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면으로 접어든 北ㆍ日 유골 공방

북한과 일본이 진위 여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요코타 메구미의 이른바 ‘가짜 유골’을 감정한 일본 데이쿄(帝京) 대학 법의학 연구팀이 분석결과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시인함에 따라 양국의 공방이 새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네이처’ 온라인판(www.nature.com)은 2월 2일자 보도에 요코타 메구미의 유골을 감정한 토미오 요시이(Tomio Yoshii) 데이쿄 대학 교수와 인터뷰를 갖고 “그가 분석 결과는 확정적인(not conclusive) 것이 아니며 유골 샘플이 (이물질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시인했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네이처가 제기한 문제점 = 네이처는 요시이 교수를 포함해 일본에서 화장 유골을 감정한 경험이 있는 법의학 전문가가 거의 없고 1천200도에서 화장된 유골에서 DNA가 장시간 남아있을 수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유골 감정에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쉽게 말해 일본 정부의 정치적 입장과는 무관하게 과학적 견지에서 그 유골이 가짜인지 아니면 진짜인지 결론을 유보한 셈이다.

일본 데이쿄 대학 연구팀의 유골 감정 결과에 대한 오류 가능성은 이미 이번 네이처의 보도에 앞서 국내의 법의학자들 사이에서도 제기됐던 문제였다. 국내 법의학자들은 2002년 대구지하철참사를 계기로 불에 탄 유골 감정에서 세계적 수준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정빈 서울대 의대 교수(법의학)는 “1천200도에서 화장된 유골에서 DNA 검출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만약 검출이 됐다고 해도 유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유래한 이물질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요시이 교수 역시 네이처와 인터뷰에서 “유골은 딱딱한 스펀지와 같아서 사전에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를 한다고 해도 연구팀이 시료를 다루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땀이나 피지(皮脂)가 스며들었을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일본 정부 왜 발표 강행했나 = 과학적으로 유골의 진위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북한에서 요코다 메구미의 것이라고 넘겨준 유골이 가짜라며 일방적으로 언론 발표를 강행한 배경에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유골의 감정 결과가 북한에 불리하게 나올 경우 양국 간 외교적 논란이 예상되는 사안이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유골 감정을 공신력있는 제3국의 기관에 의뢰하지 않았다.

더욱이 유골의 감정을 의뢰한 일본 과학경찰연구소(과경연)와 데이쿄 대학 연구팀의 분석 결과가 엇갈렸는 데도 데이쿄 대학팀의 분석 결과를 사실로 단정하는 무리수를 뒀다.

이렇게 엇갈린 결과가 나왔을 때는 결론을 내리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국내 법의학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특히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일 경우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빚어질 수 없도록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특히 북한이 1월 24일 조선중앙통신사를 통해 비망록을 발표하고 데이쿄 대학 연구팀의 유골 감정 결과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난 이후에 일본 정부가 보인 반응은 합리적이지 못했다.

일본 정부가 분석 결과에 그토록 확신을 갖고 있었다면 유골을 감정한 연구팀이 직접 북한이 제기한 의문점을 반박하도록 하거나 공개적인 절차를 거쳐 실험 과정을 검증받고 과학적으로 해명하면 될 일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가 국내의 반북 여론에 힘입어 대북 압박 정책을 합리화하려는 차원에서 데이쿄 대학 연구팀도 인정하고 있는 감정결과의 오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유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향후 전망 = 유골 감정을 둘러싼 북ㆍ일 양국의 공방은 최소한 과학적 견지에서는 원점으로 되돌아간 셈이 됐다.

특히 유골을 감정한 토미오 요시이 데이쿄 대학 교수가 “5개의 유골 샘플을 모두 써버렸다”고 밝히고 있어 유골에 대한 재감정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일본 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쉽사리를 꼬리를 내리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른바 ‘가짜 유골’에 대한 주장은 목소리가 잦아든다고 해도 앞으로도 납치 피해자 문제는 계속 쟁점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20일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미ㆍ일 양국 외무장관 및 국방장관 사이의 이른바 ‘2+2회담’에서 북한이 일본인 납치와 관련한 문제를 신속하고 완전하게 해결할 것을 촉구한 것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일본 국회에서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 ‘북한인권법’ 제정 움직임도 일본 사회를 휩쓸고 있는 대북 강경 여론에 힘입어 좀체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다.

이른바 ‘가짜 유골’ 사건으로 수세에 몰렸던 북한 역시 이번 네이처지의 보도를 계기로 강제 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제시대에 자행된 ‘특대형 납치사건’을 내세워 맞불을 놓을 것으로 예상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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