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은 지난 1월 ‘선진적·인민적 방역’이라는 기조 전환을 시사했지만 여전히 강도 높은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적으로 엔데믹(풍토병화) 단계에 들어선다하더라도 북한에서는 코로나 펜데믹(대유행)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온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최근 데일리NK에 “북한은 백신 접종율이 낮고 면역수준도 높지 않을 것으로 평가되므로 대규모 유행은 필연적”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이후에 국경봉쇄를 푼다 하더라도 바이러스의 유입과 감염을 차단하기 힘들 것이란 뜻이다.
특히 정 교수는 “북한은 의료 환경이 낙후돼 있기 때문에 코로나로 인한 유행이 시작될 경우 심각한 피해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도 최근 ‘북한의 코로나 봉쇄 현황과 전망’이라는 보고서에서 “북한 주민들은 코로나 감염에 대한 면역이 없고 예방접종도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대유행이 일어난다면 단기적인 해결책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북한이 코로나에 대처할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강력한 봉쇄 방역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극단적 봉쇄 방역은 북한 당국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역 정책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정훈 고려대학교 공공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국경봉쇄와 이동통제로 인한 주민들의 경제적 피해가 컸고 도시 봉쇄와 강압적인 격리조치로 사망자까지 발생했지만 북한의 열악한 내부 상황을 감안할 때 폐쇄적인 방역조치는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백신이 개발되기 전에는 어느 나라든 격리와 이동 통제를 통해 감염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역정책이었고 북한의 경우 한번 바이러스가 유입되면 피해를 막기 어려울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결론적으로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북한이나 중국과 같은 ‘제로 코로나’ 정책이 코로나 유행을 지연시킬 수는 있어도 감염자 ‘0명’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토착화되고 집단면역이 형성된다 해도 바이러스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지난 1일 SNS에 올린 글에서 “일시적인 상황에서 정책적으로 유행을 통제할 수는 있지만 그 시기가 오랫동안 유지되기는 어렵다”며 “장기적인 대안은 백신 접종과 감염을 통한 면역 수준 상승밖에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문제는 북한 당국이 백신 원조를 거부하고 있으며, 국경폐쇄 및 이동 통제 정책을 내부 통제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국제 백신 공급 프로젝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는 지난해 북한에 아스트라제네카 811만 회분을 배정했지만 북한 당국은 백신의 종류와 수량을 문제삼아 반입을 거부했다.
올해에는 미국 제약사 노바백스의 백신 25만 2000회분이 배정됐지만 북한은 이에 대한 수용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CSIS는 최근 보고서에서 “북한은 백신을 수용할 경우 모니터링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고 백신 도입이 비핵화 회담과 같은 다른 사안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한 보고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술적 지원’이라는 의미를 부각한 모니터링이나 최소한의 인도적 활동가(1명)를 모니터링 책임자로 북한에 파견하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런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가 백신 보관 장비의 북한 반입에 대한 유니세프의 제재 면제 신청을 승인했다고 미국의소리 방송(VOA)이 지난 16일 보도했다.
이에 북한 당국이 백신 관련 장비의 반입 수용 여부가 주목된다. 현재 전 세계에서 백신 접종을 시작하지 않은 나라는 북한과 아프리카의 에리트리아, 단 두 곳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