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牛)의 눈에 비친 북한 농장의 실태

북한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을 위한 비약의 해’라고 언급하고 농업을 주타격 방향으로 정했다. 2월에는 ‘전국 농업분조장 대회’를 개최하는 등 식량문제 해결에 힘을 쏟는 분위기다.


북한 매체들은 최근 농사철을 맞아 연유(燃油)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부림소(농사일에 이용되는 소)’를 잘 관리해 논밭갈이 실적이 예상치를 초과하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북한에서 소(牛)는 사회주의 농업에서 토지 다음으로 중요한 ‘생산수단’으로 간주된다. 전시에는 운송을 위한 ‘전쟁수단’으로 격상되기도 한다. 소를 죽이게 되면 ‘경제범’이 아니라 ‘정치범’ 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시장경제 10년을 넘어서고 있는 지금, 북한의 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함경북도 A협동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한 소식통의 사례를 통해 북한 경제의 단면을 살펴보자.


북한의 협동농장 및 국영농장에서는 기본 작업 단위를 ‘작업 분조(分組)’라고 부른다. 분조마다  국영지를 기준으로 트랙터와 같은 기계수단과 부림소가 부여된다. 1개 분조는 10~12명 정도의 인원과 5, 6정보의 국영지가 주어지며, 통상 부림소 2마리가 배정된다.


이 소식통은 24일 데일리NK와 통화에서 “내가 일하는 ‘청년분조(고등중학교 졸업 직후 농촌에 집단 진출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분조)’는 분조인원이 35명, 농경지 22정보, 부림소 8마리가 있다”고 말한다. 이 소식통이 소속된 협동농장의 경우 6개의 분조가 1개 작업반으로 편성되는데, 이 작업반에는 총 20마리의 부림소가 있었다고 한다.


부림소는 작업반 단위로 공동관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도난’ 때문에 분조마다 분조장이 선임한 농장원이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1990년대 경제난 시절에 북한 사회는 ‘소 도둑’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소식통은 “분조의 소가 없어지면, 분조장과 작업반장은 물론이고 협동농장 간부들에게까지 책임 추궁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작업반마다 소 우리를 짓고 책임 있는 농민 2~4명을 선발해 사료를 비롯한 ‘부림소 관리 경비’ 마련을 임무로 준다. 부림소 관리 농민은 다른 농민들처럼 똑같이 공수(工數)를 평가받아 연말 현물분배의 기준으로 삼는다. 힘든 육체노동에서 제외시켜 줄 만큼 부림소 관리는 정치적으로 중대한 보직이라는 뜻이다.


소식통은 “부림소 관리 농민은 자기 집 마당에 소 우리를 짓고 분조 소를 관리하는 방법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관리농민의 임무는 ‘부림소가 죽지 않아야 한다’와 ‘부림소를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부림소가 먹을 사료 및 건강관리가 핵심이다.


A협동농장 측에서는 관리농민이 부림소 1마리를 책임질 경우, 일단 사료용 옥수수 20kg을 주고 그의 노동력을 ‘100 공수’로 평가해준다. 분조의 관리농민은 협동농장 차원의 부림소 관리자와는 달리 분조 농사일을 거들면서 부림소를 관리해야 한다.


일반 농장원이 1년 동안 100% 출근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최고 점수는 ‘600공수’이다. 따라서 출발부터 100공수를 얻고 들어가는 것은 어느 정도 이점이 있다. 그러나 소가 죽거나 도난을 당했을 경우에는 정치적 처벌 이전에 20일분의 노동력이 감점된다.


소식통은 “모든 부림소에는 사람 이름처럼 번호가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한 작업반에 소가 열 마리 있으면 숫자 1번부터 10번까지 번호가 새겨지는 것이다. 번호는 소의 뿔을 칼로 갈아 거기에 표기하거나, 소 귀에 구멍을 뚫고 번호표를 부착한다.


두만강 국경지역에서 소 도난과 밀수가 빈번해지자 북한 당국은 2000년대 중순에 중국 정부에 “번호가 새겨진 소는 북한 소로 확인하고 중국 시장에 나오면 다시 보내 달라”고 요구한 적도 있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관리농민이 가장 스트레스 받는 일은 사료다. 소식통은 “1980년대까지는 소 1마리 사료로 연간 옥수수 70kg이 공급됐으나, 90년대부터는 공급이 끊겼다”고 말했다. 고육책으로 여름에는 주로 산과 들판의 풀을 먹이고, 겨울에는 분조에서 농사 지은 옥수수 대나 콩깍지를 사료로 활용했다. 보통 부림소 1마리가 한 끼에 옥수수 대 5kg 정도를 먹어치운다.


농번기 때가 오면 “모든 농장원은 소에게 먹일 사료와 소금을 양심적으로 내라”는 협동농장 당비서의 지침이 내려온다. 당비서의 선전은 충성심 평가로 귀결되기 때문에 소금이 없는 농장원들은 소금대용으로 사람의 소변을 받아서 내기도 하고 사료 대신 집에서 곡식을 씻고 난 물을 바치기도 한다. 1990년대부터 북한 소는 사람 소변으로 염분을 보충했다.


옥수수 대를 자르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소식통은 “작두로도 써는 것이 일반적인데, 요즘에는 중국에서 들여온 ‘분쇄기’를 사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협동농장에서도 중국발(發) 기계화가 진행 중이다. 농번기 때 사료용 옥수수 대를 썰겠다고 지역 배전부(배전소)에 전화하면 한 시간 정도 전기를 보내준다. ‘전시에 소는 적과 싸울 수 있는 무기’라는 국가적 구호 덕분이다.


그렇다고 사료가 넉넉한 것은 아니다. 관리 농민이 메꾸지 못하는 부족한 사료는 부림소 스스로 벌어들여야 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부림소는 개인들이 소토지 농사를 하는데 임대되는 경우가 많다. 협동농장 부림소를 데리고 가서 하루 동안 개인 소토지에서 일을 시키면, 개인 소토지 주인은 통상 옥수수 10kg을 내놓는다. 심지어 농촌 지역 부림소들은 이삿짐을 날라주고 자기 사료를 벌기도 한다. 부림소가 체력이 떨어지면 때로는 토끼나 닭을 잡아 먹이기도 한다.


이렇게 공을 들여 부림소를 관리하게 되면 관리농민에게는 소소한 인센티브가 남는다. 바로 소똥이다. 부림소 1마리는 보통 약 40평 정도의 개인 소토지를 운영할 만한 거름을 남긴다. 소똥은 전적으로 관리농민의 몫이다. 애지중지 부림소를 돌볼수록 관리농민의 소토지는 풍성해진다.


소 발굽을 보호하는 편자(horseshoe)도 중요한 부속물이다. 협동농장마다 작업반들이 사용하는 농기구를 제작하는 ‘야장간(冶場間)’을 두고 있는데, 이곳에서 소 편자가 만들어진다.


소식통은 “편자를 만들 철이 국가에서 공급되지 않으니까, 지금은 모두 장마당에서 사와야 한다”면서 “소 1마리 편자를 가공하는 데 드는 비용은 보통 옥수수 4kg을 잡는다”고 말했다. 편자를 소 발굽에 박을 때는 근방의 수의사를 데려온다. 봄철 농번기 때는 부림소도 바빠지는 바람에 편자에 박힌 못이 자주 빠진다. 수의사들이 한번 출장 오면 ‘한 끼 식사 대접’ 정도를 해주는 것이 북한의 상(商)도덕이다.
 
소가 병들면 협동농장 전체가 소란스러워진다. 협동농장 관리위원회에는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한 축산지도원과 수의사가 배치되어 있다. 1980년대까지는 국가에서 축산용 약이 공급되었지만, 1990년대 이후로는 자체해결 해야 한다.


북한의 부림소는 봄철에 급체가 많다. 겨울에 배고팠던 소들이 봄철에 싹을 자르고 남은 감자를 주면 허겁지겁 먹다가 체하는 것이다. 분조에서 급히 수의사를 찾으면, 수의사는 소를 묶어 놓고 20mm 철근을 불에 달구어 소 배에 구멍을 내는 무식한 외과수술을 시작한다. 소 배의 구멍에 녹두와 역삼(삼과 비슷한 식물)을 갈아 물에 타서 고무 주입기가 달린 병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약을 투입하게 된다. 치료가 끝나면 소 위에 뚫린 구멍을 바늘로 꿰메고 살균제 가루를 뿌려준다. 증상이 가벼우면 경구투입 방식을 사용할 때도 있다.


관리 농민에게는 끔찍한 경우지만, 결국 부림소도 언젠가는 죽는다. 부림소가 죽게 되면 분조장은 작업반에게 보고를 하고 이는 협동농장관리위원회를 거쳐 군(郡)당위원회까지 올라간다. 군 축산지도원이 분조에 내려와 병사, 사살인지를 확인한다.


병사(전염병)로 죽은 소는 즉시 장작더미 위에 놓고 불로 태우며, 다른 원인(가벼운 병, 영양실조, 상처)이면 즉시 도살장으로 갖고 간다. 죽은 소의 고기는 대부분 군대지원용과 도, 시, 군급 간부들 공급용으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부림소 공급은 어떤 방식일까? 소가 죽으면 국가에서 다시 공급해줄까? 소식통은 “당의 축산정책은 1990년부터 자력갱생이라는 명목으로 농장끼리 매매를 허용해 왔다”고 말한다. 산간지역에 있는 농장은 들판에 있는 농장보다 소 사료가 풍부한 편이라 번식이 잘된다. 그래서 산지 농장들이 야지(野地) 농장들에 소를 파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다. 농장끼리 소를 매매하게 되면 관리위원회에 등록해야 하며, 요즘 시세는 대략 쌀 200kg 값이다.


새롭게 소를 사오게 되면 해당 분조의 분조원들의 연말 현물 분배량이 크게 감소하게 된다. 협동농장에서는 소를 구매한 비용을 분조원들의 현물 분배량에서 조달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밀수’를 부추긴다.


소 밀수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소식통은 “중국 시장에서 부림소는 최소 1만 위안(元)에 판매되지만, 중국 밀수꾼에게 넘겨지는 북한 소 값은 2500~3500위안”이라면서 “가격차이가 있으니까 중국 농민들 사이에서 북한 소에 대한 수요가 있다”고 말했다. 드물긴 하지만 중국에 소를 내다 팔고 받은 돈으로 북한 내부에서 다시 소를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소 밀수는 국경경비대 군인들의 도움이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소식통은 “제대를 하면 대학에 가거나 장가를 가야 하니까 경비대 군인들이 소를 밀수하는 일에 끼어든다”고 말했다. 대담한 군인들은 중국 측 밀매꾼들에게 소를 넘겼다가 중국까지 뒤를 추적해 그 소를 다시 훔쳐서 북한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압록강 쪽 국경경비대 군인들 사이에서는 ‘소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는 재미를 아느냐’는 말도 있다고 소식통은 전한다. 소가 헤엄을 잘 친다는 사실을 북한의 부림소들이 보여주고 있다. 전 세계에서 군인을 등에 태우고 헤엄을 치는 소가 얼마나 될까? 북한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소들의 운명도 기구함 그 자체다. 

설송아 기자
북한 경제 IT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