‘진보세력’으로 묘사하는 좌파 인사들은 대체로 개성공단을 지지하지만 우파세력은 개성공단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한다. 좌파는 개성공단과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북한이 경제성장을 시작할 뿐만 아니라 통일을 대비하여 남북정권의 협력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보수세력’으로 잘못 불려지는 우파세력은 개성공단 사업이 북한의 독재정권과 극소수의 평양특권층에 현금을 제공해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연장하고 살인적인 독재를 강화할 뿐이라며 대체로 비판적 입장이다.

필자는 현 단계에서 시장보다 더 효율적인 경제운영 방식이 없다고 생각한다. 생산을 분배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 국가의 간섭과 통제를 의심스럽게 본다. 물론 필자는 스탈린주의 발생지에서 자라난 사람으로서 스탈린주의에 대한 착각은 전혀 없다. 필자는 한국에서 ‘보수경향 학자’로 정의된다. 필자는 현대의 경제와 기술의 진보에 이바지하는 ‘라이트’나 ‘우익’은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보수주의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파를 ‘보수’로 부르는 것은 오칭(誤稱))으로 본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에서의 남남갈등을 보면 참 이상한 느낌이 든다. 북한의 현 체제 유지를 원하거나 김부자(金父子) 독재를 별로 반대하지 않는 세력은 남북교류를 지지할 이유가 사실상 별로 없다. 또 북한 땅에 정치 자유와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세력은 남북협력을 북한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센 수단으로 지지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좌우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좌파세력의 근본적인 실수는 북한정권의 본질에 대한 착각이다. 물론 북한을 모범으로 생각했던 NL계열이나 주사파 출신들도 90년대 초에 들어 북한의 경제사정이 너무 어렵고 북한의 정치가 너무 권위주의적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비판적인 대북 인식에도 불구하고 좌파 세력 대부분은 북한정권이 얼마나 억압적인지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좌파 경향 학자와 정치인들은 북한정권에게 압력을 가하지 않는다면 평양 위정자들도 조만간 중국과 같은 개혁을 시작할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좌파 성향 ‘전문가’들의 착각

유감스럽지만 좌파 학자들은 북한의 국내외 사정의 특수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 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중국과 너무 다르다. 무엇보다 중요한 차이점은 남한이라는 ‘또 하나의 조선’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또 하나의 중국’ ‘부자 나라인 南중국’이라는 민주자본주의 국가가 없는 것이다. 대만은 작은 섬나라 일뿐 중국 사람들은 대만과의 통일이 자신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킬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60~70년대에 박정희 권위주의를 ‘필요악’으로 생각했던 남한 사람들처럼 등소평식 개발독재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그렇지 않다. 북한 정부가 정말 개혁과 개발을 시작할 경우 북한 민중들은 지금 짐작으로만 생각하는 남한의 번영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이지만 1인당 소득 차이가 적게는 1:17, 많게는 1:50으로 추정된다. 세계적 판도에서 1인당 소득 격차가 이만큼 큰 이웃 나라는 없다.

또, 북한 민중들은 남한과의 통일을 통해 하루 아침에 남한과 비슷한 생활수준을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때문에 이북에서 중국식 개혁개방이 시작될 경우 북한 민중은 개혁과 개방을 환영하면서도 북한식 ‘개발독재’ 주도하에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남한과의 통일을 요구할 가능성이 너무 높다. 바꾸어 말해 북한의 경우, 개혁과 개방 시도는 중국식 고도 경제성장보다 동독식 체제붕괴와 흡수통일을 유도될 것 같다.

이 사실을 잘 인식하는 북한 지도부는 개혁과 개방을 정치적 자살처럼 생각하면서 변화를 피하거나 너무 조심스러운 변화만 추구하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북한정권의 이념적인 목표는 스탈린 후기의 소련과 비슷했던 김정일 체제의 재생이다.

하지만 남한 보수세력의 북한관에도 심각한 실수가 없지 않다. 남한 보수세력이 지향하려는 정책은 한마디로 말하면 고립과 압박 정책이다. 북한독재에 대해 일정한 착각이 아직 남아있는 좌파세력과 달리 우파는 북한 정부의 본질이 바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인권보호와 민주화를 위해서 살인적인 독재와 타협을 하지 않고 모든 방법과 수단으로 압력을 가하면 북한독재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련 출신으로 공산주의 위기와 붕괴를 경험한 사람인 필자가 보기에는 남한 우파의 접근은 심각한 실수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희망은 대북전략과 압력을 통해 북한독재를 파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다.

첫째, 남한은 북한에 대해서 압력을 가할 수단이 별로 없다. 남북의 교류와 대북지원을 중지할 경우 외교적 경험이 많은 북한 지도부는 강대국의 경쟁과 다툼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중국이나 러시아, 아니면 미국, 국제단체를 통해 어느 정도 지원을 얻을 것이다.

둘째, 서로 경쟁하는 강대국이 합의하여 공동으로 대북제재를 한다고 해도 이러한 제재가 북한 정치노선에 대해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 같다.

북한사회의 특성을 분석해보면 북한만큼 국제제재에 취약하지 않은 국가가 세계에서 없다고 생각된다. 이를 알려면 국제제재의 메커니즘을 좀 이해해야 한다.

국제제재는 보통 정권이나 특권계층에 직접 영향을 주기보다 민중을 대상으로 한다. 제재 당한 국가의 민중은 경제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정권에 대해 불만을 품게 된다. 이러한 불만에 대한 우려 때문에 정권은 국제제재에 굴복하여 정치 노선을 바꾼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이 전략이 효과를 내기 어렵다. 북한 정권이 선거를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점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북한정권은 ‘민중 혁명’에 별로 신경을 안 쓴다. 역설적으로 굶어 죽어가는 국민은 혁명을 할 수 없다. 혁명이 발발하려면 민중들이 현 체제의 대안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

이 때문에 남한 우파가 주장하는 경제제재와 봉쇄는 북한정권 파괴를 초래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니다. 해외의 대북 지원이 더 나오지 못하게 된다면, 북한정권은 동북 지역 주민이나 농민들처럼 ‘정치적 가치가 낮은’ 사람들을 쉽게 희생시킬 것이다. 결국은 함경북도에서 수십 만 명의 농민들은 아사하지만 독재체제는 그대로 계속될 것이다. 국제제재는 더 많은 북한 주민들을 죽이는 잠재력이지만 그들을 구조할 잠재력이 없다.

그러면 북한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파들의 경제협력과 민간 교류

역설적으로 우파의 기본목표인 민주화와 경제 회생을 달성하기 위해 제일 좋은 방법은 좌파가 주장하는 경제협력과 인간교류의 개발이다. 그러나 필자가 말하는 교역과 교류는 한국 좌파가 주장하는 교류협력 정책과 겉으로는 비슷하게 보일지라도 본질적으로는 너무 다르다.

좌파는 교류협력 정책을 통해 북한 지배계층의 세계관과 인식을 바뀌기를 희망하지만, 이것은 큰 착각이다. 그러나 협력과 교류는 소수 특권층을 바꿀 수 없지만 민주주의 의식에 큰 영향을 줌으로써 북한에서 내부적인 변화를 유도할 잠재력이 있다.

북한 정권이 체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기초를 보면 왜곡이 너무 많다. 물론 어느 민족이나 국가든 자신의 과거나 현재 모습을 미화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어느 정도 왜곡한 사례는 드물지 않다. 그러나 북한이 주민들에게 부과한 역사관과 세계관은 너무 예외적으로 거리가 멀다. 다시 말해 북한정권의 사상적 기반은 단순히 왜곡된 신화가 아니라 정말로 너무 ‘뻔한 거짓말’이다.

많은 주민들이 주체사상을 종교와 비슷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주체사상은 종교와 공통점이 없진 않지만 차이는 크다. 주체사상의 충실한 신봉자들은 죽은 뒤 천국에서 행복을 이룩하는 비결보다 이 세상에 물질적인 번영과 모범국가를 건설하는 비결을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북한경제의 몰락은 북한정부가 약속한 물질적 번영을 실천하지 못했다는 뜻이 되니까, 정권의 정당성을 직접 위협한다. 이로 인해 외국과의 자유로운 정보교환은 북한에게 독약이 된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북한정권은 정보 고립과 쇄국정책을 독재체제 유지의 기본 조건으로 본다.

구소련의 붕괴는 공산독재의 약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소련 붕괴의 역사가 보여주듯 공산당 통치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고립과 압력이 아니라 교역과 교류다. 교역과 교류는 불가피하게 외국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남한의 많은 사람들은 1980년대 초부터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실시한 정책이 소련붕괴를 야기했다고 주장한다. 그 의견에 의하면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에 부과한 군사압력과 군비경쟁은 미국보다 경제기반이 약했던 소련의 경제에 심한 타격을 주고 생활수준의 하락을 유도함으로써 소련 국민들의 불만을 가져왔고, 이 불만으로 인해 소련체제가 흔들리게 됐다고 한다.

필자는 1963년에 태어나 소련의 위기를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이 의견에 동의하지 못한다. 낮은 생활수준과 소비품의 부족이 소련 공산당의 통치를 파괴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문제는 레이건 대통령의 정책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1970년대 중반부터 소련의 생활수준이 정체되었다는 것을 잘 기억한다. 당시에 어른들은 “요즘 살기 좋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이것은 필자의 개인적 인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2007년 미국 하바드대학교 브레이너드(Brainerd) 교수는 새로운 자료를 이용하여 구소련 생활수준의 추세를 분석하다가 아주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브레이너드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소련의 생활수준의 성장은 1970년을 전후하여 멈추지 않았지만 많이 느려졌다. 레이건 대통령의 당선은 이 추세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했다.

1960~70년대 소련 사람들은 세월이 갈수록 체제에 대한 실망이 깊어지고 있었다. 1980년대 초에 들어와 소련에서 공산당 선전과 언론매체의 주장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소련 사람들, 적어도 대도시 시민들은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이 선진국보다 어렵게 산다는 것을 다 알았다. 그들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국민들이 즐기는 정치 자유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소련의 개혁과 붕괴는 고르바초프에 의해 야기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소련사회에서 정치에 관심이 있는 자들은 소련식 사회주의에 희망을 걸고 있었지만, 1970년대에 들어와 이 희망이 무너졌다.

필자가 보기에 당시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고르바초프 같은 인물의 등장은 거의 불가피한 것이었다. 당시 소련 사람들은 소련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소련식 사회주의의 경제적 무능력 때문이었다.

1950년대 말까지 국민들에게 부과한 커다란 희생과 자원 동원을 통해 고도성장을 유지하던 소련경제는 일정한 정치 자유화 이후 다양한 강제동원을 할 수 없게 되자, 선진국을 능가하는 성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소련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사이에 생활수준의 차이는 세월이 갈수록 커지기 시작했다. 정치 부문에서 선진국보다 제한과 검열이 훨씬 심각했던 소련의 정책도 국민들의 저항과 불만을 가져왔다.

그러나 소련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을 선진국의 생활과 비교하지 못했더라면 이러한 불만도 생기지 못했을 것이다. 소련 사람들은 외국 정보에 접근할 기회가 비교적 많았다. 이러한 기회는 외국과의 교류에 의해 발생하였다.

특히 소련과의 심리전을 통해 소련 국민들에게 외국 소식을 전달하려는 외국 정부와 단체에 의해 가능하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 단파 라디오였다. 1980년대 조사에 의하면 소련 사람 4명 중 1명은 주 1회 이상 해외 러시아어 방송을 들었다. 필자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심리전에도 몇 가지 문제점은 없지 않았다.

첫째, 방송을 제외하면 심리전은 효과가 미미한 편이었다. 예를 들어 외국의 도서를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모스크바의 극소수 지식인뿐이었다. 필자는 대학교에 다닐 때 외국에서 출판된 반정부 도서를 본 적이 전혀 없었고, 국내에서 비합법적으로 복사된 자료를 한번 봤다.

둘째, 일반 사람들은 외국 러시아어 방송을 재미있게 듣긴 했지만 이것을 외국의 선전방송, 즉 심리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공산당의 선전을 그대로 믿지 않는 소련 사람들은 해외방송도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공산당 선전은 사실을 많이 왜곡하는데, 외국방송들도 비슷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구소련 경험, 잘 이용해야

하지만 국제교류를 통해 자연스럽게 발생한 지식의 확산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역설적으로 서양에서 이러한 교류를 주장하고 지지한 사람 대부분은 소련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좌파 경향 정치인들 또는 소련 자유화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고 장사밖에 모르는 사업가들이었다. 친공 ‘진보’ 세력들은 ‘진보적인’ 소련체제를 도와주는 줄 알았지만, 사실상 민간교류와 경제협력으로 이 체제의 기반을 무의식적으로 약화시키고 있었다.

합법적인 문화교류는 중요했다. 소련 극장에서는 서양영화가 비교적 자유롭게 상영되었다. 물론 소련 당국자들은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사화를 비판적으로 묘사하는 영화를 주로 허락했다.

하지만 소련 관객들은 노동운동이나 사회적 모순을 다룬 영화를 볼 때도 반자본주의, 반미 경향의 영화 줄거리보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선진국 서민들의 생활 모습을 더 관심있게 봤다. 예를 들어 파업을 주제로 한 영화를 보면 자신을 착취 희생자로 본 미국 노동자들도 다 개인 승용차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련의 중급 간부들도 구하기 어려운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을 영화에서 볼 수 있었다.

1980년대 중엽 VCR의 대중화가 시작되자 서양 테이프도 많이 나오게 되었다. 이들 ‘해적 테이프’는 소련의 검열을 피했다. 테이프는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경향이 거의 없었지만 현대의 서양생활을 잘 반영했다. 이런 테이프가 소련 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주었다.

개인 차원의 교류도 없지 않았다. 수많은 제한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부터 소련 국민들은 해외로 갈 기회가 많아졌다. 적지 않은 기술자와 기사들은 해외 경제협력 때문에 외국으로 갔다 왔다. ‘사상수준’이 높은 사람들만 해외로 갈 수 있었고 해외에 있을 때 소련 특무경찰인 KGB와 소련 대사관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외국생활을 많이 체험하면서 소련 생활과 비교했다.

그들은 선진국의 경제적 효율성과 정치적 자유를 직접 눈으로 볼 기회를 얻었다. 귀국한 다음 그들은 말을 조심해야 했지만 믿을만한 친구와 가족들에게 외국생활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했다. 이러한 소문은 1970년대 소련사회에서 많이 돌고 있었다.

소련을 방문하는 외국인들과의 만남은 이러한 정보의 확산을 촉진하였다. 소련은 북한보다 훨씬 자유로운 나라였는데, 1950년대 이후 공산권 출신 외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접촉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됐다.

또 비록 당국자들의 감시를 받고 있지만 서양 국민들의 차림새도 일반 소련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들의 옷 자림과 행동을 우연히 멀리서 보아도 선진국의 생활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고유가(高油價) 때문에 돈이 많아졌던 소련 정부는 외국에서 일상용품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이러한 조치로 국민들의 불만을 완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를 가져왔다. 외국 수입품의 높은 품질은 소련 국민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구소련에서 초등학생들도 다 알던 사실이 “수입품은 국산품보다 품질이 훨씬 좋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외부 정보의 점진적 확산은 교류와 교역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소련이 북한처럼 외국과의 교류를 엄격하게 통제했더라면 소련 사람들은 지금도 공산당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살고 있을지 모른다. 자신 체제의 잘못을 이해하려면 먼저 선진국의 생활과 비교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외국과의 경제협력과 교류를 통해 그들은 이러한 기회를 많이 얻었다.

그래서 구소련의 경험이 북한 자유화의 길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북한 독재정권의 기반이 정말 흔들리게 하려면 북한과의 다양한 교류와 협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북한의 변화와 한반도의 민주통일을 원하는 우파 세력은 개성공단 같은 프로젝트를 환영해야 한다. 남과 북의 사람들은 같이 일하는 조건 하에 불가피하게 접근도 있고 비교적 자유로운 이야기도 할 수 있다. 또 북한 내부로 남한 제품이 들어가면 큰 도움이 되다. ‘현대’ 승용차를 타본 사람들은 남한의 기술 수준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좋든 싫든, 현 단계에서 이러한 교류 외에 북한 민중의 의식을 바꾸고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을 일으키게 하는 방법은 없다. 물론 이러한 교류협력의 경제적인 이득은 압도적으로 북한 특권계층에 의해 약탈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피한 타협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더 빠른 방법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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