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석 망명에 대한 몇 가지 오해

▲ 탈북자의 집입을 막고있는 중국군인

4월 27일 로스앤젤레스 이민 법원은 한국 국적의 탈북자 서재석씨의 망명을 허용했다. 그리고 미 국무부 이민국을 대표하는 변호사가 항소를 포기함에 따라 서씨의 망명은 사실상 확정되었다. 서씨 망명의 의미를 둘러싸고 몇 가지 오해가 있는 것 같아 하나씩 집어 본다.

첫번째 오해는 서씨의 망명 허용은 한국 정부의 탈북자 탄압을 인정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만약 서씨가 한국 정부의 정치적 박해를 이유로 망명을 신청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졌다면 가능한 이야기다. 서씨의 경우 망명 허용의 핵심 사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법원에서 한국 정부의 정치적 탄압을 망명 허용의 핵심 사유로 판단했다는 정황은 아직 없다.

미국의 망명 심사에 있어서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망명은 꼭 정치적 사유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문화적 박해도 망명의 사유가 될 수 있다. 가령 어느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라 하더라도 동성애자에 상당히 적대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다고 하자. 동성애자가 사회, 문화적 차별과 박해로 그 사회에서 도저히 견디기 어렵다면 그것도 망명 사유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아주 예외적인 경우이기는 하지만 속된 말로 “아주 맘 좋은” 판사를 만났을 경우 망명이 허용되기도 한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미국 법원도 허술한 틈이 있다.

운 좋은 사람들은 때론 이런 행운을 맛보기도 한다. 서재석 씨 망명에 관한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면, 아주 능력있는 변호사와 서씨의 딱한 사정을 관대하게 본 마음 좋은 판사가 만나 이루어진 행운의 합작품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민주주의 국가라고 해서 미국에 망명이 허용된 케이스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미국 망명자 통계를 보면 소위 민주 국가의 경우에도 미국 망명이 허용된 사례가 있다. 2005년 미국 망명 허용 통계에 나오는 몇몇 국가만 살펴 보면 벨기에 5명, 캐나다 4명, 프랑스 4명, 독일 5명, 네덜란드 2명, 한국 1명의 망명이 허용되었다.

정치적 탄압 외에도 사회문화적 차별도 망명원인

벨기에, 캐나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는 누구나 다 아는 민주주의 국가들이다.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망명이 허용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나라의 반민주성을 논하기는 어렵다.

미국 망명자 통계를 보면 한국 국적자의 경우도 1997년 10월~2005년 9월 사이에 미국으로 망명한 사람이 총 10명이라고 나와 있다. 이 시기는 소위 한국의 민주주의가 만개하던 김대중, 노무현 집권기이다.

결국 서씨의 망명을 한국 정부의 반인권 정책으로 비화시키는 것은 심한 비약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 정부의 공무원들도 서씨의 망명 허용으로 그렇게 흥분한 필요는 없다. 한국보다 민주주의 전통이 오래된 유럽 나라들에서도 미국 망명자가 있다는 사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오해는 이번 서씨 판결이 미국 정부의 정책을 반영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미국 사회를 몰라도 너무도 모르는 주장이다. 이번 판결은 미국 행정부의 정책과 전혀 무관하다. 미국은 행정부와 사법부가 엄격히 분리되어 있는 소위 삼권분립의 나라이다.

그리고 이번 판결은 사법당국의 입장도 아니다. 그저 일개 판사의 판결이다. 이는 만약 서씨 사건이 다른 판사에게 넘어갔다면 사건이 기각될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 전역의 이민법원은 매 년 수만 건의 망명 재판을 다룬다. 서씨 사건은 이 중 하나일 뿐이다.

세 번째 오해는 이번 판결은 북한인권법이 적용된 결과라는 것이다. 북한 인권법은 북한 국적자에게 적용되는 것이지 서재석씨처럼 북한 출신이더라도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에게는 적용되지는 않는다.

서씨 망명, 북한인권법과는 무관하다

만약 북한 국적자가 한국에 들어오지 않고 바로 미국으로 가서 망명을 신청할 경우에는 북한인권법을 적용 받을 수 있다. 최근 동남아에서 미국 행을 기다리고 있다는 탈북자들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 있는 탈북자들은 전혀 사정이 다르다. 그들은 엄연히 한국 국적자이고 북한인권법과는 인연이 먼 사람들이다.

아울러 필자는 이번 서씨의 망명 허용을 보면서 두 가지 우려가 들었다.

하나는 한국에 있는 탈북자들이 미국 체류의 희망을 안고 대거 미국행 망명을 신청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물론 이들 모두 망명이 허용된다면 굳이 말릴 이유는 없지만 미국에 허술한 틈이 좀 있다고 하더라도 미국 법원이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니다.

서씨와 같이 아주 운좋은 케이스가 계속 반복해서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 물론 망명 신청은 탈북자들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지만 망명이 허용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동안 여러 탈북자들이 미국 망명을 신청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그들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망명 신청으로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한국에 돌아올 경우 남는 것은 피폐해진 마음의 상처뿐이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그런 우연에 기대어 삶의 기회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두번째 걱정스러운 점은 탈북자들을 대할 한국인들의 싸늘한 시선이다. 미국 망명을 신청한 탈북자들은 공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들이 받은 냉대를 이야기한다. 이를 들은 많은 한국인들은 그렇게 많은 정착금을 지원하면서 먹여주고 재워줬는데 하면서 배신감을 느끼는 것 같다.

탈북자와 우리 사회가 성숙하는 계기로 삼아야

그러나 한국인들도 이번 사건을 우리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문화적으로는 배타적인 나라이다. 동남아 이주 노동자를 포함한 외국인들에 대한 문화적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같은 민족인 중국 조선족들에게도 “너희들은 우리와 달라”라는 시선이 여전하다.

아직도 한국은 이질적인 것을 잘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탈북자들도 한국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고 있지 못한 것이다. 하물며 서재석씨와 같이 탈북자이면서 얼굴에 화상까지 입은 장애인이 느꼈을 소외감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자유 세상을 배워나간다는 시각에서 보면 탈북자들은 아직 이 사회에서 적응 과정에 있다. 일부 탈북자들의 미국 행도 어떻게 보면 자유 세상에 대한 계속되는 학습 과정으로 보여진다. 이 과정을 통해 그들은 새로운 것에 부딪치고 때로는 실패하기도 하면서 세상을 배워 나갈 것이다. 동시에 성숙할 것이다.

또한, 한국인들은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관대한 시선으로 우리 탈북자들을 대하기를 희망한다. 북한이라는 존재는 앞으로도 한국인들에게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문제들을 끊임없이 제기할 것이다. 서씨 망명 사건은 단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하태경/ 미주 대북방송 <열린북한방송> 사무총장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