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권선언 기념일, 北인권의 새로운 의미

1948년 12월 10일 국제연합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문의 전문은 “인류 가족 모든 구성원의 타고난 존엄성과 평등하고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전세계의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기초”라는 정의로 시작해 “모든 국민들과 나라들이 성취해야 할 공통의 기준으로서 본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한다”는 비장한 다짐으로 마무리 된다. 총 30조에 이르는 인권선언 조문은 오늘날 인류가 ‘의무’로서 지켜야 할 보편 타당한 인권보장의 내용을 망라하며 지역과 문화, 인종, 종교를 초월해 전세계가 공유해야 할 법적·도덕적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자리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난 60여년간 이 선언문에 담긴 정신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쉬지 않고 전진해 왔다. 건국을 위해 노력했던 선각자들은 식민지 봉건성의 잔재를 과감히 혁파하고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면서 세계적인 흐름과 같이 첫발을 내딛었으며, 권위주의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민초들과 양심세력들의 피와 땀, 눈물은 제도와 법규속에 갖혀 있던 인권을 생활과 현실정치로 하나씩 꺼내왔다. 물론 여전히 우리사회 곳곳에 인권의 햇살을 받지 못하고 있는 그늘진 부분이 존재한다. 그러나, 경제와 안보라는 상반된 과제를 어깨에 지고도 이렇게 빠른 인권성장을 일궈낸 과거 경험을 신뢰하면서 다수가 소수를 감싸안는 배려와 포용을 키워간다면, 보다 수준 높은 인권국가로의 항해는 순조로울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평가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축적해 온 인권증진의 저력을 이제 2천3백만 북한 동포들을 향해 발현시켜야 할 것이다. 아(我)에 적용하는 기준과 타(他)에 적용하는 기준을 다르게 잡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인권존중을 위한 첫번째 행동 규범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나름대로의 인권 개념이 있다’ ‘서구식 인권개념을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식의 좌파식 인권론이 사회적 담론 형성을 방해하면서, 사실상 대한민국은 북한동포들의 인권유린 실태에 두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차원의 결단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   


수용자 규모만 최소 15만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정치범수용소는 오늘날 북한정권의 공포정치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김정일 일가와 체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불만을 표출하면 재판도 없이 끌려가 강제노동과 굶주림의 학대를 받아야 하는 곳이 정치범수용소다. 권력투쟁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반 주민들조차 단지 ‘말실수’ 때문에 이곳으로 끌려가고 있다. 아동·여성·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잔인한 노동착취·성착취가 다반사로 벌어지며, 간수들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즉결처형, 공개처형, 비밀처형 등 반인륜 범죄가 횡행한다. 주민들에 대한 공포심리 조성을 위해 만들어진 정치범수용소는 일반 교화소, 노동단련대, 집결소, 구류장 등 각종 구금시설에서의 인권유린을 일상화하는 숙주 노릇을 하고 있다. 


김정일 정권이 만들어 놓은 법과 규정을 잘 지킨다고 해서 인권유린의 칼바람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치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 집회·결사·출판의 자유 등은 오히려 주민들이 꿈도 꾸지 않는 ‘호사’에 속한다. 지금 북한 주민들이 원하는 자유는 굶어죽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는 ‘자유’일 뿐이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은 국가배급이라는 기본 의무조차 지키지 않으면서도, ‘자본주의 사상이 유포된다’ ‘노동당의 말을 듣지 않게된다’는 이유를 들어 주민들의 먹고 살 자유마저 질식시키고 있다. 시도 때도 없는 시장 통제정책은 맘 놓고 장사조차 할 수 없게 하고, 산간 뙈기밭을 개간해 옥수수라도 심어 먹는 일에도 감시가 붙는다. 후계자 김정은의 등장으로 2012년 강성대국이 눈앞에 왔다는 선전구호 뒷면에는 여전히 옥수수 몇알도 구하지 못해 들판에서 굶어 죽어간 숱한 원혼들이 가득하다.


김정일 정권은 그 땅에서 ‘생존 불가’를 확인하고 중국으로 도망친 탈북자들까지 도로 붙잡아 와서 ‘간첩’이니 ‘배신자’니 하는 낙인을 찍어 몇년씩 교화소에 가둬둔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굶주림과 강제노동, 상습폭행이라는 정치적 보복이다. 중국을 떠돌며 인신매매, 임금착취 등 온갖 설움을 다 겪은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태어난 죄’를 깨닫는 순간이 바로 이 시점이다.


북한정권의 악행에 희생된 사람들은 북한주민들 뿐이 아니다. 이미 한국전쟁 당시 최소 10만여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남한의 민간인들이 북한에 납치돼 생사확인조차 되지 않고 있으며, 휴전 이후에도 각종 공작과 침투, 민간어선 나포 등으로 끌려간 남한 국민이 4백명을 웃돈다. 공작원 교육용이라는 악랄한 목적 달성을 위해 일본인 등 세계 각국 민간인까지 북한으로 끌려가는 희생을 당했다.   


북한인권 문제는 이제 우리에게 북녘동포들도 우리에 준하는 권리와 행복을 누리도록 도와야 한다는 시혜적 관점을 뛰어 넘어서, 포괄적인 북한 문제 해결책을 갖출것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인권 문제의 본질은 무력과 자금, 견고한 공권력을 갖춘 초고도형 범죄집단이 오직 자신들의 권력유지만에 몰입하면서 토해낸 부산물일 뿐이다. 김정일 정권의 반인륜적 범죄를 우리가 묵인하고 외면하는 동안, 김정일은 백주대낮에 연평도 민간인 마을에까지 포탄을 퍼붓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범죄 불감증’에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폭력정권의 상징인 히틀러가 유태인 학살과 같은 인권유린 범죄와 주변국을 침략하는 전쟁범죄를 늘 동시에 즐겨 사용했다는 역사적 교훈은 북한 주민들에 대한 김정일의 인권유린 행위를 수수 방관해 온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떤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를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우선 정부의 근본적인 행동변화가 선결조건이다. 국가인권위를 앞세워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는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김정일 정권과 그 하수인들의 인권유린 사례를 감시 기록해 그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는 한편, 북한주민들에게 남녘 동포들이 당신들의 고통을 아파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해줘야 한다. ‘북한인권 개선’이라는 보편 타당하고 국제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북한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공조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 안으로는 북한 주민들이 인도적 지원식량과 외부사회의 객관정보를 실제 전달받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민관합동 전략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국회는 정부의 이런 노력이 추진력을 받을 수 있도록 북한인권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지금은 나라 망신이나 시키는 볼썽 사나운 주먹질과 정쟁에 몰두 할 때가 아니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유린 실태에는 일언반구 언급도 안하면서 마치 자신들만이 진심으로 북한 주민들을 위하는 양 김정일 정권과의 공조만을 외치는 일부 야당과 그 둘레에 포진한 종북단체들의 말장난을 끊어 내려면 국회의 법률제정 권한으로 대한민국의 국력을 한데 모아내는 일이 급선무다.


자유와 평등의 진보사회건, 선진화와 세계화의 일류국가건, 김정일 일가의 폭정에 신음하고 있는 민족 절반의 비참한 현실을 외면한채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파라다이스는 그 어디에도 없다. 범죄자에 의한 조직적 인권유린은 반드시 그 피해자가 확산되기 마련이다. 지금 김정일의 행보가 바로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일 62주년인 오늘, 대한민국이 반드시 곱씹어야 할 냉정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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