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대북지원, 남북정상회담 길닦기?

북핵 6자회담 ‘2∙13 합의’가 완전한 북핵폐기를 담보하지 못한 조건에서 정부가 성급하게 대북지원을 추진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여기에 정부의 ‘2·13합의’ 이전 장관급회담 제의, 대북지원 논의, 북핵상황과 인도지원 분리 등 요란한 행보가 ‘남북정상회담’ 사전 정지작업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재정 통일부장관은 20일 ‘2007년 업무계획’을 발표하며 인도적 지원과 정치상황은 분리할 것이라며 쌀과 비료 지원 지속 의지를 밝혔다. 또한 이 장관은 “남북정상회담은 현 단계에서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정말 필요하고 유용하다”고 언급했다.

남북정상회담의 추진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필요성과 유용성’을 강조한 것으로 볼 때 올해 업무계획 기조에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밑그림이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특히, 북핵문제와 인도지원을 분리하겠다는 입장은 사실상 북한이 핵을 보유해도 쌀을 주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어 의혹은 증폭되고 있다.

이 장관이 21일 국회 통외통위 전체회의에서 “남북장관급회담을 통해 이런저런 여러 회담 가능성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장관급회담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달 27일부터 3월 2일까지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한의 반응은 남북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과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을 후임 국무총리로 거론하는 것도 정상회담 추진과 상당한 연관성을 내포하는 분위기다. 박재규 전 통일부장관은 6.15정상회담 성사의 주역으로 남북관계 전문가로 남은 임기 안정적인 정국운영을 위한 일반적인 인선으로 보기 어렵다.

열린우리당은 남북정상회담 군불때기가 한창이다.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한 열린당은 “조속한 시일 내 인도적 지원 재개로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에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자”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여당 입장에서 최악으로 치달은 민심을 달랠 수 있는 카드는 남북정상회담이 유일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정상회담 이후 그 여세를 몰아 평화개혁세력 대통합을 가속화 시킨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정부의 성급한 대북지원에 의구심을 표시하고 남북정상회담 조기 개최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2∙13 베이징 합의’는 행동대 행동 합의임을 강조하고 섣부른 지원은 오히려 독이 된다고 주장한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국제공조를 통한 북핵 해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수 있다는 우려와 대선 정략적 이용 가능성을 언급하며 연내 개최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바라보는 해외의 시각도 그리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다. 방한중인 애쉬턴 카터 전 미 국방부 차관보는 21일 인터뷰에서 “만약 북핵 관련 이행합의서가 완전히, 활발하게 이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다면 그것은 (한국 정부의)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비핵화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는 상태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도 “북한이 이행의지가 없으면 베이징 합의문은 휴지조각에 불과하다”고 했다.

국내 북한 전문가들도 ‘행동대 행동’의 원칙을 강조하며 정부의 성급함을 꼬집었다. 성급한 지원 재개는 국제공조를 통한 북핵 폐기 원칙을 스스로 져버리는 것으로 국제사회의 노력에 역행하는 결과와 북한 정권에 이용될 가능성만 높다는 지적이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대결단(핵폐기)을 하면 도와줄 준비가 다 돼 있다는 성의를 자꾸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는 우리가 성의를 보이면 (북측도) 가시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이어 “그러나 성급한 대북지원 등이 지나칠 경우 ‘유화정책’ 또는 ‘비현실적’이라는 국민적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면서 “속도조절을 통해 가장 적절한 타이밍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대성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핵 폐기를 위한 북한의 행동과 국제공조를 보면서 행동을 취해야 하는데 너무 서두르고 있다”며 “이는 정상회담을 위한 밑그림일 지 모르지만 북핵 폐기를 위한 국제공조체제와는 결국 엇박자를 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YTN이 2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남북정상회담 추진에 대해서는 찬성의견이 많다. 그러나 연내 개최에 있어서는 찬반이 팽팽히 맞서 신중한 처신을 요구하고 있다. 또 대북지원에 대해서도 현재보다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72.2%로 압도적이다.

이 같은 여론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가 오직 남북정상회담에만 올인, 대북 ‘퍼주기’에 몰두한다는 것은 국내정치용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북핵 폐기 이행에 대한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선물 약속’은 전략적으로도 큰 실수라는 것이다.

참여정부 4년의 실정으로 역대 최악의 정부로 평가 받는 노무현 정부에게 남북정상회담은 유혹적인 카드가 될 수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국내 북한 전문가는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핵까지 보유한 김정일에게 정상회담을 구걸하기 위해 대북지원을 강행한 ‘이해할 수 없는 정부’라는 역사적 평가가 뒤따른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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