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는 ‘뇌리에 박히는 처벌’을 보여주라

일찍이 마키아벨리는 시민적 생활질서와 법이 존중되는 정치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중요한 사람들이고, 유명인사이며, 권세를 가진 사람들인 경우, 가장 엄격하게 처벌되어야 한다고 갈파했다. 그러면서 이런 경우의 처벌을 ‘뇌리에 박히는 처벌’이라고 불렀다.

즉 시범 케이스를 통해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낄 정도의 ‘뇌리에 박히는 처벌’을 보여줄 수 없게 되면 머지않아 너무나 많은 위법이 횡행하게 되어 더 이상 이들을 처벌하는 것이 오히려 정치적으로 위험하게 되는 사태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던 것이다.

1인 군주제가 아니라 공화국이 성립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법이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가에 대한 원칙이 확립돼 있던 14세기와 16세기 초 피렌체, 베네치아, 제노바 등의 이탈리아 반도의 도시공화국들에서 이제 21세기 대한민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중앙선관위는 7일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평가포럼 연설에 대해 공직선거법상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날 노대통령은 8일 원광대 특별강연에서 “모호한 대통령의 선거중립 규정은 위헌”이라거나 우리의 선거제도를 “세계에 유례가 없는 위선적 제도”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6·10민주화항쟁 20주년 기념사에서는 “헌법의 대통령 5년 단임제와 선거법의 정치적 중립의무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면서 현 제도는 “선진국이 아니라는 증명이고, 쪽팔린다”고 말했다. 급기야는 15일자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열린우리당이 선택한 후보를 지지하겠다”며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을 정면으로 깔아 뭉게버린 것이다.

민심과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눈치만 살펴오던 선관위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18일 오후 선관위원 정기전체회의를 열어 이 발언들에 대한 선거법 위반 여부를 결정할 모양이다.

하지만 ‘공무원인 대통령이 선거 중립을 지키지 않았는데, 선거운동을 한 것은 아니다’라는 궤변을 국민들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도대체 선거법을 지켰다는 것도 아니고, ‘선거법을 어겼다는 것도 아닌 같기도’ 식의 판단을 내려서야 어찌 선거에 관한 최고의 권위를 가질 수 있겠는가?

백번을 양보해서 노대통령의 말대로 우리의 선거제도가 정치 현실에 맞지 않는 후진성을 띠고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법을 어겨도 좋은 것인가? 실정법으로 행동에 제약을 받는 사람 모두가 각자의 판단으로 그 법의 정당성을 부정할 경우 도대체 남아날 법이 몇이나 될 것인가?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이회창씨가 대통령의 문턱에까지 갈 수 있었던 것도 1989년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시절 두 번의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후보자 전원을 고발조치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법치주의를 각인시키며 중앙선관위의 권위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선관위가 또 다시 권력의 비위를 맞춘다면 선관위의 존립기반이 흔들림은 물론이고, 이 나라 법질서의 축대는 소리없이 무너질 것이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에서 불법폭력시위를 일삼던 소위 인권단체들이 지난 4월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한다며 한달 동안 집시법을 지키지 않겠다고 했던 생떼가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갈 것이다.

곧이어 연말이면 대통령선거가 있고, 내년 4월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을 텐데, 그동안 사소한 규칙 위반에도 득달같이 달려들었던 선관위 직원들은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항변에 무엇이라 말할 셈인가?

지난 2004년에 이어 두 번씩이나 현직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으로 경고를 받고도 모자라 또 다시 선관위의 처분이 나올 형편이니,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민망하기 짝이 없다. 동시에 대통령의 반짝 쇼에 신물도 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국민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

어쩌면 노대통령은 선관위가 검찰에 자신을 고발해주길 바랄지도 모른다. 그래서 국민들의 머리 속에 선관위와 검찰 그리고 한나라당 등이 한통속으로 비치게 하고 그 대척점에 자신을 놓고 싶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대통령의 정치적 속셈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국민들이 법치주의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굳건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은 그저 구제불능 대통령의 문제도 아니며, 선관위의 면피성 기회주의적 행태를 꾸짖는 것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바로 대한민국의 질서와 법치에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뇌리에 박히는 처벌’을 보여줄 수 없게 되면 머지않아 너무나 많은 위법이 횡행하게 되어 더 이상 이들을 처벌하는 것이 오히려 정치적으로 위험하게 되는 사태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마키아벨리의 경고를 명심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