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단 시기 서독에서 동독에 라디오 방송을 보낼 때, 서방 세계 삶을 전달하되 서독을 너무 미화(美化)하지 않았다. 때로는 서독 등 국제사회의 단점도 이야기 하고, 외부 세상이 동독 주민들의 현실과 어떻게 연관될 수 있는지를 느끼게 해줬다.”
1946년 설립된 대(對)동독 라디오 방송인 리아스(RIAS)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패트릭 가버 도이칠란드 라디오 책임자는 독일기획취재팀에게 이렇게 말했다. 동독 공산주의 정권의 폐쇄정책으로 정보에 목말라 하던 동독 주민들에게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가버 책임자는 “동독 내 정보를 동독 주민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에도 중점을 뒀다”고 했고 한스위르겐 피커트 전(前) 리아스 기자도 “노골적인 선전선동을 최대한 줄이려고 했다. 체제에 대한 방송이 필요하다고 싶을 때도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게끔 방송하지는 않았다”면서 “그러면서 더 진지하게,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보도하는 방향을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독일 미디어 전문가들은 노골적인 반(反)공산주의적 보도형태는 북한 주민들의 의식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데틀레프 퀸 전 작센주 미디어청장은 “북한 주민들의 북한 체제의 실상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때문에 남한 사회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보도한다면 북한 주민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는 남한 방송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독 방송 통해 동독 정부 거짓선전 깨달아…北주민 자각하게 해야”
또한 서독 라디오 방송은 정보를 객관적으로 전달하면서 동독 주민들이 이를 통해 자각해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이 같은 내용의 방송을 꾸준히 접하게 된 동독 주민들은 동독 매체의 거짓 선전에 대해 선별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특히 1953년 동베를린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노동자 파업에 대한 보도가 주효했다. 당시 이 파업에 대해 동독 방송에서는 내보내지 않은 반면 서독 리아스는 상세히 전했다. 결과적으로 주민들에게 동독 정부의 ‘우리나라는 노동자들의 나라다’는 주장은 완전 거짓이라는 점을 각인시키게 됐다는 것.
피커트 전 기자는 “파업 구호 등을 있는 그대로 보도를 했더니 파업이 동베를린에서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게 됐다”면서 “리아스가 없었다면 그런 파업 자체가 동독 전(全) 지역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이는 역사를 다르게 바꿨을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동독 주민들이 리아스를 통해 타 지역 파업 소식을 듣고 동참하게 됐다는 것.
그는 이어 “(방송에) 공산주의에 대해 식견이 있는 사람이 출연해 ‘봐라, 동독의 현실의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와는 전혀 다르지 않느냐’라고 지적했다”면서 “(이처럼 대북방송도) 북한의 이념과 현실이 얼마나 불일치하는지 부각시키는 방향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부연했다.
|
“서독 주민 생활 그대로 담으려 노력…방송 통해 연대의식 갖게 해야”
서독 라디오 방송은 단순한 정보 이외에도 다른 외부 세계 사람들의 ‘삶’에 대해 조명하는 데에도 주력했다. 가버 책임자는 “햄버거도 먹고, 팝송도 즐겨듣고, 좋은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 이런 삶의 느낌은 어떤 건지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서독 라디오 방송은 오락, 음악, 퀴즈 프로그램 등 동독 주민은 물론 서독 주민들도 흥미를 끌만한 내용으로 꾸려졌다. 뉴스를 기반으로 한 풍자 프로그램과 중간에 서독의 광고를 동독 주민들이 접할 수 있도록 편성했다.
피커트 전 기자는 “대표적 풍자 프로그램인 인슐라나(Die Insulaner, ‘섬 마을 사람들’이라는 뜻, 즉 동서로 분단된 베를린을 비유적으로 표현)에서는 동독 관료들을 우스꽝스럽게 등장시켰다”면서 “이렇게 하면 서독 주민들은 물론 이 프로그램을 몰래 듣던 동독 사람들도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서독 라디오 관계자들은 방송을 통해 동독 주민들이 열등감을 느끼지 않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동독 사람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처지에 맞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방송을 만들었다는 것.
때문에 이들은 대북 방송을 통해서도 동독과의 경험을 토대로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사면서 통일의식을 고취시키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가버 책임자는 “방송에서 말하는 이야기가 자신도 포함될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게 필요하다”면서 “북한 주민들을 위한 방송에서도 방송을 듣고 열등감을 갖거나 현실에 좌절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지금의 대북 라디오 방송이) 정치적 차원을 넘어 북한에 사는 주민들에게 연대의식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리길 바란다”면서 “(진정한 통일을 위해) 북한 주민들을 잊지 않다고 있다는 인도적 차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에 대해 손기웅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독일 통일 과정에서의 미디어 역할을 따져보면 대북 방송도 북한 주민들의 변화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알 수 있게 해 준다”면서 “동서독과 달리 인적 교류가 어려운 상황에서 방송을 통해 북한 주민들이 간접적으로나마 우리 체제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