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경험 살려 北에 비디오 더 넣자”

북한에 남한의 영화나 비디오를 더 보급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서도 한류(韓流)가 있다. 북한을 방문한 사람들이나 탈북자들은 한결 같이 최근 북한에서 한국 가요와 패션, 특히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굉장히 높다고 이야기한다.

북한에 체류하고 있는 한 외국 사업가가 얼마 전 이렇게 말했다. “원래 북한에서 최고의 선물은 고급 담배였지만 최근에는 북한에서 구하지 못하는 남한 비디오다.” 중국에서 중고 VCR이 북한으로 많이 유입되어 이제는 북한 당국자들도 옛날처럼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테이프는 출판물보다 복사하기도 쉬워서 유포를 막기 어렵다.

구 소련 출신인 나는 이러한 소식을 뜻 깊게 볼 수밖에 없다. 소련식 사회주의는 왜 몰락했을까? 물론 제일 중요한 이유는 국가사회주의 및 계획경제의 문제점 때문이다. 국가에 의해 경영되는 경제가 개인에 의해 경영된 경제와 경쟁할 수 없었다는 것은 20세기가 판명해 준 사실이다. 동독과 서독, 북한과 남한, 소련과 미국의 경쟁을 보면 이 사실은 바로 알 수 있다.

‘문화작품’ 때문에 무너진 사회주의

그러나 사회주의 정권은 경제적인 문제만으로는 종언할 수 없었다. 국민들이 사회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지식을 쌓지 않았다면 그 체제는 오랫동안 계속됐을 것이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 소련 사람들은 소련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 뒤지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 한편 소련 사람들은 자본주의 국가의 국민이 누리는 정치 자유에 대해서도 점차 알게 되었다. 이러한 지식은 소련 체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이것을 어떻게 깨달았을까? 주로 외국 ‘문화작품’을 통해서 그랬다.

1970년대나 1980년대의 소련에서 해외소식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주로 단파 라디오였다. 스탈린의 사망 후 소련은 북한보다 많이 자유로워져서 돈만 있으면 단파 수신기를 국영상점에서 살 수 있었다. 국제 상태가 긴장해질 때 당국자들은 방송방해(jamming)를 한 적도 있지만 국토가 넓은 나라인 소련에서 이 조치는 기술적인 이유 때문에 대도시에서만 가능했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일반 사람들은 외국 노어(露語)방송을 재미있게 듣긴 했지만 이것을 외국의 선전 방송, 즉 심리전(心理戰)으로 봤다. 사실은 물론 그렇다. 자기 정부의 선전을 그대로 믿지 않은 소련 사람들은 해외 방송도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우리의 선전은 사실을 왜곡해야 할 수 있는 일인데 그 놈(외국방송)들도 비슷할 것’이라는 논리다.

‘듣는’ 라디오 방송은 못 믿어도 ‘보는’ 영화는 믿을 수 밖에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나 소설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북한과 달리 자유적 경향이 비교적 강했던 소련은 외국에서 영화를 조금씩 수입했다. 물론 대부분 서양 사회를 비판적으로 묘사한 좌익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사회를 비판적으로 묘사했다 하더라도 그 사회에서 자라난 작가가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생활상이 영화를 통해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소련 사람들은 서양 영화를 봤을 때 미국에는 가족마다 자동차가 있다는 것, 누구나 좋은 옷을 입은 것, 중산층 사람들이 호화스러운 집에서 살 수 있는 것을 자기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정치적 측면으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미국에서 반정부 시위를 할 수도 있고, 힘있는 자라도 재판소로 기소할 수도 있고, 해외에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생활은 지금 자신들의 생활과 비교할 수 조차 없었다.

여러 정치, 경제, 문화적인 이유 때문에 사회에 대한 통제가 활씬 더 강했던 북한에서는 김정일과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서양 영화, 특히 남한 영화를 본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을 전후하여 이것은 많이 바뀌었다. 중국을 통해서 대량으로 들어오는 한국 물건, 특히 한국 드라마 테이프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VCR을 보유하는 가정이 많아졌는데 이 사람들이 집안에서 ‘조선의 별’과 같은 북한의 혁명영화를 보고 앉아있을 리 없다. 그들이 볼만한 것은 주로 한국작품이다.

돈이나 재미로 시작된 정치적 활동

작품을 만든 자도, 테이프를 밀수입한 자도, 드라마를 구경하는 자도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고 이념이나 이익 때문에 북한의 정보통제를 파괴시킬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돈이나 재미 때문에 자기 일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활동은 크나큰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류 때문에 북한 사람들은 50년 동안 보지 못했던 세계를 보게 되었다. 한국 드라마를 통해 북한 주민들이 한국 생활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 옛날처럼 남한을 ‘지상지옥’으로 보여주는 거짓선전은 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은 자기 생활을 드라마에 나오는 한국 생활과 비교함으로써 어떤 판단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70~80년대에 미국 영화를 본 소련 사람들이 했던 판단과 비슷하지 않을까?

안드레이 란코프 / 객원칼럼니스트(국민대 교수, 역사학 박사)

<필자 약력> -구소련 레닌그라드 출생(1963) -레닌그라드 국립대 입학 -김일성종합대 유학(조선어문학과 1986년 졸업) -레닌그라드대 박사(한국사) -호주국립대학교 한국사 교수(1996- ) -주요 저서 <북한현대정치사>(1995)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From Stalin to Kim Il Sung 2002) <북한의 위기>(Crisis in North Korea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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