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이 김일성을 지도자로 삼은 까닭은

1948년 남.북한에 개별 정부가 수립된 이후 남한의 미군정에 대한 자료 발굴과 연구는 활발히 진행돼 왔지만 북한의 소련군정에 대한 연구는 자료 접근에 대한 어려움 등으로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오랫동안 해방공간에 대한 연구와 자료 발굴 작업을 해왔던 언론인 출신의 김국후 씨가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방성, 외무성 고문서 보관소의 희귀문서들을 발굴하고 분석해 북한의 소련군정 3년에 대해 짜맞추기를 시도한 책 ‘평양의 소련군정'(한울아카데미)을 펴냈다.

저자는 우선 소련이 조만식 선생이나 박헌영 같은 인사 대신 왜 하필 당시 33세의 소련군 대위 출신인 김일성을 북한의 지도자로 선출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대답의 실마리는 1945년 8월24일 소련 제2극동전선군 제88정찰여단장 저우바오중 대좌가 소련 극동군 총사령관이었던 바실레프스키에게 보낸 긴급보고서에서 발견된다.

저자는 제88정찰여단이 해방 3년 전인 1942년 6월 스탈린의 직접 지시에 따라 창설됐으며 목적은 정치.군사 지도자 양성에 있다는 내용의 이 보고서를 통해 제88정찰여단이 ‘해방 후 조선’의 정치.군사 지도자 양성소였고 김일성이 이미 해방 3년 전부터 이곳에서 지도자로 양성되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보고서에는 또 “금년 8월9일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전체 여단 대원들은 일본 사무라이들을 몰아내기 위한 투쟁에 나서라는 전투명령이 하달됐습니다. 그러나 대일전투작전이 개시된 지 4일 후 여단의 대일작전계획이 전면 취소됐고 현재까지 여단을 이용하지 않고 있습니다”(58쪽)라는 내용도 들어있다. 북한의 주장과는 달리 88정찰여단이 실제로는 소련군의 대일전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김일성과 박헌영이 처음부터 ‘숙명의 정적관계’였다는 일반적인 인식을 재조명하는 문건도 눈에 띈다.

박헌영은 1946년 3월 미국 UP통신(현 UPI 통신의 전신)의 호이트 기자와 기자회견에서 호이트 기자가 “조선민주주의 임시정부가 창설될 때 대통령으로 김일성을 지지하는가”라고 묻자 “김일성 씨는 전시에 항일 빨치산 지도자였던 민족영웅이다. 그는 북조선 인민들이 지지할 뿐 아니라 남조선 인민들도 민족영웅으로 여긴다. 북조선의 여러 당에서 그를 대통령으로 내세우면 남조선 인민들도 이를 지지할 것이다. 우리 당에서는 인민과 함께 지지한다”고 답했다.

이밖에 소련의 각종 대남 전략이 결정된 1948년 6월의 제2차 남북지도자 연석회의 속기록 등도 책에 수록돼 해방 이후 한반도에 대한 소련의 전략적 접근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대일전 참여로 한반도 반쪽을 점령한 붉은 군대 소련군이야말로 3년여 동안 북한에 주둔하면서 오늘의 북한정권을 창출해 낸 실질적인 주역”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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