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대통령이 10월 11일 청와대에서 각 정당 대표 ․ 원내 대표들을 불러놓고 NLL강의를 한 모양이다.
우선 노대통령의 강의록에서 헌법 3조를 원용하여 “우리 헌법상 북쪽 땅도 우리 영토”라고 말한 부분은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한국 내 친북좌파 뿐 아니라 한나라당 국회의원 홍준표 등 정치인 일각에서 일고 있는 헌법의 영토조항 개정론에 “대못”을 박은 것으로서, 7천만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소중히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물론 법률가로서 노대통령은 국가의 3요소가 ‘영토’ ‘국민’ ‘주권’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헌법 3조, 즉 노대통령의 영토관에 따르면 “조선인민공화국은 국가가 아니다”라는 사실이 논리적으로 따른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 있게 강의한 NLL의 성격 규정, 즉 “영토선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필자는 적극 동의한다. 왜냐하면 필자도 노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영토에 대한 규정은 헌법 3조에 전적으로 명확하고 완전히 규정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맞다. NLL은 1953년 8월 정전 후 1달이 지나 유엔군사령관이 한국군에게 내린 “작전의 한계 영역”에 관한 경계선, 줄여 말해 사실상의 군사분계선이다.
NLL이 영토선이 아니고 정전협정에는 없는, 또한 북한과는 상의하지 않았으므로 북한에는 준수 의무가 없고, 따라서 연평해전이나 서해교전 등이 북한군의 영토침입이 아니라는 주장이 리영희 교수 등에 의해 계속 제기되어 왔다. 노대통령도 “NLL이 영토선이 아니다”는 말을 하였을 때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한 듯하다.
NLL의 내막을 자세히 모르는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그럴 듯하게, 심지어는 논리적이고 진실을 밝히는 주장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렇기에 노대통령이 “정치가들이 국민을 오도”하고 있다고 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영토 확정적 의미가 전혀 없는 군사분계선이라도 한국의 헌법에 영토가 명확히 규정되어 있는 상황 하에서는 이 군사분계선의 침범은 ‘실질적으로 관할하고 있는 영토에 대한 침범’임은 상식적이고 논리적이다.
왜냐하면 정전협정에 의하면 군사분계선은 쌍방이 침범해서는 안 될 경계선이다. 한국은 비록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국은 아니지만 사실상 정전협정을 준수하고 있는 입장에서 군사분계선 북쪽에 있는 미수복 한국영토에 한국의 주권을 실현시키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북한이 침범하였을 시에는 가차 없이 ‘영토침범’으로 응징해야 마땅한 것이고 지금까지 또 그렇게 해 왔다.
따라서 “NLL이 영토선 혹은 국경선이 아니다”라는 주장으로부터 “북한의 NLL 침범은 영토침범이 아니다”라는 주장은 아직 전혀 도출되지 않는다.
이 주장이 도출되려면 “NLL이 서해상의 군사분계선이 아니다”라는 전제가 추가로 도입되어야만 한다. 물론 북한의 입장에서는 정전협정에 아무런 규정이 없고, NLL은 자신들과는 무관함으로 이 전제가 충족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노대통령에 따르면 국가도 아닌 집단의 주장일 뿐이다.
‘일방’이 그었으면 어떻게 “쌍방이 관할해온 구역”이 나오나?
우선 살펴야 할 점은 NLL에 대한 역사적 평가이다. NLL은 중공과 북한 등이 반공포로를 석방한 이승만 정부가 정전협정을 준수할지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자 당시 유엔군사령관이 지휘권을 갖고 있던 한국군에게 ‘정전협정의 준수를 목적으로’ 내린 한계선이다. 이때 서해와 동해상의 거의 모든 섬들을 점령하고 또 제해권을 갖고 있던 유엔군이 서해 5도만을 갖기로 결정하고 서해에서는 38도선 아래로 사실상의 군사분계선을 설치하였다는, 즉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였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전협정의 준수를 위해서는 남북한 군대의 활동 영역이 분리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정전협정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지 않은 군사분계선을 NLL이 대신한 것은 북한 측 자료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즉 유엔군, 북한, 중공이 정전협상 과정에서 서해상의 군사분계선 설정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NLL이 불가피하게 도입된 것이다.
이때 분명해지는 것은 만일 -친북좌파에 의하면- 북한은 지킬 필요가 없다는 NLL을 한국만 지킨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이 주권국가임을 포기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NLL 북쪽의 공해상을 항해할 권리를 한국 스스로 포기하였다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전협정의 준수가 NLL이 한국군의 북방한계선이자 북한군의 남방한계선으로 작용할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음은 주권국가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명백하다.
아마 독자 중에는 이런 주장은 한국 사람의 주장이고 북한의 주장이 아니므로 서해상에서 북한해군이 NLL 남쪽으로 내려오는 것은 “그들의 입장, 혹은 친북좌파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권리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10월 12일 사설에 의하면 만일 한국정부가 NLL을 이런 식으로 포기한다면 “독도에 대한 한국의 주권은 어떻게 방어할 수 있겠느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필자가 볼 때 독도 이야기는 지나친 과잉반론이다. 굳이 독도까지 갈 필요도 없다. 만일 북한이 서해상의 사실상의 군사분계선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국이 아닌 한국이 육지의 군사분계선을 인정할 수 없다고 나와도 북한이나 친북좌파는 할 말이 없다.
내친 김에 휴전선 남북으로 수십키로미터 일대에 한반도 평화벨트를 만들어 남북한 국민이 자유롭게 왕래하자고 주장하자. 어차피 한국은 정전협정 당사자도 아니며, 형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 사실상의 관례보다 더 중요하다면 한국은 정전협정을 지킬 아무런 의무도 없다.
노대통령의 또 다른 오해 내지는 그 측근들의 몰상식은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NLL 문제를 북쪽과 협의하겠다는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 부속합의서에는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온 구역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노대통령이 “쌍방”과 “일방”을 강조하면서 NLL은 쌍방이 합의한 것이 아니라 일방이 획정한 것이라는 말을 한 것은 실은 리영희 교수의 1999년 논문에서 따온 표현들이다. 간단히 말해 그에 의하면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온 구역”이란 남과 북 모두가 인정한 구역을 의미하며, NLL은 일방적으로 그어진 경계이기 때문에, 따라서 이에 포함되지 않아 협의의 대상이라는 주장이다. 노대통령은 바로 리영희 교수의 주장을 완전히 받아들여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말한 것으로서, 그 실제 의미는 ‘NLL의 변경 내지는 포기의 가능성을 확언한 것’이라고 보아도 좋다.
이 주장이 블랙 코메디인 것은 이렇게 남북기본합의서를 ‘해석’할 경우 서해상에는 “쌍방이 관할해온 구역”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NLL이 사실상 유일하게 쌍방의 관할구역을 규정해 왔으나 바로 NLL의 규정력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논리를 계속한다면, 지금 당장 북한해군이 인천은 물론 목포 앞바다에 진출하거나 혹은 한국해군이 남포 및 신의주 앞바다로 진출하더라도 아무런 문제도 없다.
김장수 국방장관, 대통령 판단 전문가로서 부정해야
예전 어느 때인가 여의도 광장을 차를 타고 마구 질주하여 행인들을 살상한 자가 있었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신병을 비관하거나 애인으로부터 버림받아 그러했다고는 하지만 실은 일종의 광기인 것이다. 지금 줏대 있는 한국국민이라면 임기 말의 노대통령을 보는 심정이 바로 그럴 것이다. 대통령은 지금 광란의 질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주권수호의 정점에 서 있어야 할 사람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노대통령이 한국을 회사 장수천 정도로 생각한다면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문제다. 필자가 볼 때 현실적으로 책임을 통감해야 할 사람은 이번 노무현-김정일 회담 결과를 긍정적으로 보면서 대통령의 지지율을 높여준 국민들과 대통령의 보좌관들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개 국방위원장에 불과한 김정일에게 마치 ‘남반부’ 지역정부의 장과 같이 취급당하고서도 방문하는 곳마다 북측의 환심을 사고자 예의 그 “놈현스러운” 표현과 행동으로 줏대 있는 한국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10.4합의문의 내용에 있어서도 북한인권, 납북자와 국군포로, 핵무기 및 핵프로그램 폐기에 대해서 그 어떤 실질적인 진전도 없으면서 60조 이상이 들 것으로 추정되는 남북경협,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대북지원에 합의하고 왔다.
뿐만 아니라 이솝 우화에서 따온 “햇볕정책”이란 표현의 근원으로서 노대통령이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포기할 수 없는 “포용과 지원에 의한 개혁개방”이라는 친북좌파들의 기도문도 김정일이 싫다고 하니 헌 양말짝이라도 되는 것처럼 미련 없이 포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과반수 훨씬 이상이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판단하여 대통령의 지지율을 단숨에 50% 이상으로 올려 주었다. 그러니 노대통령은 지금 엔돌핀 과잉상태, 한마디로 신이 난 것이다.
한때 인기 없고 무능한 노무현씨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들 스스로가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이 돌았지만, 한국 국민 상당수는 이제 똑 같은 우(愚)를 거의 반사적으로 범하고 있다. NLL에 대한 대통령의 저 거침없는 광상곡(狂想曲)도 실은 국민들의 지지에 기반하고 있음은 그의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보아도 명백하다.
왜 국민들이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 연구되어야 할 사항이므로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겠다. 지금 이 시점에 중요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보좌관들의 행동이다. 특히 11월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국방장관회담과 관련하여 김장수 국방장관은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대통령이 이미 NLL 무력화의 모든 전제조건을 마련해 놓은 상태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우선 김장수 국방장관이 숙고해야 할 점은 NLL 무력화의 종착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다. 이미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몇 개월 이재정 장관 및 그의 측근들을 통해서 차근차근 NLL의 무력화를 남북경협이라는 포장을 통해 시도해 왔다.
때로는 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NLL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소리도 들리지만, 모든 경계란 한번 무너지면 모든 권위를 상실하여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추하게 보이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서해상의 이른바 “평화벨트”가 실행되면 누구나 인정하듯이 NLL은 개나 소나 다 건드려 볼 수 있는 이름 뿐의 경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한국이 북쪽의 개혁개방도 포기하였다면 남은 것은 김정일 수령독재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하여 북의 체제를 무조건 지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김장수 국방장관은 한국의 지원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북한인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핵무기로 강성대국이 된 김정일 정권이 다음에 취할 행동을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시작은 “평화”라는 말이지만 폐쇄된 수령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핵무기 보유국이 한국에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은 결코 ‘평화’가 아니다. 정상인은 그것을 “협박”이라고 부른다.
김장수 국방장관은 11월 남북국방장관 회담에서 NLL을 북쪽이 인정한다는 전제하에서 의제를 논할 수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절대로 노대통령의 말처럼 이 문제는 뒤로 미룰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왜냐하면 한번 무력화된 NLL의 미래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이 NLL의 규정성을 사실상 부정하고 있는 입장에서 북한측의 반응은 뻔하다. 이때 김장관은 대통령의 판단을 전문가로서 부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하면 NLL의 적법성에 대하여 북측과 논쟁을 벌여라. 물론 회담의 파행을 감수해야 한다. 만일 이렇게 할 수 없다면 차라리 11월 회담 직전에 사표를 던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광기에 저항하는 것은 항명이 아니다. 예전의 문무 대신들은 왕의 잘못을 간하기 위하여 필요하면 관을 지고 궁에 입궐하였다. 죽이기 전에는 충언의 입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그때와 지금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때는 충언을 하다 죽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또 그때는 대의에 연연하여 자리를 소홀히 하였으나 지금은 자리에 연연하여 대의를 소홀히 하는 자가 많다는 점이다. 김장수 국방장관이 전자에 속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