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 3대 정당, 통일정책 명확한 특징 가지고 있어

서독 주요 정당의 통일정책은?

통일 이전 서독에는 보수성향의 기민당(CDU), 진보·좌파 성향의 사민당(SPD) 및 중도성향의 자민당(FDP) 등 3대 정당이 있었다. 건국 이후 통일 시까지 서독에서 단일정당이 집권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고 항상 두 개 이상의 정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집권해 왔다. 이들 3대 정당의 통일(내독)정책 노선은 각각 명확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서독 정부의 정책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 정당의 정책노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민/기사당의 내독정책

기민/기사당(CDU/CSU)의 통일정책은 ‘힘의 우위’를 통해 동독의 붕괴와 소련의 점령지 포기를 유도하여 통일을 달성한다는 것이며, 흔히 ‘자석이론'(Magnet Theory)으로 불린다. 즉, 미국 및 서구와의 결속을 통해 서독이 정치·경제적으로 우월을 유지하면 자석에 쇠붙이가 이끌려오듯이 동독이나 소련이 서독에 이끌려와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민/기사당은 1960년대까지는 소련 및 동독에 대해 강경노선을 견지하면서 미국 및 서방과의 결속유지, 서독의 주권회복, 경제재건 및 서독 유일대표권의 확립을 최우선 정책목표로 삼았으며 ‘통일’ 보다는 ‘자유’를 중시했다.

기민당의 이러한 보수적·친미적 정책노선은 국제정세의 변화와 신세대들의 의식변화에 둔감하다는 인식을 주어 1969년 10월 사민당-자민당 연립정부에 정권을 넘겨주는 요인의 하나가 되었다. 따라서 1982년 재집권 후에는 사민당 정부가 추진한 신동방정책의 성과를 대부분 계승하여 소련, 동유럽 및 대동독 관계개선에도 적극 노력했으며, 1989년 11월 베를린장벽 붕괴 후에는 콜 총리의 과감한 통일정책을 뒷받침함으로써 ‘통일을 이룬 정당’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사민당의 독일정책

사민당(SPD)의 통일정책은 ‘접근을 통한 변화(Transformation through Rapprochement)’와 ‘작은 걸음 정책(Small Step Policy)’으로 대변된다. 이 노선에 따르면 소련과 동독을 인정하고 교류·협력을 지속하면 언젠가는 이들도 변하여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교류·협력을 통해 ‘사실상의 통일’을 이루겠다는 ‘분단의 평화적 관리 정책’이었다.

사민당의 이러한 정책노선은 1974년 5월 자민당과의 연립정부 수립 후 자민당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며, 그 이전의 정책노선은 매우 달랐다. 1950년대까지 사민당의 정책은 ‘통일지상주의’ 노선으로서 통일을 위해서는 중립화를 추구해야 하며, 통일에 방해가 될 경우 서구와의 동맹을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정책노선은 감상적 평화주의가 당 분위기를 지배했던 데서 비롯된 것으로, 심지어 서독의 경제적 흡인력이 동독의 불안정과 붕괴를 야기하여 통일을 더욱 어렵게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강경노선으로 1950년대 중반 이후 지지층이 대거 이탈하게 되자 사민당은 1959년 ‘바트 고데스베르크 강령’ 채택을 계기로 서구동맹과의 유대강화 및 기민당과의 보조일치를 추구하는 등 통일정책 노선을 변경하기 시작했다. 특히 기민당과의 대연정 기간 중 야당이던 자민당이 ‘현실인정’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동방정책과 통일정책을 주창하자 사민당도 1968년 당 대회에서 동독과의 공존정책으로 전환했다.

그 후 사민당은 1969년부터 1982년까지 자민당과의 연정기간에 ‘동방조약’과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소련, 동유럽 및 동독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교류·협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1982년 연립정당인 자민당이 기민당과 제휴함으로써 야당이 된 후에는 동독 사회주의통일당(SED)과의 교류를 확대해 왔다.

사민당은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동독탈출자의 수용 제한과 점진적 통일을 주장한 데다, 그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동독 공산정권이 붕괴됨으로써 독일통일 과정에서 어려운 입지에 처하게 되었다. 더욱이 1990년 3월 동독 자유선거에서 자매정당인 동독 사민당이 패배하고 서독 기민당 주도하에 통일이 이루어짐으로써 사민당은 “통일을 주저하는 당” 또는 “독일통일의 최대 패배자”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자민당의 독일정책

온건 중도정당인 자민당의 독일정책은 ‘현실인정’을 바탕으로 동독과 적극적인 접촉 및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으로 서독 3대 정당 가운데 가장 진보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 자민당의 이러한 진보적 정책노선은 기민당-사민당 간의 대연정 기간 중 야당으로서 정책결정 과정에서 소외된 후 젊은 세대의 지지확보를 위해 진보적 정책들을 적극 개발한 데 비롯된 것이다.

자민당의 정책노선은 소련의 동의 없이는 통일이 불가능하므로 친서방 기조 하에 소련, 동유럽 및 동독과의 협력을 추진하고, 궁극적으로는 유럽통합의 틀 속에서 통일을 이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민당은 조약을 통한 대동독 관계의 제도화, 미국 참여하의 유럽안보협력회의 개최, 군사동맹 구조의 평화구조로의 전환 등을 주창했다. 특히 1969년 사민당과의 연립정부 출범 후 자민당의 노력으로 서독의 유일대표권 주장의 포기, 독일 내 2개 국가 존재와 오더-나이세 국경선의 인정 등이 정책에 반영됨으로써 자민당은 동·서간의 긴장완화, 분단의 고통 경감 및 동서독 관계의 정상화 등에 크게 기여했다.

자민당의 노선은 기민당 보다는 진보적이고 사민당 보다는 현실주의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자민당의 정책은 두 개의 독일을 인정하고 소련·동유럽권과의 적극적인 관계개선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친서방 일변도의 노선을 견지했던 기민당의 정책노선과 다르며, 중립화와 양다리 외교를 배제했다는 점에서는 사민당의 정책노선과도 달랐다. 이러한 자민당의 정책노선은 상반되는 정책노선을 가진 기민당과 사민당의 정책이 극단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정권교체에도 불구, 서독 정부의 주요정책들이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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