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영훈 교수 “북한 경제발전, 日帝기반 활용한 것”

▲ 고려대에서 열린 이영훈 교수 초청 강연 ⓒ데일리NK

1970년대 중반까지 북한이 경제분야에서 남한을 앞섰던 이유는 일본 제국주의 군수산업 기반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는 1일 저녁 고려대 418기념관에서 <북한인권청년학생연대> 주최로 열린 ‘북한인권 대학 릴레이포럼’ 강연에서 이와 같이 주장했다.

이 교수는 미국과 러시아, 한국의 자료를 중심으로 1940,50년대 북한 경제를 분석한 일본 학자 기무라 미츠히코의 저서「북한의 군사공업화」를 소개하며 “1960년대까지 북한 경제가 남한에 비해 경쟁력을 가졌던 것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효율성이라기보다는 북한 땅에 초기 축적이 풍부했기 때문”이라며 “그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일제가 남기고 간 유무형 자산”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흔히 북한 사회주의 경제는 5,6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남한보다 경쟁력이 있었으며, 70년대 후반 이후 북한 경제가 몰락한 이유는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모순이 심화됐고 80년대 이후 국제사회주의 체제가 해체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서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 비효율성 때문이라면 5,60년대에는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나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군수에서의 압도적 우월, 김일성 전쟁 결심”

이 교수는 “1945년 8월 당시 일본은 북한에 200개 이상의 대규모 공장을 건설, 중화학 공업을 발전시킨 상태였으며 이 시설을 일본이 패전과 동시에 놓고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함흥에는 대규모 화학 공장 단지가 들어섰다”면서 “북한이 우리식 사회주의의 정신적 토대로 여기는 함흥의 비날론 공장도 결국 일본 제국주의가 남겨준 군사공업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 시기 북한은 전력이나 운송, 사회적 인프라 면에서 남한보다 월등했을 뿐 아니라 일본과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는 것.

이 교수는 “물론 북한도 해방 이후 6개월간은 대혼란의 기간 이었다”며 “경영자, 엔지니어, 숙련노동자 등 일본인들이 대량으로 본토로 철수함에 따라 공장 가동이 중단됐고, 전승국(戰勝國)인 소련이 북한에 들어와 권리를 행사하면서 상당량의 공장 재고품과 고급생산설비를 전리품으로 확보해 본국으로 수송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에는 일본이 남기고 간 재고자산이 많아 물자가 비교적 풍부했기 때문에 남한에서 만큼의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또한 “1946년에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조업이 회복돼, 70% 정도의 공장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며 “여기에 일본 엔지니어들을 억류함으로써 일본이 가진 고급기술을 전수, 신속하게 가동률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북한은 1949년에 이미 박격포, 기관총과 같은 양질의 무기를 생산할 수 있었지만 남한은 방직공장이나 소규모 기계공업만 운영될 뿐”이었다며 “군수(軍需)면에서의 이러한 결정적 차이가 김일성으로 하여금 남침을 결심하게 만든 현실적 근거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날 강연에는 고려대, 한양대, 연세대 등 서울지역 대학생 70여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강연이 끝난 후에도 통일과 북한의 미래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북한체제의 미래를 묻는 김민경(고려대 생명과학과, 21) 학생의 질문에 이 교수는 “북한은 50년대부터 정치적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세력을 제거했기 때문에 내부의 모순에 의해 붕괴될 가능성은 낮다”며 “외부의 개입이 없고 중국의 국제적 후원이 계속되는 한 중국에 기생하는 종속적 왕조체제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인권 대학 릴레이포럼’ 다음 강좌는 4일 오후 6시 30분 숙명여대에서 열리며, <북한민주화운동본부> 강철환 공동대표가 강연할 예정이다.

양정아 기자 junga@dailynk.com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