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석 칼럼] 서울 한폭판에 등장한 ‘겨울나비’

지난달 27일 서울 광화문역 앞에 마련된 ‘탈북 모자’ 추모 분향소에 관계자들이 조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

지난달 21일 오후 2시. ‘촛불혁명’의 성지로 불리는 광화문광장에 조촐한 분향소가 마련됐다. 두 명의 영정 사진 앞에는 30여 석의 의자가 놓여있었다. ‘고(故) 탈북민 모자(母子) 추모 분향소’. 분향소는 지난 7월 31일 아사로 추정되는 탈북민 모자를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시민 애도장으로 진행된 장례식은 탈북 모자가 사망한 후 거의 두 달이나 지난 후에 치러졌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공동장례위원장으로 나와 “평생 정치를 하며 이런 무거운 조사(弔詞)를 하게 될 줄 몰랐다”면서 “두 사람을 보살피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게 만든 것은 대한민국 정치가 사망했다는 것”이라고 말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그 밖에 야당 주요 인사 등 200여 명이 운집했다. OECD 국가인 대한민국 서울의 한복판에서 탈북모자가 아사한 어처구니 없는 사태는 그렇게 조용히 너무도 조용히 지나갔다.

탈북 모자가 사망한 곳은 13평 남짓 임대아파트다. 전세보증금 547만 원, 월세 9만 원. 모자의 통장에 찍힌 잔고가 0원인 것이나 냉장고가 비어있는 등을 통해 정황상 이들이 ‘아사’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경찰은 ‘사인불명’이란 석연치 않은 답변을 내놓았다.

두 모자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광화문 분향소에는 수천 명의 시민이 찾아 이들을 애도했다. 그에 반해 ‘사람이 먼저’라는 정부의 모토를 상징하는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기억과 빛’ 전시장이 지근거리에 위치해 묘한 대비를 이루며 분향소 분위기를 더욱 씁쓸하게 만들었다.

사망한 한성옥 씨는 중국에서 조선족 남편을 만나 아들을 낳았고 다시 한국에 입국해서 둘째인 동진이를 낳았다. 임신 중 가정폭력 등에 시달린 탓에 둘째 동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진이의 방에는 여러 장의 그림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림을 분석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아 우울장애, 발달장애 등 정신질환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한성옥 씨는 장애가 있는 동진이를 보살피기 위해 일을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 탈북모자 아사사건에서 영화〈겨울나비〉가 데자뷰된다. 영화〈겨울나비〉는 북한에서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으로 불린 대규모 아사사태가 발생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겨울나비〉는 제목에서 봄을 연상시키는 ‘나비’와 ‘겨울’을 결합시킴으로써 반어법적 비극을 연상시킨다. 겨울에 나비가 존재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이번 탈북 모자 아사사건과 마찬가지로 가난과 배고픔으로 인해 발행한 모자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영화 〈겨울나비〉의 김규민 감독은 황해도 출신의 탈북민이기 때문에 당시의 비참한 상황을 누구보다 리얼하게 전달했다고 평가받았다.

이번 탈북 모자 사망사건에 대한 외신의 반응도 냉소적이었다. 뉴욕타임즈의 기사제목은 “그녀는 북한에서 기근에 시달렸고, 풍요의 땅에서 가난하게 죽었다(She Fled Famine in North Korea, Then Died Poor in a Prosperous Land)”였다. 뉴욕타임즈는 해당 기사에서 현재 탈북민 관련 복지지원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의 태도가 미온적이라는 점을 꼬집었다. 마찬가지로 CNN은 “그녀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탈북했다. 그러나 그녀는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그의 어린 아들과 함께 죽었다.(She fled North Korea for a better life. She died with her young son in an apartment in Seoul)”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한성옥 씨와 처지가 비슷한 탈북 미혼모가 5000명이나 된다고 한다. 나쁜 의미로 예비 아사자 명단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은 미온적 탈북민 지원제도가 지속된다면 말이다. 영화〈겨울나비〉의 비극이 서울 한복판에서 재발할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점이 이번 사건으로 확인됐다.

영화〈겨울나비〉에서 진호(아들)는 항상 엄마와 함께 닭을 요리해서 먹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눈 뜬 현실은 냉기가 흐르는 회색빛 단칸방이었다. 김규민 감독이 영화〈겨울나비〉에서 꼽은 명장면은 진호의 엄마가 김일성-김정일 초상화 앞에서 “수령님, 장군님 진호를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이다. 이번에 사망한 한성옥 씨 모자 역시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 안에서 그들이 자유를 찾아 넘어왔을 때 맹세했던 것과 똑같이 태극기 앞에서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았을까?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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