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개성-뉴욕 `북핵 3각조율’

비무장지대(DMZ)를 사이에 두고 16일 서울과 개성에서 한ㆍ미, 남ㆍ북 당국간 회담이 동시에 진행된다.

또 지난 주 뉴욕에서 미 국무부의 한 간부가 한성렬 주유엔 북한대표부 차석대사와 전화접촉을 한 것으로 확인돼 앞으로 공식 뉴욕접촉으로 이어질 지 주목된다.

서울-개성-뉴욕 3곳을 꼭지점으로 해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 재개의 모양새가 조금씩 갖춰져 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와는 별도로 베이징과 평양간 이른바 북중 채널도 이전보다 좀 더 바쁘게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 2.10 외무성 성명을 통한 핵무기 보유선언과 3.31 핵군축회담 제안, 그 즈음의 영변원자로 가동중단 및 지난 11일의 폐연료봉 인출 완료 발표 등 북한이 단계적으로 긴장의 수위를 높이고, 그 것과 맞물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북 핵실험준비설’이 급속히 퍼지면서 위기로 치닫던 북핵 국면이 다소 완화되는 양상이다.

여기에는 8∼9일 모스크바 연쇄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일.중.러 5개국이 북핵 문제를 ‘6자회담만이 최선의 해법’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후 북핵 문제는 국제사회의 ‘톱 어젠더’로 떠올랐고, 이틀 후인 11일 북한이 영변 5㎿원자로에서 폐연료봉 8천여개 인출을 완료했다고 발표해 큰 우려를 낳으면서 5개국의 외교노력에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그에 따른 관련국들의 외교 행보도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도 8일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하는 형식으로 “우리는 6자회담과 별도의 조(북)-미회담을 요구한 것이 없다”며 이전과는 달리 대미 강경자세를 누그러뜨린 바 있고, 이에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즉각 “북한은 주권국가”라고 재확인하는 등 긍정적으로 호응하고 나선 바 있다.

이 같은 ‘주고받기’가 남.북한과 미국 3국간에 대화 분위기로 가는 단초가 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작년 말부터 남북 당국간 대화 재개를 촉구해 온 우리측에 북한이 호응해 온 것도, 미 국무부 인사와 북한의 한성렬 주유엔 차석대사간 전화 접촉도 그 이후에 발생한 상황이라는 점은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다.

특히 판문점 등을 통한 남북 당국간의 대화재개를 위한 과정이 미 행정부에 시시각각 통보됐고, 경우에 따라서는 ‘협의’된 것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14일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라이스 장관의 12일 CNN과의 대담에서 북한을 겨냥해 “무서운 정권이며 개혁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 비난하고 나섰지만 이는 의례적인 ‘짚고 넘어가기’로 대화 재개 노력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일단 16∼17일 남북 차관급회담과 한미 6자회담 수석대표인 송민순(宋旻淳) 외교부 차관보와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의 16일 회담이 주목된다.

정부는 차관급회담의 목표를 남북관계 정상화와 북핵 문제에 대한 우리측의 입장 전달을 통한 6자회담 재개에 두고 있다. 비료지원은 인도적 차원의 문제인 만큼 북한이 요청한다면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 지는 현재로서는 점치기 힘들다.

종전의 태도로 볼 때 차관급회담을 ‘민족공조’를 강조하면서 핵문제 논의는 피하는 장(場)으로 활용할 수도 있고, 핵문제에 대한 우리측의 입장을 듣되 묵묵부답 할 수도 있으며, 6자회담을 푸는 창구로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이와 관련, “이번 남북대화의 재개는 6자회담 재개에도 좋은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남북 당국간 대화 재개 자체뿐 아니라 “북한에 6자 회담 복귀를 설득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됐다”는데 의미를 부여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우리 정부를 북핵 해결의 통로로 활용하려는 의지를 비친 것 아니냐는 다소 때이른 낙관론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지난 2월말 박봉주 내각총리와 지난달 초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의 잇단 방중에 이어 북-중간에 6자회담 재개협의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는데도 불구, 중국에는 아무런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고 우리측의 당국간 회담재개 요구에 응한 게 그 논거다.

남북 차관급회담의 성공 여부는 부시 미 행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라는 국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복귀시 실질적인 진전방안을 우리측이 설득력있게 전하려면 미측이 어느 정도의 ‘맨데이트’(위임)를 주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핵무기를 가질까 말까를 고민하는 북한에게 핵포기시 상응조치가 최대의 관심이라는 점에서 미측이 이와 관련해 위임을 얼마나 어떻게 줄 지 여부가 차관급회담이 북핵 문제의 돌파구를 마련할 지 그렇지 못할 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북한은 핵을 포기할 경우 안전장치를 확실하게 보장받아야 하고, 특히 핵 이외의 미사일, 인권, 마약 등의 다른 구실로 공격받게 되는 상황이 초래되어서는 안되며, 그럴려면 북-미 간에 관계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 14일 외무성 대변인의 발표에서도 드러났듯이 북한은 회담 복귀의 ‘명분’으로 여전히 라이스 장관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에 집착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세현(丁世鉉)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은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을 거론하며 그에 대한 미국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되풀이할 것”이라며 “그 대안으로 제시된 ‘북한은 주권국가’라는 뜻이 북측에 잘 설명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 행정부는 남북 차관급회담 개최에 일단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을 중심으로 한 대북 강경론자들의 압박 주장에도 불구, 대화를 통한 평화적, 외교적 해결에 무게를 둬온 미 행정부는 차관급 회담 개최를 바람직한 일이라고 평가하고 일정 정도 기대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4일 반기문(潘基文) 외교부 장관을 포함한 우리측 외교라인과 긴밀한 협의를 가진 힐 차관보는 16일 오전 9시 30분 송 차관보와 만나 6자회담 재개와 재개시 진전방안을 조율할 예정이다.

이어 18∼19일 라오스 비엔티엔에서 열리는 ‘아세안 PMC’ 고위관리회의도 중요한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을 뺀 6자회담 참가 5개국이 참여할 예정이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자칫 한.미.일.중.러 5자회담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5개국 간의 다자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일본 외상은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6월중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 개최를 주장하고 있어 주목된다.

또 지난 3월31일 북한의 핵군축회담 제의 이후 보다 적극적인 중재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국이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방북카드도 사용할 가능성도 있어 그 시기가 주목된다.

차후 남북차관급회담과 그에 이은 추가회담, 그리고 북-중 협의에서 북한의 태도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조심스럽게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이 점쳐지는 모양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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