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의 ‘脫東者’ 정책 제대로 아십니까?

최근 들어 탈북자들의 남한 입국자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입국 감소 이유는 이미 알려져 있다. 남한 정부의 ‘탈북자 수용정책개선안’은 북한주민의 탈북과 국내입국을 더 어렵게 했다.

탈북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요논리는 탈북자들이 최근에 ‘너무 많아져서’ 국가예산에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또 남한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면 탈북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한국과 비슷한 문제를 경험한 국가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의견에 쉽게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탈북자 6천여명, 결코 많지 않다

한반도 분단 이후 가장 많은 탈북자들이 들어온 2004년의 입국자 수는 1,894명이었다. 서독의 경우, 베를린 장벽이 생긴 1961년부터 통일된 1989년까지 매년 동독에서 서독으로 온 사람들은 평균 2만1천명이었다. 제일 적었던 해가 1만1천명이었고, 제일 많은 경우는 4만8천명이었다.

바꿔 말하면, 30년 동안 서독은 남한이 가장 많이 받아들인 해보다 매년 12배가 넘는 망명자들을 환영한 것이다. 지금 6천여 명의 탈북자들도 너무 많다는 남한 사람들이 있지만 1980년대 말 서독에는 57만여 명의 동독 망명자들이 살았다.

서독은 사회민주주의 경향이 강한 국가인데, 동독에서 온 ‘탈동자’들은 남한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사회보장금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래도 서독 사회는 ‘돈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라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말하면 독일은 선진국이고 아주 큰 나라니까 가능하지만 남한은 그렇지 않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속사정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지금 독일의 일인당 소득을 비롯한 사회경제 지표는 한국보다 훨씬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1970년대의 서독은 2000년의 남한과 대체로 비슷한 경제 수준을 달성한 나라였다.

1970년 서독 인구는 6천만 명이었다. 남한은 4천7백만 명이다. 70년 서독의 일인당 GDP는 10,839 달러였다. 2000년 한국의 GDP는 14,343 달러다. 당시의 서독이 남한보다 약간 낮았다(서독통계는 1990년 Geary-Khamis 달러로 표시).

그래도 서독정부와 사회는 매년 21,000명의 동독 출신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문제삼지 않았고, 그들의 수를 줄이기 위한 조치도 결코 취하지 않았다.

중요한 사실은 이 같은 ‘탈동자’ 환영 정책이 동독과의 관계에 별로 나쁜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독으로 오는 망명자들이 많았지만 동서독의 관계는 세월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었다.

이스라엘 경우도 연구대상

또 하나의 중요한 사례는 이스라엘이다. 전세계에 흩어진 모든 유태인들이 자신의 조국으로 세운 이 나라는 1990년대 초반 이후 매년 해외 유태인을 4~8만 명씩 받았다. 또 그들이 이스라엘 생활에 잘 적응을 할 수 있도록 후한 정착금을 주고 있다.

새로 입국한 유태인 이민자들은 이스라엘 국어도 모르고 교육 수준도 그리 높지 않지만 이스라엘은 이들을 부담으로 보지 않았다. 이들이 이스라엘에 도착하면 ‘적응 꾸러미'(정착 프로그램)란 이름의 원조금, 장학금, 자녀 교육비 등 여러 가지 특혜를 받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에서 주는 정착금은 한국의 탈북자들이 받는 정착금과 비슷한 유형의 ‘적응 꾸러미’는 5~8천 달러 정도다. 정착금보다는 낮은 편이지만 교육비, 의료비, 이민비용까지 별도로 나온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많은 유태인들을 받지만 전체 인구는 남한의 8분의 일 정도인 6백만 명에 불과하다. 이스라엘 전체 인구에서 이주 유태인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많이 높다는 이야기다.

같은 국가냐, 아니냐를 결정해야

이러한 역사적 사례를 보면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들 수는 참으로 미미하다. 그들이 받는 정착금도 서독, 이스라엘에 비해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유독 탈북자들을 문제라고 생각할까?

이 대목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북한 사람들을 남한 사람과 같은 국가의 국민이냐, 아니냐를 결정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자기 국민을 보호하는 권리 겸 의무를 갖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 생긴 재난이나 정치 테러의 희생자들을 도와주면 좋고, 도와주지 않아도 국가의 기본 의무를 태만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북한 사람들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한다면 국가가 그들을 도와 주거나, 적어도 그들이 원할 경우 남한으로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불가피한 결론이다. 반면 탈북자들이 비록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다른 국가의 국민으로 인정한다면, 그들을 인도주의적으로 도와 주는 것은 좋지만, 남한이 무조건 환영해야 할 의무는 지지 않는다.

서독 정부는 동독인들을 같은 민족에 속한 주민이라는 사실에 아무런 의심이 없어서 이 사람들을 환영했고, 그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돈을 아낌 없이 썼다. 이스라엘의 정책은 세계 어디에 있든 유태인이면 언제든 이스라엘 국민이 될 수 있다는 원칙을 세웠다.

지금 남한정부의 탈북자 정책을 보면 탈북자들을 마치 다른 나라의 국민처럼 관리한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필자는 이 사실에 대해 크게 비판적이지는 않다. 60년 동안의 분단에서 온 불가피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남한 국민의 몇 세대는 북한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상태에서 성장했다. 따라서 자신이 잘 모르는 북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자기 국민의 어려움처럼 보지 못하게 되었다.

통일대비, 남북 다 아는 탈북자 활용해야

그러나 분단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북조선’과 ‘남한’이 통일될 것이다.

따라서 통일을 준비하려면 많이 달라진 남북한 사회를 연결할 수 있는 탈북자들을 환영해야할 뿐 아니라 그들의 재교육과 남한사회 적응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펴야 한다.

최근 남한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수익을 기대하지도 못할 대북 투자를 하면서 ‘이러한 투자가 통일 한국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탈북자들 정책도 통일 한국의 미래에 대한 좋은 투자라고 할 수밖에 없다. 통일 후에 탈북자처럼 두 개의 한국을 다 아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역사학 박사

<필자 약력> -구소련 레닌그라드 출생(1963) -레닌그라드 국립대 입학 -김일성종합대 유학(조선어문학과 1986년 졸업) -레닌그라드대 박사(한국사) -호주국립대학교 한국사 교수(1996- ) -주요 저서 <북한현대정치사>(1995)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From Stalin to Kim Il Sung 2002) <북한의 위기>(Crisis in North Korea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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